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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안이서는 그제야 안심하고 안으로 들어와 한 바퀴 쭉 둘러보았다. 70평쯤 돼 보이는 고급아파트는 위층에 방 세 개, 작은 거실이 하나 있고 아래층은 요리하는 주방과 식사하는 키친룸, 거실, 화장실 그리고 오픈식 대형 베란다가 있었다. 이런 대형 베란다는 줄곧 안이서의 로망이었지만 집 살 돈이 없어서 생각만 해볼 뿐이었다. 그러던 중 초고속 결혼을 하니 대형 베란다까지 차려지고 그야말로 하늘이 돕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베란다만 맴돌자 연준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 방은 위층 오른쪽 방이야. 거기도 작은 베란다가 하나 있어. 채광도 좋고. 전에는 쭉 나 혼자 살아서 나중에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네가 알아서 취향대로 꾸며.” 그는 말하면서 블랙카드를 한 장 선뜻 건넸다. “이 안에 돈은 너 마음껏 써. 결혼 뒤 일상적인 지출은 이 카드로 쓰면 되겠네.” 안이서는 그가 건넨 카드를 바라봤다. 이제 막 알고 지낸 사이인데 섣불리 카드를 받는 건 부적절한 듯싶었다. 하지만 연준호가 이미 결혼 뒤 일상 지출이라고 했으니 안 받을 이유도 없었다. 안이서는 카드를 받고 재치있게 먼저 말했다. “연애 결혼한 부부들도 장부를 적는다고 하는데 우리도 똑같이 해요.” 연준호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돈은 그에게 숫자에 불과하니까. 또한 결혼한 이상 그의 돈을 쓰게 하는 것도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오전에 보다시피 이 여자는 좀 독립적인 면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신세 지길 싫어하니 어떤 취지에서든 우선 그녀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연준호는 당분간 그녀에게 자신의 정보를 너무 많이 털어놓고 싶지 않았다. 둘은 초고속 결혼이라 아직 서로에 대해 너무 모르고 두 번째 이유는 사실 연준호도 이 결혼이 얼마나 갈지 짐작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단지 가족들을 상대하느라 결혼했을 뿐 이 시기가 지나서 안이서가 이혼하고 싶다고 하면 그도 안 막을 것이다. 하여 너무 많은 걸 알려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연준호였다. “너만 번거롭지 않다면 난 얼마든지 오케이.” 연준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끝내 그녀의 뜻을 따라주기로 했다. “그럼 장부 적는 거로 하고 시간이 늦었으니 얼른 가서 쉬세요. 상세한 건 내일 다시 얘기해요.” 안이서는 종일 바삐 돌아쳐서 진작 피곤이 몰려왔다. 그녀는 말하면서 캐리어를 방으로 끌어가려 했다. 건장한 체격에 그녀보다 키도 훨씬 큰 연준호는 당연히 아담한 안이서가 스스로 캐리어를 끌고 가는 걸 그냥 지켜볼 리가 없다. “이리 줘.” 안이서가 캐리어에 손이 닿기도 전에 이 남자가 번쩍 들어 올리고 방문 앞까지 가져갔다. “이제부터 여기가 네 방이야. 네 마음대로 꾸며봐.” “고마워요, 정말 너무 고마워요...” 안이서는 진심으로 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진짜 오버하지 않고 연준호는 그녀 인생에 나타난 유일한 신사적인 남자였다. 그날 밤 그녀는 단잠에 빠졌다. 아침에 인테리어 기사가 미친 듯이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다면 아마 좀 더 잘 수 있었을 것이다. 전화를 받자 기사님이 그녀더러 올 때 압정 한 박스를 사 오라고 했다. 안이서는 알겠다며 대답한 후 부랴부랴 일어나서 세안을 마쳤다. 침실 안에 건식, 습식이 분리된 욕실이 달려있어 그곳에서 다 씻고 습관처럼 잠옷 차림으로 주방에 가서 아침을 차리려고 했다. 8시가 넘었고 집안이 조용한 걸 보니 연준호가 분명 출근했을 거로 믿으며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냉장고를 열어서 아침 만들 식자재가 뭐가 있을지 둘러봤더니 안에 거의 텅 빈 상태였다. 안이서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얼마 안 되는 식자재로 겨우 계란햄 샌드위치를 만들었고 주전자로 뜨거운 물을 끓여서 컵에 부은 후 식혀서 마시기로 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샌드위치를 먹으며 주방에서 나왔는데 마침 연준호가 아래층으로 내려오며 이리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가 금방 씻고 나온 모습을 보더니 안이서가 흠칫 놀라며 물었다. “집에 있었네요? 난 또 출근한 줄 알고...” 연준호는 그녀를 힐긋 살펴보다가 얼른 시선을 피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오늘 토요일, 휴식일이야.” 안이서는 대학을 졸업한 후 바로 취직한 게 아니라 요 몇 년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자그마한 가게를 하나 차렸다. 그래서 휴식일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다. 그녀는 연준호에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하라고, 금방 해주겠다고 말하려 했는데 그가 어느새 대충 빵을 두 조각 들고 나왔다. “이젠 가을이라 쌀쌀하니까 방에서 나올 때 뭐라도 걸쳐.” 안이서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힐긋 내려다보았다. 그녀도 혼자 사는 데 적응하다 보니 집에서 속옷을 입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순간 그녀는 난감해서 빨개진 얼굴로 샌드위치를 든 채 성큼성큼 위층으로 올라갔다. “알았어요!” 안이서가 화들짝 놀라서 허둥지둥 도망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연준호는 양미간을 문질렀다. 그도 혼자 사는 데 적응한지라 이런 상황이 조금은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됐어... 결혼도 했겠다. 천천히 적응해나가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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