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저요? 제가 감히 바라볼 수 없는 사람이에요.”
진태평은 소은설을 보고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저었다.
부모님은 소은설을 매우 좋아한다. 방금 자신을 보호해 주는 소은설을 보고 진태평은 감동을 받았으나 ‘범죄자’의 신분이니... 소은설의 앞길을 망칠 수는 없다.
“이분은 제 친구 소은설이에요. 우리 반에서 가장 예쁜 여자아이였어요.”
“이분은 강유이라고 해.”
진태평은 서둘러 두 사람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소은설은 가볍게 웃었지만 눈가의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만났으니 함께 식사해요.”
강유이가 소은설을 요청했다.
“아니에요.”
소은설은 웃으며 거절했다.
“오늘 저녁 집에 손님이 오셔서 먼저 가볼게요.”
말을 마친 소은설은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며 떠났는데 뒷모습은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태평 씨, 저 여자가 당신을 좋아하는 걸 모르세요?”
강유이는 소은설의 뒷모습을 보며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강유이는 시선을 돌려 진태평을 보았다. 말이 없던 진태평은 미간을 찌푸린 채 강유이를 따라 연꽃 룸으로 들어갔다.
연꽃 룸은 국화 룸보다 훨씬 더 컸고 방안의 가구들이 훨씬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룸에는 한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아빠, 이분이 바로 어제 뛰어난 의술로 할아버지를 구해준 진태평이에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강성곤이라고 합니다.”
강성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태평과 반갑게 악수를 했다.
“아버지를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대표님, 별말씀을요. 의사의 마음은 곧 부모 마음이에요.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구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이 일은 마음에 둘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강씨 가문에서 충분히 많은 보상을 주었어요.”
진태평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자, 먼저 앉으세요, 우리 먹으면서 얘기해요.”
눈썹을 치켜 뜬 강성빈은 칭찬 어린 눈빛으로 진태평을 바라보았다.
진태평은 솔직하고 소탈하며 정직해 보였는데 강성빈은 이 청년을 마음에 들어했다.
“유이야, 웨이터에게 음식을 가져오라고 말하고, 또 내가 보관한 술 두 병을 가져오라고 해.”
“네, 아버지.”
곧 술과 요리가 식탁에 올랐고 첫 번째 잔은 당연히 진태평에게 권했다. 생명을 구해준 은혜에 감사를 표한 다음 일상적인 잡담을 하며 분위기도 편해졌다.
“태평 씨, 내가 연장자이니 말 놓을 게요?”
“그럼요.”
“아버지가 태평 씨 의술이 대단하다고 칭찬했어. 내가 갓 출장을 다녀와서인지 몸이 좀 안 좋아. 혹시 봐주면 안 될까?”
강성빈은 목을 움직이며 일부러 화를 냈다.
“어디가 아픈지 잘 모르겠어.”
“볼 필요 없어요. 아저씨는 불면증이에요.”
진태평의 안색은 변하지 않았지만 이것은 강성빈이 자신의 의술을 의심하고 일부러 수준을 시험해 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상황도 이해가 되었다.
강문철 어르신을 구했기 때문에 강씨 가문에서는 진료비를 많이 냈다. 그들은 진태평의 수준을 가늠해 보아 만약 의술이 뛰어나다면 앞으로 좋은 관계를 맺으려 했다.
의술이 보통인데 운이 좋아 구하게 된 것이라면 앞으로 인사치레만 하면 그만이다.
강씨 가문은 가치가 없는 친구가 필요하지 않았다.
“뭐? 불면증? 어떻게 알았어?”
강성빈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저는 의사예요.”
진태평은 강성빈을 잠시 쳐다보았다.
“갓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셨죠? 반년 동안 해외에 있다가 막 귀국해서 시차 적응이 안 되었기 때문이에요. 큰 병도 아니에요. 피곤함을 참으면서 낮에 잠을 안 자든지 아니면 밤에 수면제를 먹고 며칠 조절하면 나을 수 있어요.”
“신통해! 참 신통해!”
강성빈은 진태평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직접 본 것처럼 얘기하네. 투시라도 하는 거야?”
“아빠, 투시로 반년 전에 외국에 계신 걸 보아낼 수 없어요.”
