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전체 차트 10위 안에 드는 가수는 레전드로 불리는 실력파 뮤지션들이라 항상 연예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은 차트 50위에 드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무려 5위라니.
[시간]은 이미 명곡으로 등극했고 이대로만 발전한다면 베일에 싸인 가수도 음악계의 레전드 인물로 남을 뿐만 아니라 가왕으로 등극할 가능성도 아주 크다.
다만 이제 막 인기가 급상승한 신곡이라 다들 즐겨듣긴 해도 진짜 부를 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문득 배진호가 강원우를 가리켰다.
“원우가 알아.”
순간 모든 이의 시선이 강원우에게 쏠렸다.
강원우는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내가 뭘 안다고.”
이에 배진호가 깔깔대며 웃었다.
“우리 수능 마지막 날 저녁에 완곡했잖아. 그새 잊었냐?”
강원우는 분노에 찬 눈길로 그를 째려봤다.
‘이 자식이 감히 날 팔아넘기네?’
그는 단칼에 거절하고 싶었다. 아직은 미성숙한 상태라 화를 불러올까 봐 최대한 조용히 지내고 싶었지만 주위 친구들이 부추겼고 간수연도 기대 어린 눈길을 보내왔다.
“원우야, 너 진짜 이 노래 부를 줄 알아?”
강원우는 바로 거절하기 무안해서 핑계를 둘러댔다.
“기타가 있어야 부를 수 있어.”
대체 누가 삼겹살집에 기타를 가져올까? 이건 뻔한 거절이었다.
“여기 있네, 기타!”
문득 구석에서 누군가가 기타를 건넸다.
‘젠장, 누구야? 삼겹살집에 기타를 왜 가져 오냐고? 미친 거 아니야?’
강원우는 속으로 구시렁댔지만 이미 손에 닿은 기타를 바라보며 핑곗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마지못해 기타를 받았고 이어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학생들 모두 졸업시즌의 슬픔과 아쉬움에 젖어 들어 이 곡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이제 민들레처럼 바람 불면 흩날려갈 테니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아련한 추억에 빠져들 게 틀림없다.
강원우는 기타를 만지작거린 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시간은 흐르는 저 물처럼.]
[필이 닿은 문구는 흩날리는 모래처럼.]
[풋풋한 시절은 한여름 밤의 꿈이 되었고.]
[우리는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지.]
[청순했던 첫사랑 그녀와도 안녕.]
[눈썹 휘날리던 그 소년과도 안녕.]
[아름답고 풋풋했던 그 시간과 이제 안녕.]
심플하면서도 감미로운 이 노래는 처음에 기타를 치면서 부르다가 나중에 SNS에 올리면서 후속 작업에 들어갔다.
기타 반주와 함께 들으면 이별의 슬픔이 더 절절하게 느껴진다. 이제 이들은 싱그러운 고등학교 시절을 마무리하고 바쁜 삶에 분주히 보내면서 가끔 이 노래로 추억을 회상할 것이다.
후렴구로 가면서 친구들 모두 잔잔한 감동에 빠져들었다.
하나둘씩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했고 강원우의 기타 연주도 점점 여유가 넘쳤다.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더해지니 어떠한 곡 처리를 거치지 않아도 잔잔하게 일렁이는 파도처럼 모든 학생들의 심금을 울렸다.
노래는 끝났지만 학생들은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천사의 목소리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다들 콘서트장에 와 있는 것처럼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원우야... 너 언제부터? 이거 완전 원곡이잖아! 너무 잘 불렀어!”
문득 누군가가 칭찬을 남발하자 사색에 잠긴 학생들도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강원우의 목소리는 원곡과 거의 흡사한 수준이니까.
“그러게. 나도 원곡인 줄!”
“그럴 리가. 이 노래는 역대급 졸업시즌 송으로 등극했는데 원우가 어떻게 원작자겠어?”
“쟤가 원작자면 이대로 신이 되는 거야!”
“그만큼 원우가 잘했다는 거잖아. 게다가 기타까지 잘 치네? 왜 전엔 몰랐지? 너 언제부터 이렇게 다재다능했냐?”
“믿을 수가 없다니까...”
누군가는 원작자가 강원우가 맞는지 검색하기 시작했고 줄곧 강원우에게 쌀쌀맞던 허지민도 경이로운 눈길로 그를 쳐다봤다.
그녀는 주기현에게 이 노래를 배웠는데 천재 뮤지션이라 불리는 주기현도 요즘 가요계를 뒤흔든 [시간]을 듣더니 극찬을 보냈다.
그는 한때 허지민 앞에서 직접 이 곡을 평가했었다.
“만약 유명 가수가 이 노래를 불렀다면 대박을 터트렸을 거고 신인이 불렀다면 레전드로 등극할 거야.”
한편 허지민은 다재다능한 남자가 로망인데 이런 곡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천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강원우가 정말 이토록 훌륭한 인재였다면 좀 전에 매정하게 고백을 거절한 자신이 얼마나 우스운 꼴로 남을까?
그녀는 심지어 후회의 충동에 빠지기도 했다.
모두가 뜨거운 시선으로 강원우를 쳐다보며 그의 대답만을 기다렸다.
이때 고경표가 참지 못하고 먼저 물었다.
“원작자가 진짜 너야?”
이에 강원우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 노래 나온 뒤로 보름 동안 따라 불렀거든.”
그제야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강원우가 무슨 재주로!”
“깜짝 놀랐네. 설마 역대급 뮤지션이 내 주변에서 탄생하는 줄 알았잖아.”
“강진시에 어떻게 이런 인물이 나오냐고?”
“하하! 그래도 우리 원우 꽤 비슷하게 모창했네. 모창 가수 오디션 나가봐도 되겠어?”
허지민도 한숨을 돌렸다. 방금 고백을 거절했는데 이 남자가 레전드 인물로 거듭난다면 그녀에겐 막대한 충격이니까.
‘다행이다...’
배진호가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그나저나 기타 좀 치네? 언제 나도 가르쳐주어라.”
“좋아. 언제든지 가르쳐줄 수 있지만 아는 게 이 곡밖에 없어.”
강원우의 통쾌한 대답을 들은 친구들은 또다시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모임이 서서히 마무리되고 학생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허지민도 이제 그만 외할아버지를 뵈러 병원에 가야 했다.
며칠 전 외할아버지가 그녀를 보러 강진에 왔다가 공공버스에서 묻지마 폭행을 당했고 이 사건은 전국을 뒤흔든 [묻지마 폭행] 사건으로 거듭났다. 그녀의 외할아버지는 가장 먼저 피습을 당한 피해자 중 한 명이다.
외할아버지가 당시 상황을 설명할 때 허지민은 마냥 섬뜩했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사투에서 다행히 고등학생 한 명이 용감하게 나서서 범인을 제압했다고 한다.
그 당시 범인은 칼을 휘두르고 있어서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과감히 나서서 맨몸으로 제압하다니?
현장에 있던 허지민의 외할아버지도 가슴을 졸였을뿐더러 그녀까지 이 용감한 학생이 너무 고맙고 감격스러웠다.
그녀는 심지어 이 남학생의 늠름한 이미지를 수없이 상상하며 직접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었다.
아쉽게도 그 학생은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어서 곧장 현장을 떠났다.
하여 허지민은 아직도 그 영웅의 정체를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