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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7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20여분을 넘게 걸으니 소은정은 다리가 저리고 물집이 생겼는지 여기저기가 따끔거려 왔다. 그를 따라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다행히 폭우가 그친 뒤였다. 숲을 벗어나 멀리 걸어오니 질퍽해진 땅에 발도 쉽게 들 수 없었다. 그러나 제 앞의 남자는 그렇게 오래 걷고 뛰었는데도 힘든 기색 하나 없었다. 이런 환경에 익숙해진 것일까…. 연이은 암초들과 산비탈을 지나 도착한 곳에서 박우혁은 사람 반 크기의 커다란 돌을 치웠다. 그러자 웬 동굴이 나타났다. 단군신화인가? 소은정은 군말없이 그를 따라 들어갔으나 공간은 매우 협소했다. 성인 둘로 꽉 차는 공간에 바닷물이 스멀스멀 비집고 들어왔다. 박우혁은 이랑곳 않고 벽에 뚫린 40센티 가량의 틈으로 들어갔고, 틈을 통과한 그가 안에서 소은정에게 손짓했다. 내키지 않았으나 그녀는 몸을 돌려 틈으로 비집고 들어섰고, 이내 펼쳐진 광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틈 너머 공간은 넓게 뚫려 있었으며, 건조하고 깨끗한 나뭇잎이 깔려 있어 조금 습한 것 빼고는 바깥보다 10배는 좋았다. 게다가 등불도 있었다. 박우혁은 배낭을 꺼내 들었고, 소은정은 익숙한 라스포티바 브랜드에 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배낭에서 남성용 바람막이 재킷을 꺼내 입었고, 같은 종류의 바지도 꺼내 입으려 허리를 굽혔으나 이내 소은정의 시선에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소은정은 또 어느 틈으로 그가 사라질까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런 그녀에 박우혁이 말을 건넸다. “계속 쳐다볼 건가?” 소은정은 어리둥절하다 이내 그의 뜻을 깨닫고 황급히 몸을 돌렸다. 얼굴이 뜨거웠다. “목마를 텐데, 옆에 도구 있으니까 물 좀 담아오면 증류해서 마시자고.” 그는 어색함을 풀어보려 일부러 말을 건넸다. “아, 좋아요.” 소은정은 맑은 물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나뭇잎 몇 개를 엮은 ‘도구’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여기서 무얼 더 가리겠는가. 소은정은 울적한 얼굴로 나가 옆 바위 틈에서 그나마 깨끗한 물을 그릇에 담았다. 박우혁은 어느새 옷을 갖춰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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