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온연이 끝마친 과제물을 본 교수님은 조롱 섞인 웃음을 지었다. "목정침 그린 거니? 평소에 과묵해서 다를 줄 알았는데 너도 다른 여자애들이랑 취향이 같구나. 너랑 똑같은 사람 그린 애가 몇 명 더 있는데 그중에서 네가 제일 잘 그렸어. 사진 보고 그렸니? 무슨 사진인지 좀 보자."
교수님은 이제 곧 서른을 바라보지만 아직도 미혼이었다. 성격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학생들이랑 목정침에 대해 토론할 만큼 그에 대해 집착하고 있었다.
"사진은 없어요…." 온연은 고개를 저었다.
교수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사진이 없다고? 사진 없이 이렇게 잘 그렸단 말이야? 상상해서 그렸다고? 실제로 만나 본 적 있는 거야? 이러면 재미없지. 빨리 꺼내봐. 그린 거 보니까…집에서 앉아있는 사진 같은데? 이런 사진은 인터넷에서도 본 적이 없어, 너 이 사진 어디서 났어?"
이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진몽요가 나섰다. "뭐 하시는 거예요? 사진 없다잖아요. 얘 원래 그림 잘 그리는데, 교수씩이나 돼서 그것도 모르셨어요?"
진몽요처럼 배경이 좋은 학생들을 교수는 꺼려 했다. "그래그래 알았어. 네 귀요미라 이거지? 사진 달라고 안 할게 됐지?"
수업이 끝나고 진몽요가 온연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린 거야? 너 목정침 본 적 있어? 난 딱 한 번 본 적 있는데, 파티에서. 너는 다른 사람들이랑 다를 줄 알았는데, 너도 국민남신에 대해 환상이 있었구나. 헤헤…"
온연은 늘 그랬듯 침묵했다. 그녀는 목정침에게 환상이라곤 가진 적이 없다. 같은 지붕 아래 사는데 무슨 환상이 생길 수가 있겠는가? 그녀가 그를 그려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이미 그녀의 가슴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마 영원히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연아, 이번 축제 때 목정침도 온대. 하긴 기부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못 올 것도 없지." 그녀의 침묵에도 진몽요는 아랑곳하지 않고 재잘댔다. 진몽요는 온연의 침묵이 익숙했다.
축제, 학교에서 매 학기 방학하기 전에 진행하는 행사다. 지루한 무대나 학교 측에서 준비한 무료한 강의밖에 없는 그런 행사.
축제가 21일 남은 그날 목정침이 출장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연아, 오후에 수업도 없는데 같이 나가 놀자. 스케이트 타는 돈은 내가 낼게. 근처에 스케이트장 새로 생겼다던데. 스키장은 너무 머니까 방학에 같이 가자." 한참을 떠들던 진몽요는 가방을 싸며 급히 가려는 온연을 보자 이런저런 제안을 건넸다.
온연은 인상을 쓰며 생각했다. 그녀는 혹시나 목정침이 갑자기 집에 돌아올까 걱정하고 있었다. 집에 없다는 걸 한 번이라도 더 들키는 날에는 절대로 저번처럼 호락호락하게 넘어가게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때? 가자, 응? 가자."진몽요는 그녀의 팔을 안으며 애교를 부렸다.
온연은 고개를 저었다."안 가, 나 집에 가야 돼."
진몽요는 고집스럽게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왜 맨날 집에 못 가서 안달이야? 집이 그렇게 엄해? 너네 오빠가 너 잡아먹니?"
"응" 그녀가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대답했다. 목정침이 날 잡아먹긴 하지.
진몽요는 말문이 막혔다. 그 말에 진몽요는 그녀의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더 궁금해졌다. 하지만 진지한 온연의 모습에 그녀의 손을 그만 놓아주었다.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집에 아직 반도 못 갔는데 자전거의 체인이 떨어지더니 자전거가 멈춰버렸다.
떨어진 체인을 수리할 줄 모르는 온연은 자전거를 밀며 집에 갈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서는 솜털 같은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 그녀의 손은 꽁꽁 얼었고 그녀의 얼굴이 찬바람에 빨갛게 부어올랐다.
하늘이 깜깜해져서야 온연은 집에 도착했다. 어둠도 목가네 저택의 위풍을 가려주진 못했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목정침 때문에 목가네는 남대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망가진 자전거는 그녀를 조금 더 고통스럽게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유씨 아주머니가 그녀를 헬퍼 룸으로 끌고 들어갔다. 보일러를 틀어 그녀의 몸을 녹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 대체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늦었어, 몸은 왜 얼어있고, 네가 말하기 그러면 내가 대신 말해줄게, 너 입을 겨울옷이 하나도 없다고."
온연은 꽁꽁 얼어 감각이 없는 손을 비비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 사람이 저한테 돈을 줬어요. 근데 전 안 썼고요." 그 돈을 쓰기에는 마음이 너무 찝찝했다.
그런 그녀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유씨 아주머니는 그녀의 이마를 콕 때리며 말했다. "돈은 왜 안 썼어, 무슨 고집부리는 건데? 그 일이 일어난 게 벌써 몇 년 전이야, 도련님이 너한테 못해주는 것도 아니고 왜 오히려 네가 더 난리야? 오늘 도련님 돌아오셨어. 너 또 이렇게 늦은 거 알면 너 또 혼날 거야!"
목정침이 돌아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