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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안이서는 방에서 정갈하게 옷을 갈아입은 후 다시 나왔지만 연준호가 안 보였다. 외출한 건지 방 안에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굳이 방해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신발을 갈아신고 바로 가게로 향했다. 가게에 도착하니 안채아가 한 살도 안 된 아들 양하율을 데리고 와 있었다. 안채아는 안이서를 본 순간 얼굴에 스친 걱정이 그제야 조금은 가시고 편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너 아무 일 없으니 다행이야. 이젠 시름 놓을 수 있겠다.” 언니가 잠든 조카를 안고 있자 안이서는 재빨리 아이를 안아오며 언니를 위해 부담을 덜어줬다. 안이서는 언니가 잔뜩 수척해진 채 여전히 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그녀는 안채아를 옆에 앉히려고 손을 잡아당겼는데 이때 불쑥 안채아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 모습에 안이서도 화들짝 놀랐다. “왜 그래 언니?” 안이서는 아주 살짝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겼을 뿐인데 왜 이러는 걸까... 한편 그녀는 눈치가 빨라 안채아가 해명하기도 전에 옷소매를 확 걷어 올렸다. 이제 가을에 들어섰지만 은성시는 여전히 낮에 매우 덥고 길거리에 반팔과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들이 수두룩하다. 안채아는 더위가 딱 질색이라 이런 날씨에 절대 긴팔을 입을 리가 없다. 그녀의 몸에 흉터가 나 있다면 모를까. 아니나 다를까 소매를 걷어 올리자 팔뚝에 짙은 보라색 멍 자국이 훤히 드러났다. “언니, 이건...” 그녀의 팔뚝에 두들겨 맞은 흔적이 역력했고 이를 본 안이서는 심장이 찢어질 것 같았다. “형부가 또 때렸어?!” 안채아는 재빨리 팔을 빼내고 소매를 내리며 꿋꿋이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내가 실수로 부딪힌 거야. 걱정 마 이서야. 언니 괜찮아.” 안채아는 동생이 걱정할까 봐 나쁜 일은 절대 알리는 법이 없다. 지금처럼 뻔히 들켰어도 끝까지 시치미를 뗀다. 이런 언니의 성격을 안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 “언니, 언제까지 이렇게 참기만 할 거야? 이번엔 또 이유가 뭐래?” 안이서는 속상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안채아가 거의 엄마처럼 그녀를 키웠기에 시댁에서 이런 대우를 받는 걸 차마 지켜볼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안채아의 시댁 식구들을 찾아가 제대로 따지려 했지만 번마다 안채아가 극구 말리며 반대했다. 가서 소란을 피우면 서로 얼굴만 붉힐 거라면서 항상 말렸다. 가장 중요한 건 안채아가 그런 시댁 식구들과 계속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자매는 가진 게 없어 소란을 피워봤자 해결될 건 아무것도 없다. 한바탕 야단치면 안이서는 속이 후련해지겠지만 그 대가로 안채아는 시댁 식구들에게 더 각박한 대우를 당할 것이다. 이번엔 다름이 아니라 시어머니가 어디서 들었는지 안재원과 소현정이 또 한창 안이서의 혼사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그들이 뻔뻔스럽게 1억2천 원의 예물 값을 요구한 것까지 알아내고는 예물에 관한 일로 들들 볶으며 안채아를 난감하게 굴었다. 안채아는 동생에게 이런 부정적인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아 아예 화제를 돌려버렸다. “너 어제 결혼했다는 말, 그거 진짜야? 나 놀리는 거지?” “언니, 또 이런다!” 안이서는 언니가 자신에게 그 어떤 부정적인 에너지도 안 주려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다만 이젠 언니에게 결혼에 관한 일을 얘기해줘야 할 듯싶었다. 그녀가 어제 발생한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자 안채아의 걱정의 골이 더 깊어졌다. “그러니까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고? 이러면 너한테는 더 위험한 거 아니야?” “적어도 소현정이 정해준 그 마을 남자들은 아니잖아. 게다가 그 사람 듬직하고 날 많이 배려해줘. 돈까지 주던데?” 안이서는 불쑥 뭔가 생각난 듯 가방에서 어제 연준호가 준 블랙카드를 꺼냈다. 안채아는 이 카드를 직접 보니 그제야 조금 안심됐다. “이런 금테 두른 블랙카드는 인터넷으로만 봤는데 혹시 은행 VIP 고객 아닐까? 꽤 돈 많은 사람 같아 보여.” 한편 안이서는 이런 것들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카드를 가방에 넣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다 혼전 재산이지. 이 카드에서 나가는 돈은 싹 다 장부에 적을 거야. 괜히 내가 공짜를 노린다고 생각하지 않게 말이야.” 안이서는 이러러 한 결혼 생활을 수없이 봐왔었다. 간식거리를 사는 돈 200원 때문에 아빠는 쉴 새 없이 따지고 들었고, 친동생에게 생활비로 단돈 2만 원을 주려는 언니와 그걸 두고 핀잔을 늘어놓는 형부까지... 그때부터 안이서는 돈에 대해 유난히 예민해졌다. 안채아도 동생의 말에 동의했다. 두 사람이 무엇 때문에 결혼했든 돈과 관련해서는 절대 상대에게 얕잡아 보여선 안 된다. 안 그러면 앞으로 살아갈 날이 점점 더 순탄치 않을 테고 꼭 마치 지금 안채아의 신세로 전락할 것이다. “그럼 그 사람 직업이 뭔지는 알아? 그렇게 좋은 집에 살면서 너한테 통 크게 은행카드까지 주고 있잖아.” 안채아가 동생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 카드에 잔액이 얼마 있는지는 조회해봤어?” 이에 안이서가 머리를 흔들었다. “그 사람 사생활에 관해서는 묻기가 좀 그래. 잔액 조회하는 것도 실례인 것 같고. 이 카드는 최대한 안 쓸 거야. 나 돈 있잖아. 언니, 내가 저번에 준 돈 꼭 잘 보관해 둬. 절대 그 사람들한테 들키지 말고.” 안채아는 알겠다며 머리를 끄덕였다. 동생이 아빠와 계모에게 끌려서 ‘예물로 팔리지’ 않으니 안채아는 드디어 안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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