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이시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어깨에 걸친 망토를 정리하더니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넌 소문을 너무 믿든 거 같아. 나랑 훈이는 어릴 적부터 같이 자라온 사이야. 나만 훈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자, 디저트를 다 샀으니 이만 돌아가자."
한편 송민지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지만 그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전생에서도 배민훈이 이시아를 아주 신경 썼다. 그렇다,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죽마고우이다. 그러니 이시아와 그녀는 비교 상대조차 안 된다.
그때 국수가 올라오자 송민지가 고춧가루 두 스푼을 넣고 세 번째 스푼을 넣으려던 그때 주익현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두 스푼이면 충분해. 많이 넣으면 위 아파."
"그럼 이 숟가락은 널 줄게."
송민지가 숟가락을 내밀기도 전에 주익현은 그녀의 숟가락을 자신의 그릇에 넣은 뒤 자신의 숟가락을 송민지에게 건넸다.
그때 송민지가 입을 뗐다. "내가 사용했던 거야."
주익현이 대답했다. "괜찮아."
그 말에 송민지의 먹구름으로 뒤덮였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더니 싱긋 웃으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주익현, 넌 정말 바뀌지 않네.'
스타그룹.
이시아가 정교하게 포장한 디저트 박스를 든 채 차에서 내려 회사로 들어가자 직원이 곧바로 그녀를 알아보고 싱긋 웃으며 맞이했다. "이시아 씨, 오셨어요? 대표님을 만나러 오신 거죠? 사장님은 지금 회의 중이라 조금 기다려야 해요."
이시아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요. 고마워요."
프런트 직원이 고개를 숙였다. "당연한걸요."
현재 D시에서 이씨 가문의 영애가 그 대단한 배민훈의 약혼녀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제외하면 대표님처럼 포스 있고 실력 있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여자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이시아는 대표 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 문이 조금 열린 회의실 사이로 배민훈이 왕좌의 자리에 앉은 모습이 보였다. 그의 검은색 셔츠는 단추 두개가 풀려 있었고 온 몸으로 매혹적인 분위기를 뿜어냈으며 그 조각 같은 얼굴과 섹시한 턱선에 정신이 팔려 이시아는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비록 그가 10여 년 동안 D시를 떠났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고 여전히 어릴 때처럼 그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돌아온 지 1년 반이 되었지만 이시아는 여전히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고 이전과 비교하면 조금 어색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이시아는 몇 일 동안 그에게 무시당한 걸 떠올리자 조금 실망했다.
그때 고서원이 밖에 서 있는 이시아를 눈치채고 허리를 숙여 배민훈에게 무슨 말을 한 것인지 배민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뒤, 고서원이 회의실에서 나왔다.
"이시아 씨, 이쪽으로 오세요."
그러자 이시아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미안해요.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와 방해한 거 같아요."
고서원이 예의있게 대답했다. "아니에요. 이시아 씨는 미래의 스타 그룹 여주인이십니다. 배 대표님이 언제든지 오시고 싶으시다면 막지 말라고 전달하셨습니다. 회의가 시작된 지 30분 정도밖에 안 되었으니 조금 기다리셔야 할 거예요."
고서원은 이시아를 대표 사무실로 데려간 뒤 비서에게 뜨거운 차를 올리라고 지시했다.
하여 이시아는 소파에 앉은 뒤 디저트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잠시 기다렸다.
얼마 뒤, 고서원이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시아 씨에게 할 얘기가 있습니다."
이시아가 입꼬리를 올리자 친근한 느낌을 주었다. "고 비서님, 얘기해요. 무슨 일인가요?"
고서원이 얼른 말했다. "배 대표님 앞에서 송민지 양에 대한 그 어떤 일도 언급하지 마세요."
그 말에 이시아가 추측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배민훈은 항상 여동생을 신경 썼잖아요? 설마 둘이 싸운 거예요?"
고서원이 설명했다. "송민지 양은 어찌되었든, 배씨 가문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잖아요. 이 정도까지 얘기했으니 잘 알아 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말 조심하길 바랍니다."
이시아가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그럴게요. 미리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고서원이 떠난 뒤, 이시아는 촘촘한 속눈썹을 깜빡이며 컵을 든 채 모든 감정을 숨겼다. 지금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30분 정도 지나자 사무실 문이 열리는 순간 이시아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얼른 소파에서 일어났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 가능한 빨리 조사해. 연말 전에 시작해야 해."
고서원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배 대표님."
그 시각, 배민훈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는 도도한 분위기와 강한 포스를 풍기고 있었으며 마치 아무도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는 것 같았다. 배민훈은 펜을 들고 서류를 힐끔 보더니 사인을 하고 고서원에게 건넸다.
그렇게 사무실에 두 사람만 남을 때까지 기다린 뒤에 이시아는 간식을 들고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훈아, 돌아온 뒤로 나랑 제대로 놀아주지도 않고."
이시아는 그의 뒤로 가더니 두 손을 그의 어깨 위에 가볍게 올려놓았다. 그녀가 착용하고 있는 파란색 다이아몬드 반지는 얼핏 보아도 아주 값비싸 보였다. 그때 배민훈이 테이블 위에 있던 물건을 보더니 눈빛이 어두워졌다. "학교에 간 거야?"
이시아가 그의 불쾌한 기분을 알아차리고 얼른 해명했다. "지난번 네가 그 밤빵을 먹는 걸 봤어. 대학가 근처 백화점에서 쇼핑하다 좀 샀어. 빨리 먹어 봐. 아직 식지 않았을 거야. 식으면 맛 없어져."
배민훈이 물었다. "무슨 밤빵?"
이시아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지난 달에 네가 먹었잖아. 잊었어? 설마 네가 산 게 아니야?"
그때 배민훈이 무언가 생각난 듯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쓸데없는 일을 하지 마. 요즘 안 바빠?"
밤빵은 그냥 송민지가 대학가에서 산 간식일 뿐이다. 줄을 오래 섰는데 송민지가 너무 달아 맛없다고 그에게 넣어준 것이다.
그리고 배민훈은 평소 음식을 낭비하는 것이 싫어 그냥 억지로 다 먹은 것이다.
그 말에 이시아는 멈칫하더니 이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싱긋 웃었다. "내가 왜 바쁘겠어. 건강이 이러니 최근 한약을 마시고 있어. 언제쯤 나을 수 있을지."
"며칠 뒤에 다른 한의사로 바꿔봐. 건강을 잘 챙겨. 난 최근 회사 일이 바빠 같이 시간 보낼 수 없을 거 같아."
이시아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배민훈, 엄마가 결혼 시간도 거의 다가오니 내가 미리 군영 저택으로 이사해서 너랑 같이 살길 바라고 있어."
"10여 년 만에 만나는 거니 우리가 감정을 쌓길 바라나 봐. 사실... 나도 우리 사이가 조금 어색해진 거 같아."
한편 배민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에게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일에 집중했다.
이때, 테이블 옆에 놓인 핸드폰이 울렸다. 바로 학교에서 온 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