제5장
이천후가 드래곤 펜던트를 집어 들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을 때, 사람들은 모두 그가 좀 달라졌다는 생각을 했다.
그를 포위하고 있던 십여 명의 남자들은 마음이 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서요, 표범 형님. 저놈이 저를 이지경이 되도록 때렸다고요.”
임수명은 퉁퉁 부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쳐!”
문신 남자가 이천후를 힐끗 보더니, 남자들에게 손짓하며 명령했다.
“그만하세요!”
위엄이 담긴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리더니, 절세미녀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들어왔다.
한아연이었다. 그녀 뒤로 검은 옷을 입은 두 명의 보디가드도 따라들어왔다.
한아연을 발견한 임수명의 눈이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졌다. 정말 예쁜 여자다.
특히 스타킹을 신은 늘씬한 다리는 정말 근사했다.
“이 선생님의 문제를 좀 해결해 줘.”
한아연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한마디 했다.
그녀의 말에 뒤에 섰던 보디가드 한 명이 앞으로 나서더니, 순식간에 남자들을 해치웠다. 문신 남자도 뺨을 한 대 세게 맞더니, 얼굴을 감싼 채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한씨 가문의 큰 딸을 보호하는 일을 아무한테나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천후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한아연을 쳐다보았다. 이 귀찮은 일을 한아연이 해결해줄 줄은 몰랐다. 펜던트의 뱀과 참새는 이미 사라졌고, 묶였던 용인은 풀려났지만, 원래의 내공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자신이 용주의 신분으로 돌아온 것은 기정사실이다.
“이 두 분은...”
한아연이 유미옥 모자를 보며 물었다.
이천후가 채 입을 열기도 전에 유미옥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쉽게 이혼을 해준다 했다. 이 나쁜 놈! 여자를 숨겨두고 있었어? 어떤 X인지 어디 낯짝 좀 보자...”
유미옥이 아직 말을 끝내지 못했는데, 한아연이 그녀의 뺨을 올려붙였다.
한씨 가문의 큰 딸로서, 자신의 우아함과 고귀함을 흠집 내는 유미옥의 모욕적인 언사를 가만히 듣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유미옥의 하얀 뺨에 빨갛게 손바닥 자국이 생겨났다.
“아악!”
유미옥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감히 날 때려?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내가 임은설 사장 엄마야, 두고 봐, 너 가만 안 놔둬...”
“아들, 이 연놈들 어떻게 좀 해 봐.”
“나쁜 X, 감히 우리 엄마를 때려?”
피칠갑을 한 얼굴로 임수명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가 한아연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검은 옷의 보디가드가 발로 그를 걷어찼다.
임수명은 현관문 쪽으로 날아가 세게 부딪혔다.
“으악...”
임수명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팔이 부러진 것 같았다.
“너... 너희들...”
유미옥이 손가락으로 한아연을 가리켰다가 다시 이천후를 가리켰다.
“내가 임은설이 엄마야. 우리 귀한 아들을 때려?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
“이 여자 말 좀 못하게 해.”
원래 기분이 좋지 않았던 한아연은 유미옥을 참아 줄 수가 없었다.
검은 옷의 보디가드가 즉각 복종하는 기계처럼 앞으로 나섰다. 남자 여자를 가리지도 않고 때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만! 그냥 보내줘.”
이천후가 재빨리 나서서 문을 열었다.
한아연이 손을 들어 보디가드를 저지했다.
“너희들 딱 기다려!”
유미옥이 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유미옥은 다 죽어가는 임수명을 부축해 일으킨 다음, 바닥에 떨어져 있던 글씨를 주웠다.
“글씨는 두고 가세요.”
이천후가 담담하게 말했다.
“내 아들을 이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우리 집 보물도 놓고 가라고?”
유미옥이 화를 냈다.
이천후의 얼굴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내 글씨가 언제 당신 집 보물이 됐지?
전이라면 몰라도 이제는 이혼까지 했다.
한아연은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외모를 가졌지만, 판단도 빠르고 행동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용진 같은 큰 그룹의 일을 맡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눈짓하자 검은 옷의 보디가드가 즉시 나서서 유미옥이 들고 있던 글씨를 빼앗았다.
