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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검은색 사인펜이 서류에 닿으며 또르르 소리를 냈다. 온유나는 잠시 넋 놓고 있다가 떨리는 손으로 펜을 잡고 뚜껑을 연 후 이혼협의서의 사인 페이지로 펼쳐서 그 위에 서명했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협의서를 성우진에게 내던졌다. 눈물 한 방울이 진단서에 똑 떨어지더니 한 폭의 묵화처럼 퍼져나갔다.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린 짝사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무고한 아이가 너무 안쓰러워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쏘아붙였다. “우리 인제 두 번 다시 보지 말자.” 온유나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네 인생 4년이나 지체해서 정말 미안해. 이젠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 성우진은 아무 말 없이 허리 숙여 바닥에 떨어진 협의서를 줍고 성큼성큼 병실을 나섰다. 온유나는 그가 떠나간 후 홀로 병실에서 대성통곡했다. 새하얀 손은 거친 옷감의 침대 시트를 꽉 잡고 있다 보니 붉은 자국까지 생겨났다. 그녀는 한참 후에야 평평한 아랫배에 손을 올려놓았다. 한때 여기에 61일 동안이나 새 생명을 잉태하고 있었다니. 고작 61일을... 눈 앞에 펼쳐진 진단서를 바라보며 온유나는 더 이상 차오르는 분노를 숨길 수가 없었다. 갖은 수작을 부려봤고 갖은 아양을 떨어봤지만 성우진의 사랑을 받기는커녕 지독한 아내라는 낙인만 찍혀버린 채 모든 게 자업자득이고 마땅한 처벌을 받는 거라며 질타를 당하고 있었다. 최근 2개월 동안 자꾸 기운이 달렸던 이유가 병에 걸려서가 아니라 임신 초기 증상일 줄이야. 하정은은 아이를 낳은 경력이 있기에 그녀가 임신한 걸 바로 알아챘다. 그래서 결국 온유나가 의외의 사고로 호수에 빠지는 광경이 펼쳐졌다. 배 속의 아이를 죽인 범인은 바로 하정은과 하은별이다. 그 두 여자야말로 진정한 살인마이다. 누가 됐든 간에 온유나는 반드시 그녀들에게 대가를 치르도록 만들 것이다. 천만 가지 잘못을 저질렀을지언정 그녀들은 무고한 아이를 해칠 자격이 없다. ... 보름 뒤, 온유나는 병원으로부터 퇴원 허가를 받았다. 그녀는 어느덧 완전히 딴사람으로 탈바꿈해 있었고 더는 이전의 현모양처가 아니었다. 차가운 기운을 내뿜고 눈가에 어린 한기가 사람들을 섬뜩하게 할 따름이었다.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얼음 같은 한기에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그대로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별장 입구에서 경호원들이 온유나를 가로막으려 했지만 그녀의 눈에서 내뿜는 살기에 식겁하여 감히 선뜻 나서지 못한 채 두 눈만 멀쩡히 뜨고 그녀가 별장 안에 들어가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온유나는 끝내 순조롭게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집안에 하정은은 안 보이고 하은별이 손에 찻잔을 든 채 계단 입구에 앉아서 유유자적하게 창밖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건 온유나가 만든 작은 정원인데 지금 저 위치에서 구경하면 명당이 따로 없다. 여전히 유아독존인 양 거만한 자세로 앉아있는 하은별을 보고 있자니 온유나는 더 이상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일 수가 없었다. 거실을 스쳐 지나갈 때 탁자 위에 놓인 컵을 힐긋 쳐다봤는데 안에 죄다 다 피운 담배꽁초였다. 그건 온유나가 정안시로 공부하러 갔을 때 친히 성우진을 위해 구워 만든 컵인데 결국 재떨이 용도로 쓰이다니. 그녀는 컵을 들고 천천히 하은별 뒤로 걸어갔다. 이어서 그 컵으로 하은별의 이마를 가차 없이 내리치자 컵이 산산조각이 난 채 바닥에 잔뜩 널브러지고 말았다. 하은별이 괴로움을 호소하며 머리를 돌리자 이마에서 선홍빛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더니 예쁘고 새하얀 얼굴을 타고 바닥에 쪼르륵 떨어졌다. 그 모습은 마치 동지섣달의 새하얀 눈밭 위에 송이송이 피어나는 붉은 매화를 방불케 했다. “온유나, 네가 감히?” 하은별이 손을 들자마자 그녀에게 덥석 제압당해버렸다. 온유나는 그녀의 목을 꽉 잡고 쏘아붙였다. “왜? 난 감히 이러면 안 돼?” “너희들이 내 아이 해칠 땐 왜 이런 결과를 맞닥뜨릴 거란 생각은 못 했어?” “미친년!” 하은별이 힘껏 몸부림치며 큰소리로 외쳤다. “사람 살려요. 온유나 이 미친년이 날 죽이려고 해요!” “누구 없어요? 나 좀 도와줘요!” 그녀가 발악할수록 온유나의 손힘도 점점 거세졌다. 납치를 당해서 부모님 곁에 돌아온 이후로 온유나는 유도와 격투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보통 여자들보다 힘이 훨씬 더 셌다. “하은별, 너랑 어머님은 대체 왜 그렇게 날 미워하는 거야? 