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배민훈이 떠난 지 3일이 되었다. 송민지도 곧바로 학교생활에 적응했다.
송민지가 다닐 학교는 하늘 고등학교였다.
버스를 타면 다섯 정거장인 거리이다.
송민지는 조식을 산 뒤 첫 버스에 탔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거리를 보자 자신이 다시 살아난 것이 다시 한번 실감 나면서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높은 빌딩 형광판에는 D시 재벌가 배씨 가문이 이씨 가문 이시아와 결혼한다는 소식이 보도되고 있었다.
기자회견에서는 우아하고 세련된 이시아가 배민훈의 팔짱을 낀 채 미소 지으며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맞아요. 저희 곧 결혼할 거예요."
"바로 다음 주입니다."
기자가 축하인사를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신혼이 되길 바랍니다."
이시아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그 순간 카메라가 이시아의 손에 낀 반지를 찍고 있었고 이시아의 얼굴은 행복한 미소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옆에 있는 남자는 정장을 입은 채 차가운 분위기에 깊은 눈동자가 아주 부드러웠다. 배민훈은 아주 뛰어난 외모이다. 송민지는 여태껏 배민훈보다 더 잘생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의 옆에 서 있는 이시아의 외모는 둘째치고 두 사람의 분위기가 아주 잘 어울렸다.
다른 사람들은 두 사람 다 선남, 선녀라서 너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배민훈, 난 이번에는 오빠의 짐이 되지 않을 거고 두 사람의 생활에 개입하지 않을 거야."
기자가 또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앞으로는 배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게 맞겠죠?"
이시아는 부끄러워하며 대답하지 못했다. 결국엔 배민훈이 다시 본론으로 얘기를 돌려 스타 그룹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말했다.
마치 배민훈은 처음부터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천하의 자랑스러운 아들이고 곁에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다. 그리고 송민지는... 단지 걸림돌일 뿐이다.
'배민훈, 이번 생에는 이시아와 흰머리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 행복하게 살길 바랄게.'
D시 하늘 고등학교 6반.
송민지가 버스에서 내려 2층 교실로 들어서니 마침 아침 자습 시간이었다.
송민지는 반에서 성적이 나쁜 편이 아니다.
전생에 배운 것을 완전히 잊지 않아 오전에 있던 수학 강의는 겨우 따라갈 수 있는 정도였다.
"민지야, 너 그동안 어디 갔던 거야?"
그녀의 짝꿍 하율이 말을 걸었다.
송민지는 손목 상처를 힐끔 보았다. 이틀 전에 실밥을 풀어 지금은 이미 거의 나은 상태였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 없어 송민지는 대충 핑계를 댔다. "별일 아니야. 그냥 열이 좀 났어."
"그렇구나! 지금은 괜찮은 거야?"
"응."
하율이 또다시 말을 걸었다. "참, 주익현이 너한테 고백했단 게 정말이야? 그래서 받아줬어?"
송민지는 필기를 하다 멈칫했다.
주익현, 그 이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배민훈의 라이벌이자 미래의 인터넷 업계의 거물, 맨손으로 창업해 조에 달하는 재산을 이루고 유일하게 배민훈과 동석할 수 있는 사람.
전생에 송민지는 주익현이 자신을 좋아하는 걸 알고 그를 이용하여 이시아와 대적하고 교통사고까지 일으켰다.
그 당시 배민훈은 그 일을 알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아무런 배경도 없는 주익현을 곧바로
상해 혐의로 감옥에 넣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피땀을 흘려 창립한 헌터 소셜이 하룻밤 사이에 파산의 위기에 놓여졌다.
전생에 그녀는 주익현에게 제일 미안하다.
그만 떠올리면 송민지는 가슴이 미친 듯이 아파왔다.
송민지가 불편한 기분을 꾹 참으며 대답했다. "우리 오빠는 내가 일찍 연애하기를 원하지 않아. 그리고 난 아직 어리니 그냥 공부에 집중하고 싶어."
주익현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무런 배경이 없다. 어머니는 요독증을 앓고 있고 아버지는 의사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일수록 노력을 남보다 백배 더 한다. 그는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 신과 같은 존재이고 심지어 수능을 볼 필요 없이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다.
하율이 말했다. "난 주익현이 괜찮은 거 같아. 그리고 고등학교에서 연애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냥 공부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 되지. 게다가 주익현이 너한테 공부를 가르쳐 줄 수도 있잖아. 그러면 너희는 같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을 거야."
한편 송민지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배민훈 때문에 자살하기 전날, 그녀는 주익현과 다툼이 있었고 심지어 그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다.
그는 가난한 녀석이니 그와 함께하면 미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짐만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떠올리면 송민지는 너무 후회가 되어 자신의 뺨을 때리고 싶은 정도이다.
전생에 주익현은 배민훈을 제외하고 그녀에게 가장 잘해주는 사람이었다.
하율이 계속해서 말했다. "네가 항상 말하던 네 오빠는 뭘 하는 사람이야?"
송민지가 말했다. "몰라. 오빠가 너무 바빠서 연락 안 한 지 오래됐어."
"주익현, 너 오늘 왜 그래? 왜 공을 그따위로 차는 거야?"
그때 교실 밖 복도에서 주익현 절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민지가 흠칫 놀란 채 고개를 돌리자 큰 키에 검은 피부, 그리고 조각 같은 얼굴에 반팔 교복을 입고 있는 주익현이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하율이 잔뜩 흥분한 채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빨리 봐, 주익현이야."
"사실 주익현도 정말 잘생겼어. 그렇지?" 그들의 말을 들은 것인지.
이때, 주익현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송민지와 눈을 마주쳤다. 주익현의 냉담했던 눈빛은 예전과 달리 조금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전생에 주익현은 스스로 모든 죄를 떠안은 채 감옥에서 지냈다.
그 생각에 송민지는 가슴이 비수에 찔린 것처럼 아팠다.
그녀는 영원히 그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
한편 송민지가 자신을 낯선 사람처럼 바라보자 주익현은 차갑게 시선을 거두고 자리를 떴다.
그때 주익현의 친구가 말했다. "너 송민지랑 끝났어?"
송민지는 주익현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도 모른다.
하늘 고등학교에서 주익현이 송민지를 좋아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주익현 때문에 선생님이 얼마나 그녀를 귀찮게 했는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연애를 해 공부에 방해될까 봐 걱정되서 말이다.
그녀는 갓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저녁 밤 자습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다 골목길에서 싸우다 피투성이 된 주익현을 만난 뒤부터 두 사람이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송민지가 곧바로 구급차를 불러 그를 도와줬다.
두 번째는 그녀가 양아치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주익현이 그녀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녀가 생리할 때 달리기를 하다 쓰러져 주익현이 곧바로 그녀를 안고 보건실로 달려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알게 되었다...
송민지는 이과가 약하다. 매번 성적이 안 좋을 때면 주익현이 그녀에게 문제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두 사람의 사이가 너무 좋아 다른 사람들은 둘이 사귀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고1은 강의가 너무 많은 편이 아니라 통학생들은 야자를 안 해도 된다.
수업이 끝나자,
송민지는 가방을 메고 학교를 떠났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갑자기 검은색 승용차가 그녀 앞에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