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엄마!”
꼬꼬마 박승윤이 그녀에게 달려와 손에 든 꽃다발을 건넸다.
“방금 택배 아저씨랑 무슨 얘기 했어?”
우예린은 문밖으로 사라진 택배 기사를 한 번 바라보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둘러댔다.
“별거 아니야.”
곧 박시언도 다가와 그녀의 뺨에 다정하게 입맞춤한 후 손에 든 꽃다발을 건네며 약간 미안함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예린아. 일이 좀 있어서 늦었으니까 화내지 말아 줄래?”
무슨 일?
단지 아들을 데리고 바닷가 별장에서 강지민과 시간을 보낸 것뿐인데.
하긴 이 부자는 두 집 살림을 하니 바쁠 수밖에...
우예린은 쓴웃음을 지으며 손에 든 꽃다발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일이 중요하지. 화난 거 없으니까 일단 들어가자.”
문을 들어서자마자 두 부자는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랐다.
별장은 텅텅 비어 있었는데 사라진 것들은 모두 박시언과 박승윤이 그녀에게 준 물건들이었다.
박시언의 잘생긴 얼굴에 순간 당황한 기색이 차올랐다.
“예린아, 우리가 준 물건들은 다 어디 갔어?”
옆에 있던 박승윤도 깜짝 놀라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그러니까, 엄마! 설마 다 버린 거야?”
우예린은 아이의 손을 놓고 소파에 앉아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니. 방금 택배 아저씨한테 부탁해서 필요한 사람에게 전해주라고 했어.”
아이를 낳고 난 뒤 그녀는 점점 마음이 약해지다 보니 해마다 집에 있는 물건을 보육원에 기부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 말을 들은 박시언은 별다른 의심 없이 그녀가 또 물건을 보육원에 기부했다고 생각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박승윤과 함께 그녀의 양옆에 앉아 다정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잘했어. 덕분에 내가 또 새로운 걸 사줄 명분이 생겼네.”
박승윤도 방긋 웃으며 그녀의 품으로 뛰어들어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칭찬했다.
“우리 엄마 정말 착해! 세상에서 제일 착한 엄마야!”
착해?
뭐, 그럴 수도... 남편과 아들까지 다 내줬으니.
벽에 걸린 시계의 시침이 6시를 가리킬 때, 박시언은 주방에서 마지막 요리를 가져와 식탁에 올려놓았다.
비록 가정부가 있긴 하지만 요리를 포함해 그녀와 관련된 모든 일은 박시언이 항상 직접 해주었다.
박승윤은 우예린의 손을 잡고 식탁으로 걸어가 의자를 빼주더니 곧 밥도 퍼주고 반찬까지 집어 주었다.
곧 박시언도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반찬을 집으며 말했다.
“예린아, 이거 위에 좋은 거니까 많이 먹어.”
박승윤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많이 먹어야 건강하지! 유치원 친구 중에 편식하는 애가 있는데...”
박승윤은 유치원 친구에 관한 재미있는 일들을 얘기하기 시작했지만 우예린은 입맛이 하나도 없어 그저 고개를 들어 맞은편의 박시언을 바라보았다.
아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중이고 박시언은 그런 아들의 이야기를 즐겁게 들어주며 가끔 한마디씩 응답하곤 했다.
그녀는 갑자기 이런 상황이 우습게 느껴졌다.
이 광경과 이야기들은 아마도 이들이 돌아오기 전 강지민 앞에서도 똑같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그녀 앞에서 다시 반복할 필요가 있을까?
깊은 밤.
안방에는 무드 등 하나만 켜져 있다.
침대 위에서 박시언은 우예린을 품에 꼭 안았고 박승윤도 아빠를 따라 그녀의 팔을 꼭 껴안은 채 서로 그녀와 함께 자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빠, 아빠는 이미 어른인데 왜 엄마랑 자?”
박승윤이 애어른처럼 말했다.
“그게 뭐? 예린이 내 아내야. 내가 내 아내랑 자지도 못해? 반대로 넌 이미 네 살인데 왜 자꾸 엄마랑 자려고 들어?”
팽팽하게 대치하던 두 부자는 우예린에게 최종 결정을 내리게 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이때 박시언이 옆에 두었던 휴대폰이 갑자기 진동하며 영상 통화가 걸려 왔다.
‘강지민’이라는 이름이 화면에 뜨자 박시언은 순간 얼굴이 굳어지더니 고개를 돌려 미동도 없는 우예린을 확인한 뒤 휴대폰을 들고 방을 나갔고 박승윤 역시 그녀의 이름을 보고 침대에서 살짝 내려와 박시언의 뒤를 몰래 따라갔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박시언은 음량을 최대한 작게 조절한 후 전화를 받았고 곧 강지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언 씨, 승윤아, 나 어떡하죠? 두 사람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보고 싶어졌어요. 게다가 이렇게 큰 별장에 나 혼자 있는 건 너무 외로워요. 승윤이와 함께 다시 나한테 와주면 안 될까요?”
박시언은 뒤돌아 방문을 한 번 바라보고 나서야 휴대폰 너머의 여자를 차분히 달래기 시작했다.
“그만해.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다시 갈게.”
하지만 강지민은 쉽게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두 사람한테 사모님이 더 소중하다는 거 나도 알아요. 감히 날 제일 소중하게 생각해달라고 바란 적도 없어요. 다만 나에게도 조금만, 아주 조금만 사랑을 나눠주면 안 될까요?”
강지민의 울먹이는 소리에 옆에 있던 박승윤이 박시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아빠, 가자! 나도 지민이 아줌마 보고 싶어. 가자, 아빠.”
“제발, 아빠...”
두 사람의 애교 섞인 부탁에 박시언은 잠시 망설이더니 곧 몸을 낮추고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며 말했다.
“쉿, 그럼 엄마 깨지 않게 몰래 가야 해.”
문을 사이에 두고 우예린은 두 눈을 뜬 채 눈물을 흘렸다.
눈물은 그녀의 볼을 타고 베개를 적셨지만 그녀는 눈물을 닦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멀어져가는 두 사람의 발소리를 들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