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14화

“은우 오빠, 뭐 보고 있어?” 구서희는 심은우가 넋을 놓고 있자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길가의 나무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서 저쪽 상황이 잘 보이지 않았다. 심은우는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별거 아냐.” 그는 앞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윤지현은 조도현을 따라갔다. 조도현은 나무 옆에 서서 전화를 받았고 윤지현이 자신을 바짝 따라오자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끔 보았다. 윤지현은 그가 전화를 받자 서둘러 걸음을 멈추고 그와 조금 멀리 떨어진 버섯 모양의 정자로 물러났다. 윤지현은 자신을 멍청하다고 나무라면서 이마를 주물렀다. 조도현이 통화를 끝내자 윤지현은 그제야 그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조금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일부러 태연한 척, 유머러스하게 말했다. “조 대표님, 안목이 뛰어나시네요. 저는 상황 파악도 잘 못하니 조 대표님 비서가 되기는 글렀네요. 그러면 전 이만 가볼게요.” “여기까지 따라온 이유가 윤지현 씨가 비서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였나? 그래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조도현은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 윤지현은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머쓱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차피 비서가 될 수는 없을 테니 더는 연기를 이어갈 필요가 없었기에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여기까지 온 이유는 당연히 비서가 되고 싶어서예요. 하지만 전 예전에 이미 조 대표님께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겼고, 오늘도 못난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으니 당연히 대표님 눈에 차지 않겠죠. 그러니 그냥 빨리 끝내고 싶은 것뿐이에요. 대표님께 미움받을 생각도 없고요.” 조도현의 표정은 차가웠다. “내가 그런 이유로 거절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윤지현이 말했다. “아닌가요?” “내 비서가 되고 싶다면서 이렇게 입고 왔는데 만약 내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난 사람들에게 여자에 환장한 놈이라고 소문이 나겠지.” 조도현은 허리를 살짝 숙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여자에 환장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렇게 대놓고 티를 내지는 않을 거야.” “...” 윤지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 얼굴뿐만 아니라 귀까지 빨개졌다. 조도현은 그녀가 외모를 이용해 비서 자리에 오를 생각이었다는 것을 조롱하고 있었다. 조도현은 그런 점을 경멸했다. 윤지현은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 그 자리에 있을 정도로 뻔뻔하지도 않았기에 난감한 얼굴로 황급히 인사를 건넸다. “덕분에 또 한 수 배워갑니다. 그러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윤지현은 조도현의 대답도 듣지 않고 빠르게 숲을 나섰다. 여윤아와 반형서는 돌아와서 조도현이 혼자 있는 걸 보고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제 친구는요?” “먼저 돌아갔어요.” 조도현이 대답했다. “네?” 여윤아는 깜짝 놀랐다. 윤지현이 구직에 실패했다는 걸 눈치챈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는 분명히 화기애애했는데 말이다. 결국 여윤아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조 대표님, 지현이는 능력이 좋아요.” 조도현이 그녀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런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똑똑한 여윤아는 조도현의 말을 듣고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그녀는 바람둥이 기질이 있는 남자들을 많이 봐왔었기에 자신의 방법이 먹힐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조도현은 스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런 면에서 무감각했다. “어머, 오해가 생겼나 보네요.” 여윤아는 곧바로 해명했다. “전부 제 탓이에요. 사실 지현이 올 때는 그렇게 입고 오지 않았어요. 지현이가 긴 옷에 긴 바지를 입고 있길래... 제가 제 옷을 주면서 갈아입으라고 했거든요.” “...” 조도현은 어이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윤지현은 바로 옷을 갈아입은 뒤 풀 죽은 얼굴로 화장대 앞에 앉았다. ‘난 세민 그룹을, 심은우를 떠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걸까?’ 잠깐 우울해 있던 윤지현은 뒤늦게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녀는 여윤아에게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었다. 