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하룻밤이 지나가고... 온세라는 몸이 나른함을 느끼며 눈을 떴다. 남자는 보이지 않았고 공기 중에는 그가 남긴 조금 차가운 담배 냄새만 감돌았다. 온세라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욕실로 가서 샤워를 하고 내려오자 소파에 앉아 있던 사모님이 두 팔로 팔짱을 낀 채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주신 사진에서 이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최서진의 이모, 소시연이다. 최서진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여의고 소시연의 손에 자랐는데, 나중에 최종수가 그들을 데려갔다. 최서진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만의 비즈니스 제국을 건설한 후 줄곧 소시연을 어머니로 모시며 효도했다. 소시연은 위아래로 온세라를 훑어보았다. “온재혁 그 늙은 여우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 온미라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 벙어리를 시집보내다니. 우리 최씨 가문이 쓰레기 수거소라도 된 다는 거야? 서진이가 왜 너를 남겨두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얌전히 있는 것이 좋을 거야. 시집왔다고 벼락출세한다고 생각하지 마. 우리 최씨 가문은 바보가 아니거든.” “자, 이제 가서 밥부터 해. 시집왔으니 며느리 노릇은 해야지!” 최씨 집안에는 하인이 부족하지 않은데, 소시연은 하필이면 갓 시집온 신부를 시켜 밥을 짓게 했다. 소시연의 예리한 시선에 온세라는 눈을 내리깔았다. 소시연이 일부러 그녀를 괴롭힌다고 해도, 그녀는 당분간 반항할 수 없었다. 힘도 백도 없는 사람이니 이 사람들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러니 순순히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온세라는 뒤돌아서 부엌으로 갔다. 식사 한 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무시한 채 소시연은 온세라가 나약하다고만 생각하고 입을 삐죽하며 비꼬았다. “역시 떳떳하지 못해!” 온세라는 발걸음을 멈칫하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떠났다. 얼마 후 최서진이 회사에서 돌아오자 소시연은 웃으며 다가와 밥을 먹자고 했다. 온세라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을 분주히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최서진이 눈살을 찌푸리자 소시연이 웃으며 말했다. “굳이 밥을 챙기겠다고 하잖아. 솜씨를 보여주려는 것 같아.” 최서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세라는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를 따라다니며 요리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했다. 곧 식탁에 네 가지 요리와 국이 차려졌다. 하인들도 그녀의 요리 솜씨를 보았지만 새 사모님에 대한 존중은 별로 없었다. 그들은 지위가 낮은 사람이 시중을 들고 지위가 높은 사람은 시중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식사 도중 하인을 포함한 모두가 최서진만 챙겼고 온세라를 공기 취급했다. 온몸으로 불편함을 느낀 온세라는 그런 분위기를 피해 아무렇게나 몇 입 먹고는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온세라가 올라간 후 소시연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말했다. “정말 버릇이 없어. 아무리 벙어리라고 하지만 너무 안하무인이야.” 최서진은 고개도 들지 않고 서류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자신의 말에 대꾸하지 않는 것을 보자 소시연은 눈알을 굴리며 다시 말했다. “서진아, 이 온씨 가문이 너무 주제를 몰라. 이런 벙어리를 보내다니, 우릴 뭐로 보는 거야. 이러면서 네가 그 가문의 기업을 돌봐주길 바라는 거야? 꿈 깨.” 소시연은 조카의 성격을 잘 알기에 최서진이 온씨 가문에 당할까 걱정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벙어리와 결혼하게 되면 다른 사모님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좀 불편했다. 하지만 최서진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표정조차 변하지 않았다. 소시연은 그가 이 주제에 관해 말하고 싶지 않아 보여서 비위를 맞추며 웃었다. “찬혁은 프랑스에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드디어 돌아오게 됐는데 벙어리를 형수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아? 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비웃을 거야. 너 나중에 그 벙어리랑 이혼해. 최씨 가문의 작은 사모님 자리는 이 이모가 나중에 대신 물색해 줄게.” 최서진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그제야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이모는 신경 안 써도 돼요.” 그의 냉랭하고 서먹서먹한 말투에 소시연은 안색이 굳어 버렸다. 남자가 떠나자 뒤에 있던 오미숙이 다가와 나지막이 말했다. “사모님께서 걱정하실까 봐 대표님이 일부러 이렇게 말씀하신 거니 오해하지 마세요.” 소시연은 수심에 찬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오해 안 하게 생겼어? 서진이가 인신매매범에게서 발견된 후부터 성격이 많이 변해서 어렸을 때처럼 쉽게 다가가지 못해. 비록 나를 최씨 집안으로 데려와 호강하게 했지만, 나는 그 애가 마음속으로 나를 원망하고 있다는 걸 알아. 내가 방심하지 않았다면 그 애도 인신매매범에게 끌려가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야.” 오미숙은 입술을 움직였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대표님은 지난 10여 년 동안 비즈니스계에서 큰 성과를 이루었지만 성격도 점점 냉혹해지고 있으니 사모님이 생각이 많아지는 것도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