“두고 보자, 너희 연놈들! 내가 오늘 일을 잊으면 사람이 아니다.”
유미옥이 이를 갈며 말했다.
“저 입 좀 어떻게 해봐.”
한아연이 다시 입을 열자, 유미옥은 임수명을 부축해 급히 문을 나섰다.
“어! 이건 적진 선생의 글씨인데?”
한아연이 글씨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저 아줌마, 어떻게 적진 선생의 글씨를 가지고 있지?”
“내 거야.”
이천후가 손을 내밀었다.
“아뇨.”
한아연이 재빨리 글씨를 품에 안았다. 좀 전까지 여장부처럼 굴더니, 갑자기 여자아이처럼 떼를 썼다.
“이거 저 주세요. 적진 선생 글씨, 우리 할아버지 최애예요. 이걸 드리면 정말 좋아하실거예요.”
“부탁드려요, 네?”
한아연이 호수 같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천후에게 사정했다.
할아버지는 돈이 그렇게 많은데도 적진 선생의 작품은 달랑 하나뿐이었다. 할아버지는 하나뿐인 그 작품을 얼마나 애지중지하시는지...
할아버지의 서재에 걸린 그 글씨는 ‘영감탱이’라는 네 글자였다.
서재에 걸어 놓기에는 너무...
하지만, 지금 이 글씨는 한문으로 쓴 춘지언운! 얼마나 보기 좋은가!
“제가 살게요. 얼마면 돼요?”
이제 한아연은 이춘후의 소매를 붙잡고 애교를 부렸다.
“알았어. 그냥 가져...”
이천후는 결국 글씨를 그녀에게 넘겼다. 한수산 회장에게 선물했다 치지 뭐.
입이 귀에 걸린 한아연은 급히 종이를 말아 품 안으로 쏙 넣었다.
“당신 나한테 뭐 부탁한다 하지 않았나?”
이천후가 담담하게 말했다.
“아, 맞다.”
한아연이 입을 열었다.
“어제 우리 용진 그룹 직원들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갑자기 복통을 일으켰어요. 심하게 토하고! 의사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고요.”
“병난 직원들은 이미 혼수상태고...”
“열 명도 더 되는데, 이대로 두면 죽을지도 몰라요. 만에 하나...”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면, 용진 그룹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이천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지, 환자들을 봐야겠어.”
이용주는 무예도 지존이었지만, 의술도 최고였다. 지금 내공은 모두 사라졌지만, 의술은 여전했다.
그들은 운해 최고의 병원이라는 인강 병원을 향했다. 인강 병원은 한씨 가문이 투자하여 세운 것이다.
병원에 도착한 그들은 곧장 중환자실로 갔다. 중환자실 입구에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남자 두 명이 서있었다.
“아가씨, 한 이사님께서 운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한의사를 불러오셨어요.”
검은 양복의 남자가 한아연 일행을 막아서며 말했다.
“그 사람은 어딨는데?”
한아연이 물었다.
“아까 침을 놓으셨고, 지금은 한 이사님과 차를 마시고 계십니다.”
한아연이 이천후에게 물었다.
“들어가서 보실래요?”
이천후는 유리문 안쪽을 훑어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들어가서 좀 봐야지.”
“비켜!”
한아연이 검은 양복의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아가씨, 한 이사님께서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남자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짝!
한아연이 그의 뺨을 올려붙였다.
“비켜.”
두 남자는 즉시 고개를 숙인 후 옆으로 물러섰다.
중환자실에는 13명의 환자가 침대에 누워있었다. 모두 가슴에 검은 기운이 어른거렸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들은 모두 웃옷을 열어젖힌 상태로 가슴에 여러 개의 침을 꽂고 있었다.
“이게 뭐야?”
한아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검은 양복의 남자가 대답했다.
“신 선생님께서... 그 한 이사님이 데려온 한의사가 독을 빼야 한다고... 두 시간 동안 이렇게 하고 있으면 독이 빠져나갈 거라 하셨어요. 그전에 침을 빼면 절대 안 된다고...”
검은 양복의 남자가 놀란 얼굴로 말을 멈췄다.
이천후가 갑자기 앞으로 나가더니 환자의 가슴에 있는 침을 전부 뽑아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