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온연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손을 뻗어 자신의 목을 만지작거렸다. 목정침이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는 사실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이 키스마크도 그가 남긴 거겠지.
어제 일을 떠올리자 온연의 얼굴이 또 빨개지기 시작했다. "연아, 도련님이 너 진짜 좋아한다고 하면 그냥 도련님이랑 잘해봐.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걱정할 필요 없지. 도련님이 못생긴 것도 아니고, 그래도 10년 동안 쌓인 감정이 있는데." 유씨 아주머니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유씨 아주머니의 말을 끊고는 집을 나섰다. "지각하겠어요, 아주머니 저 먼저 갈게요."
말을 끝내고는 도망치듯이 뛰쳐나갔다.
목정침이랑 잘해보라고?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은 것 같은데.
학교에 도착하자 진몽요는 온연에게 달려들어 목도리를 뒤적거렸다. "자기, 역시 보는 눈이 좀 달라, 목도리에서 복고의 느낌이 살살 풍기는데? 역시 우리 연이가 제일 예뻐, 아마 거적때기를 걸쳐도 이쁠 거야. 넌 특히 눈이 이뻐. 요 사람 홀리는 눈이."
눈, 어제 목정침도 자신의 눈에 대해서 뭐라 한 것 같은데. 갑자기 불편한 기분이 확 올라왔다. "장난치지 마."
그 순간 어디서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진몽요랑 온연은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내건 아니야, 내 벨소리랑 다른데?" 진몽요는 어깨를 으쓱였다.
자세히 들어보니 벨소리가 그녀의 가방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온연은 가방을 벗어 확인해 봤다. 가방 구석진 곳에 모 브랜드의 신상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약간 놀란 그녀가 핸드폰을 꺼내보았다. 수신 전화에 목정침 세 글자가 찍혀있었다.
언제 가방 안에 넣은 거지? 번호까지 저장해놓고…
온연은 불편한 듯 어색한 표정으로 진몽요를 쳐다보았다."여보세요?"
전화기 너머로 목정침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목소리는 감미로웠지만 온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돈 보냈어. 식욕 떨어지니까 다음에는 그 구질구질한 차림 하고 있지 마."
식욕? 진짜 식욕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전화는 곧 끊겼고, 곧이어 계좌이체가 완료되었다는 문자가 한통 날라왔다.
온연은 찔린 듯 급히 핸드폰을 끄고 다시 가방 안으로 집어넣었다. 손으로 은행 카드 한 장이 만져졌다. 온연은 손을 덜덜 떨었다. 어젯밤 그 일에 대한 보상인 건가? 온연은 찝찝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오빠가 사준 거야? 이거 200만원 짜리 잖아. 너네 오빠 생각보다 너한테 잘해준다." 진몽요가 말했다.
온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수업 시작하겠다."
"이번 수업에는 제일 인상 깊은 사람을 그리는 걸로 할게요. 사진 보고 그려도 됩니다. 실력을 마음껏 발휘해보세요." 그녀가 화실에 들어가자마자 교수님의 말소리가 들렸다. 교수님의 기분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늘도 그가 잘 지내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계속 온연의 얼굴 힐끔거리며 온연의 신경을 건드렸다. "너 뭐해? 제일 인상 깊은 사람 그리라는데…"
"그게 넌데. 나는 너한테 첫눈에 반했잖아. 너 엄청 이쁘고 완벽한 거 알아? 네가 연예계에 들어가면 아마 바로 탑 찍을 거야. 성격이 조용하고 몸이 너무 마른 게 흠이긴 하지만." 진몽요가 헤실헤실 웃었다.
온연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제일 인상 깊은 사람이 누군지 고민하고 있었다. 부모님인가? 부모님의 얼굴은 온연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갑자기 목정침의 얼굴이 번뜩 떠올랐다. 그의 얼굴이 떠오르자 머리가 새하얘졌다. 임집사와 유씨 아주머니의 얼굴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온연은 목정침의 사진도 없었을뿐더러 그의 얼굴은 정말로 그리기 싫었다. 하지만…사진이 없어도 그의 얼굴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몸짓, 행동 모두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온연, 너 뭐 하니? 후원받아 학교 다니는 처지에 집중 안 하고 멍 때리면 되겠니?" 교수님이 그녀의 캔버스를 두드리며 충고했다.
그 말에 온연은 정신을 차리고 펜을 놀리기 시작했다. 부모님 말고 자신에게 제일 잘해주는 유씨 아주머니를 그린다고 그렸는데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캔버스에는 목정침이 자리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