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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오만한 사칭범

주옥분은 확고한 눈빛으로 자신에 차서 이야기했다. 그녀는 경멸 어린 시선으로 온몸을 꽁꽁 싸맨 수지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사칭범이라고 이마에 써 붙이지 않았을 뿐이지 주옥분의 눈에 수지는 가짜가 분명했다. “이분이 진짜 제니 선생님이세요.” 주옥분의 말에 세련된 여자가 앞으로 나섰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박서진을 쳐다보는 여자의 눈빛에 애정의 빛이 스쳐 지나갔으나 그녀는 곧바로 감정을 감추며 힘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맞아요. 제가 진짜 닥터 제니예요. 박서진 씨, 지금 어르신의 병은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 더 이상 치료를 미뤄서는 안 돼요. 지금 당장 치료해야 해요. 만약 사칭범에게 함부로 치료를 맡긴다면 어르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어요. 당신이 닥터 제니라면 증거를 보여요.” 여자는 경멸 어린 시선과 고고한 자태로 수지를 쳐다보았다. 여자의 말에 수지는 입꼬리를 올리며 돋보기안경 너머로 비웃음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내가 왜 나를 증명해야 하죠?” “당신이 닥터 제니인 걸 증명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어르신을 치료할 수 있죠?” “그럼 그쪽은 본인이 닥터 제니라고 주장하는 증거가 뭐예요?” 옆에 있던 이다은은 더는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수지가 닥터 제니라는 사실은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난 내가 닥터 제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어요.” 곧이어 여자는 핸드폰을 꺼내 이메일을 열더니 박서진이 닥터 제니의 비서에게 보낸 메일을 보였다. “제가 박서진 씨와 주고받은 메일들이에요. 박서진 씨의 요구들이 전부 여기 들어있어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 여자는 핸드폰을 박서진에게 건네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박서진 씨, 제 이름은 나희정이에요. 성수 의대를 졸업했고 몇 년 동안 닥터 제니의 신분으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왔어요. 그런데 체력에 한계가 있다 보니 모든 환자를 진료할 수 없었어요. 처음에 어르신의 병을 자세히 보지 않아서 거절했지만 나중에 박서진 씨가 끊임없이 보내오는 간절한 메일을 보고 효심에 감동해서 다시 어르신의 상황을 자세히 읽어봤어요. 그러고 나서 진료를 맡기로 결심했죠.” 말을 이어갈수록 나희정의 목소리는 점점 더 다정하게 변했고 박서진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숨기지 못한 애정의 빛이 드러났다. 그러나 긴 다리를 꼰 채 소파에 앉아 있는 박서진의 잘생긴 얼굴은 무표정했다. 그는 나희정이 건넨 핸드폰 액정을 바라봤는데 확실히 그가 보낸 진료 요청 메일이 있었고 내용과 날짜까지 정확했다. 메일을 확인한 박서진은 시선을 돌려 수지를 쳐다보았다. “제니 선생님 생각은 어때요?” 수지는 박서진이 여전히 자신을 제니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그의 마음속에 이미 답이 정해져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박서진이 자신을 믿어준다면 수지는 힘들게 시간을 들여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만약 박서진이 믿지 않는다면 수지가 닥터 제니가 자신임을 증명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한 번만 말할게요. 닥터 제니는 나예요. 다른 것에 관해서는 말하고 싶은 게 없네요.” 수지는 담담한 어투로 말하며 시선을 들어 나희정을 바라보았다. “성수 의대 졸업생인데 왜 나는 나희정 씨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죠?” “당신은 어디 출신인지도 모르는 사칭범이니까 당연히 성수 의대를 모르겠죠.” 나희정은 오만한 눈빛으로 수지를 내려다보았다. “충고하겠는데 박서진 씨가 화를 내기 전에 얼른 꺼져요. 안 그러면 결과를 감당할 수 없을 거예요. 박서진 씨, 사칭범은 자신이 닥터 제니라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했으니까 그냥 나가라고 해요.” 수지는 자신의 앞에서 누군가 닥터 제니라고 자칭하며 오만하게 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처음이라 화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웃음만 나왔다. 이때 수지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박서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두 분이 스스로 닥터 제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세요. 나희정 씨는 한 가지 증거를 제시했으니까 이젠 그쪽 차례네요.” 말을 하며 박서진은 수지의 양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에는 매니큐어가 되어 있지 않았고 손톱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데다 은은하게 핑크빛이 돌아 보고만 있어도 눈이 즐거웠다. 심지어 박서진은 수지가 이런 손으로 메스를 쥐고 수술하는 모습이 얼마나 눈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장면일지 자동으로 상상이 되었다. 수지는 박서진의 요구에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돋보기안경 너머로 평온하게 박서진을 쳐다보았다. “박서진 씨는 저를 믿지 못하는 건가요?” 아까 박서진이 자신을 믿어준다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수지의 착각이었다. 그녀의 질문에 박서진은 대꾸했다. “저도 믿고 싶지만 나희정 씨를 데려온 사람이 최 원장님 아내분이신데다 본인이 닥터 제니라는 증거를 제시했잖아요. 그러니까 그쪽도 본인이 닥터 제니라고 주장하려면 나희정 씨와 최 원장 아내분이 납득할 만한 증거를 내놓아야죠.” 수지는 왠지 박서진에게 다른 목적이 있다고 여겨져 눈을 가늘게 떴다. 박서진은 세계적인 부자이고 성수 해원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이다. 16살 되던 해에 해원 그룹에 들어갔고 18살에는 책임감 있고 결단력 있는 수단으로 그룹 내의 이단자들을 처리해 해원 그룹을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만들었다. 소문에 의하면 해원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인 박서진은 무자비하고 악랄하며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데다 꼬투리 잡을 만한 약점이 한 가지도 없다고 했다. 박서진에게 미운 털이 박히거나 배신을 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결말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수지는 박서진의 약점이 박선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소문과 달리 박서진은 박선재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다. 만약 박서진이 처음부터 수지를 의심했다면 조사를 했을 것이다. 그 뜻은 박서진은 이미 조사를 끝냈고 수지가 진짜 닥터 제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박서진이 주옥분과 나희정의 말에 동조하며 증거를 내놓으라고 하는 모습이 수지는 우스웠다. 닥터 제니는 단지 수지가 외부에서 진료를 볼 때 사용하는 신분에 불과할 뿐 중요한 것은 수지 본인 자체이다. “그러니까 박서진 씨는 저를 믿지 않는다는 거네요.” 박서진은 꼬고 있던 다리를 풀며 천천히 몸을 곧게 폈다. 그는 낮은 저음의 목소리로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저희 할아버지의 목숨이 달린 일이라 저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네요. 이해해 주세요. 닥터 제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사이고 집도한 수술도 많으니까 두 분은 그중에 기사회생했던 환자의 수술 과정을 말해주시면 돼요.” “닥터 제니의 수술 과정을 들을 여유가 있다면 차라리 어르신의 치료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수지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수술 과정이 보고 싶은 거라면 직접 두 눈으로 지켜보면 되겠네요. 굳이 말로 전해 들을 필요가 있나요? 그렇지만 그전에, 나희정 씨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네요.” 수지는 말을 마치자마자 핸드폰을 꺼내 성수 의대 학장에게 연락했다. 곧이어 연결음이 울리더니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제니, 드디어 나한테 전화를 해주네요.” 핸드폰을 통해 성수 의대 학장인 진봉태의 깜짝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한테 연락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마침내 이런 날이 오네요.” “성수 의대에 나희정이라는 이름의 졸업생이 있다고 하던데,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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