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이천후는 그 계약서를 자세히 살폈었다. 약 2조가량의 프로젝트였다.
천문학적인 액수라 할 수 있다.
은설 제약의 대표 상품 소아용 청폐지해 드링크는 그중 절반이 넘는 60% , 약 1조 2천억을 차지한다.
계약서에는 계약을 위반하는 쪽이 10배를 배상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그가 법진을 복구하지 않으면, 소아용 청폐지해 드링크의 원료인 자심초는 틀림없이 전부 말라죽을 것이다.
은설 제약이 이 대표 상품을 제때에 생산해 내지 못하면, 당연히 계약 위반이고, 10배를 배상해야 한다면... 12조?
임은설이 한씨 가문에 12조를 배상한다?
회사를 팔아치운다 해도 불가능하다.
왕하중이 양심이 있어, 자기네 천해 그룹을 은설 제약과 함께 판다면, 어찌어찌 12조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왕 사장! 임은설한테 진심이기를 바라네. 이 사람이 곤란한 일을 만나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도와주기를...’
이천후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하, 우리 왕 사장님과 너를 좀 봐봐. 사람하고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다르냐...”
노미연은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양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은설이가 너를 버리고, 왕 사장님을 선택한 건 태어나서 한 일 중 제일 잘 한 일이야.”
“이천후, 일찌감치 패배를 인정하고 무릎을 꿇는 게 어때? 한 달이나 기다릴게 뭐 있어? 한아영이한테 와서 유부남을 꼬드긴 불여우라는 걸 인정하라고 해.”
“한 달 후에 이야기 하지, 그때도 그렇게 웃을 수 있기를 바래.”
이천후는 크게 기지개를 켠 후,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임은설이 나서며 말했다.
“이번에 우리 은설 제약이 한씨 가문과 체결하는 계약은 2조짜리예요. 은설 제약 매출이 두 배가 된다는 뜻이라고요.
매출 증가는 가장 표면적인 이익일 뿐이고, 한씨 가문과의 협력은 은설 제약의 명성과 평판,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거예요.
두고 봐요. 보름도 지나지 않아 곧 내 재산은 4천억이 될 테니.”
그녀는 이천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내가 한 말은 반드시 이루어질 거예요.”
임은설이 선언하듯 자신 있게 말했지만, 이천후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핸드폰을 들고일어나서, 홀 뒤 쪽으로 걸어갔다.
방금 한아연이 그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할아버지가 보낸 혈영지 도착했어요.】
이천후에게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혈영지다.
하늘이 내린 이 보물이 그의 내상을 치유할 것이고, 내상이 치유되면, 그는 수련을 시작할 수 있다.
봉했던 용인이 해제됐고, 이용주로 되돌아온 이천후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수련이다.
이전처럼 대단한 수준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스스로를 보호할 힘은 있어야 한다.
고무의 고수들이나 이전의 적들이 나타난다면, 지금 상태로는 아무나 그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
이천후가 그렇게 자리를 뜨는 것을 본 왕하중이 그를 비웃었다.
“저 인간 충격이 컸나 보네요. 저렇게 도망가는 걸 보니.”
“자기를 떠난 임은설이 점점 더 잘 될 거라는 걸 저 인간도 이젠 분명히 알았겠죠.”
노미연이 웃으며 말했다.
임은설도 우아한 목을 보란 듯 꼿꼿하게 세웠다.
이혼을 선택한 것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한 느낌이다.
물론, 앞으로 더 많은 성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 시간, 이천후는 당운각의 한 룸에서 눈앞의 물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네모난 나무 상자에 담긴 영지였다.
보통 영지보다 서너배 큰 이 영지는 전체적으로 검붉은색을 띠었고, 사람의 혈관 같은 핏 빛 무늬로 뒤덮여 있었다.
정신을 맑게해 주는 강한 약재 냄새와 영기가 풍겨났다.
“태어나서 이렇게 큰 혈영지는 처음 봐요. 정말 도시 하나를 줘도 아깝지 않겠어요.”
맞은편에 앉은 한아연은 길고 하얀 손으로 턱을 괸 채 황홀한 눈으로 영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린고비 우리 할아버지가 이렇게 귀한 물건을 당신한테 주다니,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네요.”
한아연이 말했다.
이천후가 미소를 지었다.
“당신 할아버지는 자린고비일 뿐 아니라, 불여우지! 혈영지를 절반 가까이 잘라놓고, 눈속임으로 가렸네.”
“네? 절반을 잘라요? 이게 어딜 봐서 절반이에요, 완벽한 하나구만!”
한아연은 놀란척했지만, 그녀 눈 속의 웃음기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그녀는 물론 할아버지의 일 처리 방식을 잘 알고 있다. 이런 물건을 그냥 줄 사람이 아니다.
“상관없어. 이 혈영지는 500년이 아니라 700년 된 거야. 약효가 당연히 더 강력하지. 절반 가까이 없어도 괜찮아.”
이천후가 하하 웃었다.
“우리 할아버지도 잘못 볼 때가 있구나!”
이번에는 한아연도 진심으로 놀랐다.
“잘못 본 게 아니라, 볼 줄을 아예 모르는 거지. 알았으면 절반 넘게 잘랐을걸?”
이천후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 연회 참석 안 해? 지금 가야 할 것 같은데.”
이천후가 한아연을 쳐다보았다.
“그깟 연회, 참석하나 마나. 오늘 너무 피곤하네요. 안 갈래요.”
한아연이 안타까운 눈길로 영지를 바라보았다.
“나 쬐금만 먹어 봐도 돼요?”
“물론!”
이천후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 일곱 개 구멍에서 피가 나도 괜찮다면, 얼마든지 먹어.”
한아연의 표정에 두려움이 스쳤다. 그녀가 즉시 물었다.
“당신은 먹어도 괜찮아요?”
“나는 진기로 약효를 조절할 수 있으니까.”
“그럼, 나도 약효를 조절할 수 있게, 당신이 진기를 써서 도와주면 되겠네요. 아주 조금만 먹을 게요.”
한아연이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한아연의 매혹적인 자태를 바라보던 이천후가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약효를 조절할 수 있게 도와줄 수는 있는데, 그러려면 일단 당신 옷을 벗어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