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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화

“……” 여름은 완전히 말문이 막혀버렸다. 처음 하준을 만났을 때 입만 열면 플러팅을 위한 말을 날렸던 자신에게 하준이 정신 나간 거 아니냐며 험한 소리를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때 여름은 이런 미녀가 유혹하는 것도 못 알아본다며 최하준이 바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하준이 그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응급실로 들어가니 접수하기 위해서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야 했다. 하준은 다친 자기 오른팔을 들어 보였다. “난 못쓰는데.” 할 수 없이 여름은 하준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주고 접수했다. 하준은 내내 여름을 졸졸 따라다녔다. 의사는 X레이를 찍어주고 마지막에는 링거를 하나 처방해 주었다. 간호사가 바늘을 꽂을 때 시간을 보니 이미 12시가 넘어 있었다. 여름과 더 있고 싶었지만 자기 때문에 여름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전화기 좀 빌려줘. 김 실장에게 전화 한 통화 하게.” 여름은 상혁을 불러 간호를 시키려는 줄 알고 전화기를 건넸다. 그런데 상혁과 통화가 되자 하준이 말했다. “나 병원인데, 지금 이쪽으로 와서 여름이 좀 데려다줘.” 하준의 통화가 끝나가 여름은 인상을 썼다. “상혁 씨가 데려다 줄 필요 없어. 택시 타고 가면 되는데.” “안 돼. 이 오밤중에 혼자서 택시를 타다니 너무 위험해.” 하준이 고개를 저었다. “영수증은 주고 가. 내일 바로 보내줄게.” 여름이 하준을 흘겨보았다. 오늘은 병상이 다 차서 하준은 의자에 앉아서 링거를 맞고 있었다. 창백한 병원 조명을 받으며 혼자 멍하니 앉아 있는 하준을 보자니 그 귀족적인 분위기와 난장판이 응급실의 분위기가 너무나 안 어울렸다. 아무리 봐도 너무 처량했다. 여름은 눈을 감았다. ‘아니야. 독한 마음이 약해지면 안 돼.’ “됐어. 돈 돌려준다는 핑계로 또 만나려고 하는 거 모를 줄 알아?” 진짜 목적을 간파당한 하준은 피식 웃었다. “됐다니 그러면 받아둘게. 그래, 주머닛돈이 쌈짓돈이지. 알아, 알아.” “누구더러 주머닛돈이 쌈짓돈이래?” 여름은 하준의 뻔뻔함에 할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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