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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장

박세율은 익숙한 목소리에 급히 계단 입구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정가현은 우아한 벨벳 치마를 입고 있었고 뒤에는 표정이 차가운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 생김새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너! 네가 왜! 너 죽었잖아?” 박세율의 표정이 굳었고 눈동자에는 경악과 믿기 힘든 감정이 가득했다. “어떻게! 넌 비행기에서 뛰어 내렸는데 어떻게 살아 돌아올 수가 있어!” “미안해, 많이 놀랐어?” 정가현은 환하게 웃고 있었고 여전히 변함없이 예뻤다. “이 쌍년이, 너 때문에 한진 씨가 파혼하겠다는 마음이 생긴 거야! 죽여 버리겠어!” 박세율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정가현을 향해 덮쳤다. 함께 죽으려는 기세가 가득했다. 하지만 정가현은 가볍게 피했고, 몸을 가누지 못한 박세율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어.” 유한진은 정가현의 볼을 꼬집으며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들어가서 모연진의 상황을 살펴봐. 여긴 내가 처리할게.” “그래, 알아서 잘 처리해.” 정가현은 바로 대답하고 얼굴을 꽁꽁 감싼 유석열과 함께 모연진의 방으로 들어갔다. 유한진은 정가현의 뒷모습이 복도 끝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 나서야 머리를 돌려 음침한 얼굴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박세율을 바라보았다. “난 이미 박씨에 전화했어. 우리 결혼은 취소야. 당신 잘못을 따지기 전에 당장 꺼져.” 그의 얼굴에 나타난 혐오의 감정은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었다. “너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한진 씨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야. 이게 내 사랑에 대한 응답이야? 왜 나한테 이렇게 독해? 거짓말이지? 결혼을 취소 안 했지?” 박세율은 통곡했다. 유한진은 차가운 얼굴로 제 자리에 서서 박세율의 추태를 내려다보았다. “아가씨! 가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유 사장님의 말이 사실입니다!” 강기영은 박세율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회장님과 사모님께서 아가씨를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싫어! 나 안가! 누가 말해도 안 간다고!” 박세율은 강기영의 손을 뿌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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