조금 전 구직 활동에서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았던 윤지현은 휴대전화를 무음 모드로 설정해 놓았다. 그래서 휴대전화를 켜보니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 심은우에게서 걸려 온 전화도 있고 여윤아에게서 걸려 온 전화도 있었다. 윤지현은 심은우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무시하고 곧장 여윤아에게 연락했다. “미안. 몸이 안 좋아서 먼저 왔어. 나 저혈당이 있거든. 자기한테 얘기한다는 걸 까먹었네.” 여윤아는 몇 초간 가만히 있었다. “...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나지.” 똑똑한 사람은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됐다. “괜찮아. 나도 그냥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뿐이야. 자기한테는 내가 신세도 많이 졌지. 나 다 기억하고 있어.” “신세라니. 옷에 관해서는 내가 조 대표님에게 설명했어. 그런데 별 반응이 없더라. 내가 반 대표님에게 부탁해서 조 대표님 전화번호를 알아내긴 했는데 혹시 한 번 연락해 볼래?” 윤지현은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됐어. 인연이 아닌가 보지.” 여윤아는 윤지현의 말을 듣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은 뒤 윤지현은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기분이 좋지 않으니 몸도 피곤했다. 그러다가 어렴풋이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음...” 윤지현은 몸을 뒤척이면서 눈을 살짝 떴고 심은우가 차가운 얼굴로 침대 앞에 서 있는 걸 보았다. 윤지현은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기에 몸을 돌리며 얼굴을 이불 속에 파묻었다. “오늘 하루 종일 집에서 잠만 잔 거야? 외출 안 했어?” 심은우는 침대 끄트머리에 앉으면서 넌지시 물었고 윤지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나 오늘 골프장에 갔다가 너랑 뒷모습이 비슷한 사람을 봤는데.” “...” 윤지현은 눈을 번쩍 떴다. 오늘 심은우도 골프장에 갔던 걸까? 우스운 일이었다. 그와 구서희는 그녀에게 현장 라이브까지 들려줬는데 심은우는 무슨 낯짝으로 그녀의 외출에 간섭한단 말인가? 윤지현이 갔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심은우가 여윤아를 귀찮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윤지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심은우는 이불 한쪽을 젖히면서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댔다. 윤지현의 흰 목을 본 그는 의심스러운 흔적이 보이지 않자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그는 굳이 그녀에게서 대답을 들으려고 했다. “오늘 외출했어, 안 했어?” “안 했어. 오후 내내 마당 쓸었어. 잘 거니까 말 걸지 마.” 윤지현은 그가 가까이 오는 게 싫어서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심은우는 그녀가 거짓말하는 것 같지 않자 포기했다. 밤이 되었고 조도현은 건물 꼭대기 층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진성주는 옆에서 조도현의 식사를 도우며 미리 따놓은 와인을 잔에 따랐다. 그는 조도현의 생활 방면을 돕는 집사이자 운전기사이자 주방장이자 가정부였다. 그리고 가끔은 손태호와 함께 업무도 처리했다. “헤드헌터 쪽에서는 아직 아무런 소식도 없나요?” 조도현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면서 물었다. “손태호 씨가 조금 전 리스트를 뽑아왔습니다. 시간 나실 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지 한 번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진성주는 그렇게 대답한 뒤 뭔가 재밌는 일이 떠올랐는지 말을 이어갔다. “조금 전에 한 번 봤었는데 지난번에 추돌 사고가 났었던 윤지현 씨도 있었습니다.” “그래요.” 조도현은 잔을 내려놓았다. “태블릿 좀 가져다주실래요?” 조도현은 무심하게 말했지만 그의 옆에서 20여 년을 일한 진성주는 이것이 꽤 중요한 일임을 알고 있었다. 진성주는 서재에서 태블릿을 챙겨와 조도현에게 건넸고 조도현은 리스트를 보았다. 그는 이미 몇 번이나 리스트를 폐기했다. 조도현이 원하는 사람은 관리 능력이 있으면서 리더십도 있고 이미지도 좋고 사교 능력도 좋아 그를 대신하며 회사 각 부문, 그리고 협력업체와 소통하며 크고 작은 일을 처리해 줄 수 있는 비서였다. “도련님, 윤지현 씨는 비록 젊긴 하지만 능력이 상당히 뛰어납니다. 세민 그룹에서 4년간 일하면서 기획팀 팀원에서 과장이 되었어요. 세민 그룹은 지난 몇 년간 아주 빠르게 발전했는데 그중 윤지현 씨의 공로가 굉장히 큽니다. 이 업계에서 윤지현 씨를 탐내는 회사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윤지현 씨가 세민 그룹 대표인 심은우 씨와 사귀었기 때문에 다들 그녀를 스카우트할 수가 없었죠. 하지만 소문에 따르면 심은우 씨가 구씨 가문 넷째 딸 구서희 씨와 정략결혼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윤지현 씨가 순간의 화를 못 참고 세민 그룹을 떠났다고 합니다. 휴, 정말 바보 같은 아가씨죠...”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