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배민훈은 송민지를 도와 학교에 일주일 동안 휴가를 신청했다.
그리고 송민지가 퇴원한 후로 배민훈은 오랫동안 그녀에게 가지 않았다.
새벽 12시, 송민지는 목이 말라 방에서 나와 물을 따라 마셨다.
그때 문밖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고
송민지가 확인해보니 술에 취한 사람이 온 거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 배민훈의 비서 고서원이 서 있었다.
송민지가 서둘러 문을 열자
고서원은 즉시 배민훈을 부축하여 소파에 앉혔다.
고서원은 송민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배 대표님이 파티에서 술을 좀 많이 마셨어요. 민지 씨한테 좀 부탁할게요."
송민지는 고서원을 여러 번 만났어서 불편함 없이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수고하셨어요. 고 비서님."
고서원이 자리를 뜨자 송민지는 소파에 다가가 배민훈의 외투와 신발을 벗겨주었다.
배민훈은 배씨 가문에 머무르기 힘들거나 외부에서 귀찮은 일을 겪을 때만 잠시 돌아와 그녀의 곁에서 머물곤 했다.
배씨 가문은 권력을 위한 것이면 사람이라도 잡아먹을 수 있는 집안이다.
그때 남자가 흐릿하게 눈을 떴다. 눈을 떠보니 송민지가 낡은 흰색 잠옷을 입고 있었고, 치마가 마침 무릎 위치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그 가늘고 흰 다리에 어렴풋이 속옷이 비쳤다.
송민지가 냉장고에서 미리 준비한 해장국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자 배민훈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송민지는 조금 어색해하며 조심스레 그를 챙겨주었으며 눈빛에는 여전히 전생에 배민훈에 대한 공포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남자는 취한 얼굴로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상처는 좀 나았어?"
배민훈이 갑자기 말을 걸자 송민지는 깜짝 놀랐다. "괜... 괜찮아요.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오빠..."
"내가 너한테 선물한 옷은 왜 안 입는 거야?"
송민지가 겁을 먹은 걸 알아차린 듯 배민훈이 눈에 힘을 풀었다.
병원에서 나온 이후로, 이 작은 소녀는 그를 무서워하는 것 같다.
송민지가 대답했다. "베란다에 말리고 있어요. 아직 옷이 덜 말라서 안 들여왔어요."
집은 조금 낡았지만, 배민훈은 물질적인 면에서 절대로 소홀히하지 않았다.
송민지는 배민훈의 옆에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 그녀의 얇은 잠옷 사이로 성장이 덜 된 몸매가 어렴풋이 보였다. 송민지는 배민훈의 눈빛을 피한 채 숟가락으로 그에게 해장국을 먹여주었다. "오빠, 앞으로 이렇게 많이 마시지 마요. 건강에 안 좋아요."
그가 입을 벌리고 한 모금 마셨다. "응."
토마토 수프라 숙취 해소에 아주 좋았다.
현재 배민훈은 한 회사의 대표이기에
고객 접대는 피할 수 없어, 매번 잔뜩 취해서 들어오기 십상이었다. 하여 송민지는 어릴 적부터 그를 돌보는 법을 배웠다.
송민지는 배민훈의 손등에 있는 상처를 보고 걱정스레 물었다. "손을 다쳤어요? 무슨 일 있었어요?"
배민훈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손을 눈에 올려놓았다. "그냥 조금 긁힌 거야. 괜찮아."
배민훈이 수원 지역 프로젝트를 이씨 가문에 넘겨줘 어르신이 화가 난 나머지 컵을 던질 때 파편이 튀어 손이 조금 긁혔다.
그의 상처는 심각한 편은 아니었다. 이미 몇 시간이 지난 것인지 지금은 피가 나지 않는 상태였다.
배민훈이 전생에 입은 상처에 비하면 이번에는... 아주 가벼운 편이었다.
그가 말하기 싫어하자 송민지는 입을 다문 채 천천히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약 상자를 꺼냈다.
곧이어 배민훈은 손끝에 전해지는 부드러운 느낌에 눈을 떠보니 송민지가 소독수를 묻힌 면봉으로 상처를 닦고 있었다. 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검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빛나는 피부는 마치 갓 껍질을 벗은 계란처럼 매끈하고 탱탱했고, 청순한 눈빛은 아주 순수해 보였다.
송민지는 지금은 어린 나이지만, 조금만 더 크면 어떤 남자의 마음이든 끌 수 있을 정도로 예뻤다.
한편 송민지는 상처를 잘 처리한 뒤에 거즈로 감싸며 걱정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오빠, 앞으로 다치지 않게 조심해요."
배민훈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응."
송민지는 고개를 들어보니 배민훈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걸 알아차리고는 곧바로 시선을 피했다.
그녀가 갑자기 물었다. "오빠, 언제 이시아 씨와 결혼할 거예요?"
그 질문에 배민훈은 순간 차가워졌다. "그 여자가 널 찾아왔었어?"
송민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며칠 전에 티비에서 오빠를 봤어요. 오빠가 이시아 씨와 결혼할 거라고 했잖아요?"
"오빠 결혼식에 나도 참석할 수 있어요?"
송민지는 붕대로 상처를 감싼 후 그의 손등에 예쁜 리본을 묶었다.
배민훈은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송민지는 아주 덤덤했다. 퇴원한 뒤로 눈 앞의 소녀가 바뀐 것 같았다.
배민훈이 말문을 열었다. "민지야, 난 앞으로 자주 오지 않을 거야."
송민지는 배민훈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아차리고는 멈칫했다.
배씨 가문과 이씨 가문이 곧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배민훈이 이시아에게 가야 배씨 가문에서의 지위가 더욱 안정될 것이다.
전생에 그녀는 배민훈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소란을 피워 결국 배민훈이 그녀를 배씨 가문에 데려간 것이었다.
송민지는 전생에 배씨 저택에 들어간 뒤에야 배씨 가문 사람들이 인정이라고는 없는 인간이라는 걸 알았다.
만약 배민훈이 아니었다면 인정사정없는 배씨 가문 사람들은 이미 송민지를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배민훈과 헤어져야 할 것 같다.
그녀는 배민훈과 혈육 관계가 아니었고, 여태껏 그녀가 끈질기게 매달려 온 거였다.
그리고 배민훈은 충분히 그녀에게 잘해줬다.
송민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알았어요. 스스로 잘 챙길 테니 걱정마세요. 오빠가 없는 세 달 동안도 잘 지냈잖아요."
"이제 나도 16살이 되었으니 밥을 해먹고 빨래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오빠가 줬던 용돈을 다 저축해두었으니 대학까지도 문제없어요."
"오빠,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해요."
"나는 괜찮아요."
배민훈이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다정하게 말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오빠한테 전화해도 돼."
송민지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미 배민훈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배민훈은 떠나기 전에 은행 카드를 남겼다. 비밀번호는 그녀가 보육원을 떠난 그 날... 바로 그녀의 생일이었다.
...
배민훈이 정말로 떠났다.
그녀가 배민훈에게 전화를 걸자, 배민훈의 번호는 이미 없는 번호가 되었다.
송민지는 괜찮은 척했지만 슬프지 않을 리가 없다.
그녀는 고아이기 때문이다.
배민훈을 제외하면 송민지는 주변에 그 어떤 친척도 없다.
이제 배민훈이 떠났으니 앞으로... 그녀는 혼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번에는 그녀의 간섭이 없으니, 배민훈은 분명히 이시아와 하루빨리 결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