너야말로 짝퉁이잖아. 나 진짜 참을 만큼 참았어. 내가 어머님 기뻐하라고, 그래서 날 더 혐오하라고 널 여기 남겨둔 거야. 알아? 그게 아니면 넌 진작 성씨 저택에서 쫓겨났어. 성우진 여동생 신분으로 이런 생활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아? 너 따위가?!” “너한텐 진짜 할 만큼 다했어. 우진이랑 결혼한 3년 동안 네가 날 사칭한 거 다 알면서도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고 딴 사람들이랑 똑같이 대했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도 너한테 미안한 짓 한 건 일절 없거든. 대체 왜 내가 참아주는 건 도통 모르는 건데?” “그래 맞아, 난 애초에 정상이 아니야. 너한테 어떻게 할 생각도 없었어. 네가 기어코 내 아이를 건드렸지. 왜 그랬어? 아이만큼은 해치지 말았어야지! 너 큰 실수 한 거야!” 하은별은 그 순간만큼은 온유나의 끓어오르는 분노를 고스란히 느꼈고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한때 고분고분하고 온순하기만 하던 온유나가, 모든 이가 함부로 대해도 얌전히만 있던 온유나가 고작 보름 사이에 확 돌변할 줄이야. ‘얘 진짜 나 죽일 수도 있겠어. 완전 미친년이잖아.’ 밖에서 분주히 돌아치던 사용인들이 하은별의 고함을 듣더니 수중의 일을 내려놓고 부랴부랴 달려갔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자 넋이 나간 채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을 뿐 선뜻 나서지 못했다. 다들 온유나가 성씨 가문에 시집올 때부터 일하던 사용인들이라 그녀가 얼마나 만만하고 찍소리 못하는 작은 사모님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지금 계단 입구에서 하은별의 목을 조르는 온유나는 더 이상 전에 알던 그 온유나가 아니었다. 지금의 그녀는 아예 악마로 탈바꿈했다. 지옥에서 온 것마냥 감히 건드리기만 하면 그 어떤 대가든 막론하고 함께 지옥으로 끌고 갈 기세였다. 마음속으로부터 차오르는 공포에 다들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사용인들은 결국 아래층에 둘러서서 하은별의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봤다. 이때 자동차 급브레이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드디어 성우진이 돌아왔다. 온유나가 어찌 성우진이 돌아온 걸 모를 리가 있을까? 그녀는 성우진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여자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성우진이 돌아온다고 달라질 건 없다. 그가 돌아왔다고 아기가 죽어 마땅한 걸까? 한편 하은별도 성우진이 돌아온 걸 알아채고 사용인들과 함께 또다시 희망의 끈을 잡기 시작했다. 성우진은 절대 온유나가 별장에서 살인을 저지르게 내버려 둘 리가 없다. 게다가 그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을 죽이는 꼴은 더더욱 방관할 리가 없다. “유나야, 우진 오빠 왔어. 얼른 나 풀어줘. 내 털끝 하나 건드리기만 해도 오빠가 너한테 백 배로 갚아줄 거야!” 성우진은 하은별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온유나에게 거만을 떨고 있다. 하은별은 허공에 반쯤 몸이 뜬 채로 여전히 목을 꼿꼿이 세우고 온유나를 째려봤다. 이에 온유나가 더 힘주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래?” 그녀의 말투가 너무 공포스러웠다. “그럼 어디 한번 지켜볼까? 내가 널 내던질 때까지 과연 네 우진 오빠가 달려올 수 있을지 말이야.” 성우진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도우미가 울며 다가오더니 그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도련님, 얼른 가서 은별 아가씨 구해주세요. 작은 사모님이 아가씨를 죽이려고 해요!” 성우진은 방 안에 들어가 온유나의 곁으로 재빨리 다가가더니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으며 두 사람을 떼어냈다. 하은별이 바닥에 쓰러지자 도우미가 잽싸게 달려가 부축하며 진작 챙겨온 연고를 그녀의 이마에 발라주었다. 한편 온유나는 성우진에게 잡혀서 몸을 휘청거리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는데 그가 또다시 힘껏 손목을 잡은 덕분에 겨우 자세를 다잡았다. 제자리에 선 온유나는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는데 양미간 사이에 극에 달하는 혐오가 차 있었다. 이에 성우진이 차갑게 경고장을 날렸다. “온유나, 대체 왜 아직도 이 난리야? 여기가 네 멋대로 소란 피우는 곳인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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