옆에 있던 강유이도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심지어 진맥도, 문진도 없이 아버지의 어려움을 한눈에 알아보았으니 어찌 신의가 아닐 수 있겠는가?
“태평 씨, 나도 봐주세요. 나는 뭐가 문제죠?”
강유이도 흥이 나서 가까이 다가갔다.
“유이 씨? 유이 씨는 괜찮아요.”
진태평은 강유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꼭 여기서 말해야 해요?”
진태평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뜻이야? 내가 들으면 안 돼?”
이상함을 눈치챈 강성빈은 진태평을 쳐다보다가 또 고개를 돌려 긴장한 표정으로 강유이를 바라보았다.
“나... 나는 병이 없어요.”
강유이는 붉은 입술을 깨물며 진태평을 노려보았다. 진태평이 만난 지 세 번 만에 자신의 문제를 보아낼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투시안이 있더라도 강유이의 병을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병원의 X-ray도 발견하지 못한 문제를 진태평이 보아낼 수 있다고 강유이는 믿지 않았다!
“따님이 원하지 않으니 이 자리에서 말하지 않을래요.”
진태평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환자는 프라이버시가 있다. 환자가 병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치료를 거부할 땐 강요하지 말아야 했다. 아무리 좋은 충고와 조언이 있어도 고집을 꺾지 않고 외곬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의 결정은 바뀌기 어려웠다.
옛말에 의사는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고 했다. 즉 자발적으로 방문하여 다른 사람의 병을 치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이야, 왜 그래?”
급해 난 강성빈은 눈이 빨개졌다.
강유이는 못 본척하며 진태평을 노려보았다.
“말해도 돼요?”
“말해요!”
“부끄럽지 않으세요?”
“아니요.”
강유이는 고개를 저었지만 강성빈은 다시 긴장해졌다.
‘병을 나한테 알리려 하지 않고 또 왜 부끄러운지 말도 하지 않았어. 혹시 몰래 남자친구를 사귀어서 임신이라도 한 걸까?’
“유이야, 너 혹시 임신했니?”
강성빈은 딸의 아랫배를 걱정스럽게 보았다.
“아빠, 무슨 터무니 없는 소리예요?”
강유이는 얼굴을 붉히며 화 난 표정으로 강성빈을 노려보았다.
“태평 씨, 빨리 말씀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임신한 줄 착각하세요.”
“말했잖아요. 유이 씨는 건강해요.”
진태평은 한가롭게 음식을 먹으며 술을 마셨다. 두 사람이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본 진태평은 입을 닦고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빨았다.
“당신은 털이 없는 병에 걸렸어요. 즉 무모증이죠.”
“헉!”
강유이의 낯빛이 숯을 바른 것처럼 까맣게 변했다.
‘맞혔어!’
“털이 없는 병?”
강성빈은 어리둥절했다.
‘이 친구 제정신이야?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너무 많이 본 게 아니야?’
“맞습니다. 아저씨의 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털이 하나도 없어요. 지금도 가발을 쓰고 있어요.
“그만 해요!”
“믿어요, 신의세요!”
강유이는 다소 격앙된 표정으로 진태평의 말을 끊었다.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난 강유이는 늘씬한 몸매, 예쁜 얼굴 등 다 갖추었지만 애석하게도 긴 생머리를 가질 수 없었다.
가발이 떨어질까 봐 친구들과 목욕탕에 가기도 쑥스러웠고 수영을 할 수도 없었다. 또 여름에는 두드러기가 잘 생겨 가발은 오래 쓸 수 없었다.
“아니, 난 왜 몰랐어? 유이 몸에 털 하나도 없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진태평은 또 한 번 강성빈을 놀라게 했다.
진태평은 눈을 흘겼다.
‘딸이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이 사실을 몰랐다니, 아빠로서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태평 씨, 부탁드려요.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저도 머리를 기르고 싶어요.”
진태평을 바라보는 강유이 눈빛이 반짝거렸다.
“네, 하지만 치료과정이 좀...”
“어려운가요?”
“아니요, 부끄러워요.”
“부끄럽다뇨?”
강유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뜻인가요?”
“옷을 벗어야 해요. 다 벗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