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30분 후,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김씨 저택 앞에 안전하게 주차했다.
“우주 도련님... 우주 도련님 차예요!”
“세상에, 우주 도련님도 오다니!”
파티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부잣집 따님들도 차에서 내린 진우주에게 하나둘씩 시선을 빼앗겼다.
“모두 비켜요. 우리 우주 도련님은 김씨 가문 아가씨를 찾으러 오셨어요.”
‘김씨 가문 아가씨?’
이 말에 김유미의 피아노 실력이 형편없다고 뒤에서 비웃던 부잣집 따님들은 금세 표정이 변했다.
“우주 도련님이 유미 씨를 찾아왔네요. 정말 부러워요.”
“그러게요. 유미 씨, 우주 도련님은 파티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는데 오늘은 유미 씨를 위해 왔나 봐요.”
“세상에, 유미 씨, 우주 도련님에게 유미 씨는 특별한 존재인가 봐요.”
부러움에 찬 말을 듣고 있던 김유미는 한껏 들떴지만 마음속으로는 조금 의아했다.
김씨 가문과 진씨 가문은 사이가 괜찮지만, 김유미와 진우주는 별로 친하지 않았고 1년에 몇 번 만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진우주가 그녀를 찾으러 왔다니?
김유미는 눈을 내리깔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만들 하세요. 우주 도련님이 날 찾아온 게 아니면 어떻게 해요?”
“유미 씨, 우주 도련님께서 유미 씨를 찾지 않으면 누구를 찾아왔겠어요? 방금 시골에서 올라온 시아 씨를 찾을 리가 없잖아요!”
“맞아요, 맞아요. 김시아는 방금 시골에서 돌아왔는데 우주 도련님을 만나자 못한 것 같은데 어떻게 김시아 씨를 찾으러 올 수 있겠어요?”
“그럼요. 유미 씨, 우주 도련님이 유미 씨를 널 찾아온 게 틀림없어요!”
이 말을 들은 김유미는 순간 자신감이 생겨 그녀들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시아 그 촌뜨기는 방금 경성으로 돌아왔으니 진우주를 본 적이 전혀 없다. 그러니 진우주는 틀림없이 그녀를 찾으러 온 것이다.
이런 생각에 김유미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 황급히 다가가 수줍은 듯 진우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오빠, 무슨 일로 찾아왔어?”
“널 찾아왔다고 누가 그래?”
김유미의 가식적인 모습을 보고 있던 진우주의 잘생긴 두 눈에는 사악함이 떠오른 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김씨 가문 여섯째를 찾아왔어.”
김시아가 돌아오면 김씨 가문에서의 김유미의 서열은 7위로 밀려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에 김유미는 이를 갈 정도로 질투했다.
‘왜 진우주마저 무작정 김시아 그 나쁜 년을 찾는 거야?’
마음속으로는 미워 죽을 것 같았지만 김유미는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언니는 아까 일이 있어서 먼저 갔어... 우주 오빠, 그냥 내가 챙겨줄게...”
이번 기회에 그에게 접근할 수만 있다면 이 정도 체면은 내려놓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야, 됐어.”
진우주의 잘생긴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상대방이 이미 떠났으니 그는 남아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우주 오빠...”
진우주는 망설임 없이 돌아서서 성큼성큼 자리를 드며 김유미의 체면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에, 우주 도련님이 시아 씨를 찾으러 오시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네요. ”
“누가 아니래요. 어떤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을 찾아온 줄 알았나 봐요.”
이런 비웃음에 김유미는 얼굴이 화끈거려 속으로 김시아에 대한 원망이 더욱 커졌다.
‘시아 이 시골에서 돌아온 촌뜨기는 도대체 어디가 좋아서 우주 오빠마저 친히 그녀를 찾아오는 거야!’
...
“차 세워.”
차가 쏜살같이 전진할 때 남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갑자기 울렸다.
“네, 우주 도련님!”
성주원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황급히 급정거하여 차를 멈추었다. 진우주가 주시하는 방향을 따라 오토바이를 수리하고 있는 김시아를 발견한 그는 순간적으로 우주 도련님이 왜 갑자기 그에게 차를 세우라고 했는지 알아챘다.
그때 김시아는 옷을 검은색 바바리코트로 갈아입어 그 작고 정교한 하얀 얼굴이 조금 도도하고 늠름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얼굴과 코끝에 얼룩이 묻어있어 얼룩 고양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입꼬리를 씩 올린 진우주는 두 눈에 가득 찼던 한기를 거두고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 정말 그녀야...’
김시아는 주위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채 오토바이 수리에 여념이 없었다.
오토바이가 도중에 고장이 났는데 여기는 마침 외진 구간이어서 그녀는 자신이 직접 오토바이를 수리해했다. 그래야 가장 빠른 속도로 실험실로 달려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눈앞에 갑자기 깨끗한 손수건이 하나 나타나자 김시아는 예쁜 두 눈을 치켜뜨고 경계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경계심으로 가득 찬 그녀를 본 진우주의 준수한 얼굴에는 시큰둥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오빠 기억 안 나? ”
그의 얼굴은 기억하기 어렵지 않다.
김시아는 경계하는 기색을 감추고 손에 든 손수건을 받아 들더니 대답했다.
“기억해.”
“기억하면서 왜 인사 안 해? 응? ”
남자의 나지막하고 매력적인 목소리에는 시큰둥한 웃음이 섞여 있어 마음이 간질거렸다.
여우처럼 사람을 홀리는 남자의 모습을 본 김시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순간 그 예쁘기 그지없는 눈빛이 반짝이더니 김시아가 씩 웃으며 불렀다.
“아저씨.”
옆에 서 있던 성주원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이 여자 대표님을 건드리는데 정말 일가견이 있네.’
우주 도련님이 그녀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도 아저씨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다.
그녀가 일부러 그랬다는 것을 알아차린 진우주는 어이없다는 듯 낮게 웃더니 이내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아직 아무도 날 아저씨라고 부른 적 없어.”
“이젠 있겠네.”
김시아는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당당하게 대답한 후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데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거울이 없었던 그녀는 얼굴의 그 얼룩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서 아무렇지 않게 닦아대고는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잠깐만.”
김시아는 작고 하얀 얼굴을 치켜올리고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언으로 물었다.
“이제 됐다.”
진우주는 그녀의 코끝에 묻은 얼룩을 부드럽게 닦아주고 잘생긴 두 눈으로 부드럽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디로 가는데? 내가 데려다줄게.”
김시아는 그의 손길이 닿은 곳이 조금 뜨겁게 느껴져 가늘고 긴 속눈썹을 가볍게 떨었다.
“경성 과학연구원에.”
“과학연구원이요?”
옆에 있던 성주원은 그녀의 대답에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아가씨, 과학연구원에 왜 가는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과학연구원은 외부인도 들어갈 수 없어요...”
성주원은 말을 마치기 도전에 경고의 뜻이 담긴 진우주의 눈빛과 마주쳤다. 성주원을 노려보던 진우주는 느릿느릿 김시아를 향해 말했다.
“차에 타, 데려다줄게. ”
“고마워.”
김시아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더니 주저하지 않고 차에 올랐다.
그녀는 이미 길에서 시간을 너무 오래 지체했다. 과학연구원의 그 노인네들은 지금 틀림없이 초조해하고 미칠 것이니 일찍 서둘러 가야 했다.
그녀가 이렇게 순순히 차에 오르는 것을 본 진우주는 기쁜 마음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그녀를 놀렸다.
“그렇게 차에 타면 아저씨가 널 팔아버릴까 봐 두렵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