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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불과 20분 만에 경안시 인터넷이 들썩거렸다. ‘주식의 신 복귀’라는 소식이 실시간 검색어를 점령해 버린 것이다. 차 뒷좌석에 앉은 심민아는 휴대전화 속 실시간 검색어를 보고 임미정의 능력에 감탄했다. 창밖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자 문득 6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 걸 바꿀 수 있는지 새삼 느껴졌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6년 전의 임미정은 늘 자신의 뒤에 숨어 훌쩍이던 작은 울보였는데, 이제는 스스로를 책임지는 당당한 임연 그룹 대표로 성장해 있었다. 박씨 가문의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심민아가 아직 들어가기도 전에 박수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죽지 마!”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그녀는 황급히 안으로 달려갔다가, 수십 명의 의사들에 둘러싸인 박지훈을 보았다. 아이 얼굴은 잿빛으로 창백했고, 작은 몸을 소파 구석에 웅크린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무슨 일이야?” “위선 떨지 마.” 박지훈은 애써 버티는 듯 다정한 손길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심민아는 잠시 침묵했다. 저 고집스러운 태도는 딱 자신을 닮았다. 달래서 안 되겠으면 강경책이라도 쓰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도망치려는 박지훈을 꽉 붙잡았다. 다음 순간, 박지훈은 그녀의 팔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입 안 가득 피비린내가 감돌았다. 그건 심민아의 피였다. 거의 반사적으로, 박지훈은 깨물고 있던 이를 놓았다. 웅크린 그의 작은 어깨가 바르르 떨렸다. 이제 그녀가 분노를 터뜨릴 차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심민아는 그를 때리는 대신 부드럽게 눈을 맞추며 말했다. “괜찮아. 안 아파.” 박지훈은 못마땅한 얼굴을 한 채 시선을 돌렸다. “누가 당신 걱정했어?” 심민아는 진지하게 그를 바라봤다. “그런데 난 네가 걱정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온갖 반항을 일삼던 박지훈은 갑자기 가만히 굳어 버렸다. 걱정, 그가 그토록 꿈꿨던 말이었다. ‘다 거짓말이겠지. 전에는 나랑 수연이를 짐짝처럼 여겼으니까.’ 그녀가 말했었다. 그와 박수연은 짐이고, 속 썩이는 벌레일 뿐이라 가치가 없다고. 그래도 더 이상 거부는 하지 않는 기색이어서, 심민아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의 맥을 짚었다. 맥을 본 뒤, 그녀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다섯 살짜리가 어떻게 이렇게 심한 위장병에 시달릴 수 있지?” 말이 떨어지자, 곁에 있던 도우미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애써 고개를 숙였다. 심민아는 그 미묘한 기색을 놓치지 않고 몰아붙였다. “내 아이들한테 함부로 굴었어요?” 그녀의 차디찬 목소리는 강한 위압감을 뿜어냈고, 도우미들은 잔뜩 겁에 질려 우르르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벌벌 떨며 변명했다. “사모님, 저희가 어찌 도련님과 아가씨를 홀대하겠어요! 이건, 이건 전부 사모님이 지시하신 거예요! 사모님이 아침이랑 저녁은 절대 주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잡종한테 먹일 바에는 차라리 개한테 주는 게 낫다고!” 심민아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곧장 박지훈 쪽을 살폈지만, 아이는 소파에 앉아 텅 빈 눈으로 아무 감정도 없어 보였다. 그것은 침묵이 아니라 무감각이었다. 마치 모든 걸 포기한 듯한 표현이었다. 고작 5살짜리가, 성장기에 하루 한 끼만 먹으며 온갖 모욕까지 겪었다니...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지금 당장 자기 뺨이라도 때려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건 누가 봐도 악독한 계모랑 다를 바 없는 짓이잖아!’ “쌀죽 좀 끓여줘요.” 심민아는 도우미들에게 지시했다. “위가 약해졌으니 죽이 좋을 거예요.” 그들은 뒷걸음질 치며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치 더욱 무서운 존재를 본 것처럼 기절할 기세였다. 심민아가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박진호가 서 있었다. 차갑게 굳은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아이들이 이런 고통 속에 지내고 있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결국 그의 이기심이 두 아이를 해치게 만든 셈이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박수연은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박진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아빠, 엄마는 잘못 없어. 나랑 오빠가 밥 먹기 싫어서 그런 거야...”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감싸 주는 딸을 보며, 심민아는 가슴 한편이 깊이 찔리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잔혹한 짓을 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딸은 원망하지 않을 뿐 아니라 끝까지 자신을 감싸고 있었다. “지훈이 병, 내가 고칠 수 있어...” 그녀가 만회라도 하듯 말했지, 박진호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아무리 내가 미워도 그렇지. 어떻게 애들한테 그런 짓을 해. 애들은 네 자식이기도 하잖아...”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두 아이는 애초에 박진호가 강제로 얻은 아이들이니까. 자신도 얻지 못한 그녀의 사랑을 아이들에게까지 바라기는 어려웠다. “아파...” 품에 안긴 박지훈이 복통에 몸이 굳어 버리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신음을 내질렀다. 박진호는 당장이라도 난리를 칠 기세로 의사들을 향해 외쳤다. “뭐해요! 빨리 치료해야 할 거 아니에요!” 의사들은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도련님 위장병이 너무 오래 방치돼서 상태가 심각합니다. 아이한테 쓸 수 있는 약도 거의 없고, 저희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요.” 바로 그때, 한 여자 의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신의 안선생을 모셔 올 수 있다면 치료가 가능할 것 같아요. 듣기로는 침술 하나로 웬만한 병은 전부 고친다고 했어요.” 문제는 그 안선생이 워낙 행방이 묘연하고, 박지훈은 시간을 끌 겨를이 없다는 점이었다. 박지훈의 상태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게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심민아는 그런 모습을 보며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이대로 두면 정말 위험했다. 그녀는 막아서려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성큼 다가가 은침을 박지훈의 손등 혈 자리에 놓았다. “심민아!” 박진호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지만, 그녀는 진지하고 단호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나 한 번만 믿어 봐.” 다시 품 안에 안긴 박지훈을 보니, 신기하게도 조금 전보다 통증이 누그러든 듯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박진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손을 놓았다. 심민아는 재빨리 고풍스러운 자수 주머니를 펼쳐 은침들을 꺼내더니, 박지훈의 여러 혈 자리에 신속하면서도 정확하게 놓았다.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아, 극심한 복통에 몸부림치던 박지훈은 이마의 주름을 풀고 얌전히 잠이 들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의사들은 할 말을 잃었다. 조금 전만 해도 자신이 치료하겠다며 큰소리친 심민아를 믿지 않았는데, 실제로 단 세 번가량의 침으로 아이의 통증이 눈에 띄게 호전된 것이다. 이 정도 수준으로 침술을 구사할 사람은 ‘신의 안선생’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안시에서 연애 바보로 유명한 심민아가 그런 능력을 지녔을 리 없다고들 생각했다. 어쨌든 아이가 안정을 되찾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화장기도 없는 그녀의 얼굴은 오히려 담담하게 빛났고 묘하게 우아한 아름다움마저 풍겼다. 박진호는 잠시 넋을 잃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몰려오는 복합적인 감정을 억누르려 고개를 숙였다. ‘이미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의술은 예상치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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