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저 멍하니 그 자리에 선 채 박현우가 이다빈 앞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있을 뿐이다. 이다빈의 앞에 간 박현우는 우산을 기울이며 말했다.
“가.”
“네.”
이다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사람들은 자신의 두 눈을 믿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토록 잘생긴 사람이 이다빈을 마중 나오다니!
그저 충격에 휩싸여 말을 잇지 못할 뿐이다.
길가에 주차된 마이바흐에 이다빈과 박현우와 함께 올라타는 것을 보자 깜짝 놀라 벌린 입은 턱이 빠질 정도로 점점 더 커졌다.
“저 차 혹시 한정판 마이바흐 아니야? 몇백억은 아니더라도 기본 몇십억은 할 텐데… 게다가 돈이 많다고 다 살 수 있는 게 아니야.”
한 남학생이 알아보고 말했다.
이 말에 오시연을 비롯한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서범준의 스포츠카를 바라보았다.
스포츠카는 비록 자체로도 기세를 내뿜고 있었지만 조금 전의 마이바흐와는 비교가 안 되었다...
천차만별이었다!
차 안에서 이다빈이 박현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요.”
“고마워할 필요 없어. 할아버지께서 가라고 하신 거니까.”
박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차에서 내리라는 말은 하지 않았잖아요. 우산까지 받쳐주었고요. 덕분에 저기 찌질한 남녀 두 사람 앞에서 제 체면이 섰어요.”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할아버지가 알게 되면 화를 많이 내겠지. 어차피 곧 약혼할 거니까 너도 절반은 박씨 가문의 사람인 셈이니까. 박씨 집안의 사람이 다른 사람 앞에서 망신 받게 할 수는 없지.”
“어찌 되었든 고마워요.”
이다빈은 남에게 신세 지는 것을 싫어한다. 오늘 이 일을 마음에 새겼다가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은혜를 갚을 것이다.
박현우는 이다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말 고마우면 내 조건 하나만 들어줘.”
“무슨 조건인데요?”
“약혼 후 한 달 동안 나에게 다른 마음 품지 않기.”
이다빈은 가볍게 웃었다.
“말했잖아요. 그쪽은 내 취향이 아니라고. 벌거벗고 같이 침대에서 자도 쳐다보지 않을 거예요.”
이 말에 박현우는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졌다.
분명 목적을 달성했지만 왜 그렇게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박씨 가문의 별장 입구에 세워졌다.
“할아버지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어.”
“알겠어요. 일단 거실에서 기다릴게요.”
이다빈이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성도섭의 여유로운 모습이 보였다. 그녀를 전혀 남으로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안녕.”
성도섭은 이다빈과 간단히 인사한 후 계속 TV를 시청했다.
그때 갑자기 정체불명의 물체가 날아와 이다빈의 뒤통수를 향해 직진했다.
“조심해!”
높은 외침과 함께 박현우가 쏜살같이 달려와 이다빈을 뒤통수에 부딪힐 뻔한 정체불명의 물체를 가로채려 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데다 박현우와 이다빈의 거리가 멀어 마음은 있어도 몸이 쉽게 따라주지 않았다.
일촉즉발의 순간, 이다빈은 손을 뒤로 뻗더니 ‘탕’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오는 미확인 물체를 가볍게 잡았다.
반응이 아주 빨랐다.
성도섭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박현우도 어리둥절해 했다. 이다빈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모습은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아! 나의 정이 2호!”
여덟, 아홉 살짜리 소년이 다급한 표정으로 이다빈에게 달려갔다.
이다빈은 손에 든 것을 들여다봤다. 작은 원형 로봇이 끊임없이 ‘쿵… 윙…’ 하는 진동 소리를 계속 내고 있었다.
“조심해요. 조립하는 데 한 달이나 걸렸단 말이에요. 우리 아기 망가지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어린 소년은 얼굴을 붉히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도섭이 한마디 끼어들었다.
“이다빈, 조심해. 박 도련님 동생에게 잘 보여야 할 거야. 집에서도 오냐오냐 키우다 보니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못해. 쟤는 별다른 취미는 없고 단지 로봇을 좋아해. 그러니까 절대 쟤 물건은 망가뜨리면 안 돼. 안 그러면 정말 너와 필사적으로 싸울지도 모르니까. 그때면 할아버지도 네 편이 되어서 너를 도울 수 없을 거야.”
박현우가 다가오더니 굳은 표정으로 박서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물건 때문에 다칠 뻔했는데 사과 안 해?”
박서명은 당장이라도 화를 낼 것 같은 형의 얼굴을 보고 목을 움츠리더니 이다빈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쯧쯧.”
성도섭은 혀를 찼다.
“이 꼬마 악당은 그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는데 너 한 사람은 그래도 무서워하네.”
“쓸데없는 말이 참 많네요!”
박서명이 성도섭을 향해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이다빈의 손에서 원형 로봇을 낚아챘다.
“도대체 어디서 잘못된 거지?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자세히 확인해 봤는데… 인터페이스와 칩 모두 문제가 없어! 그런데 어떻게 통제 불능이 된 거지?”
박서명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한 편으로는 기계를 검사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다빈이 박서명의 앞에 다가와 물었다.
“이게 혹시 청소 로봇이야?”
“어떻게 알았어요?”
박서명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이다빈을 쳐다봤다.
“방금 봤어.”
이다빈이 대답했다.
한 번 힐끗 봤는데 이 로봇의 용도를 바로 알았다고?
놀란 것은 박서명뿐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성도섭과 박현우도 많이 놀랐다.
“어떻게 알았어?”
박서명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 이것은 평범한 청소 로봇이 아니야. 천장 샹들리에같이 건물 높은 곳에 걸려 있는 것들을 청소하는 기계. 맞지?”
이다빈은 대답하는 대신 반문했다.
박서명은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이것까지 알아맞힐 수 있지?
이다빈은 박서명의 앞에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나에게 줘봐. 내가 수리해줄 테니까.”
“네?! 어떻게요?”
박서명은 얼른 물건을 뒤로 감췄다. 이다빈이 건드리면 망가질까 봐 걱정되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성도섭은 이다빈을 조금이라도 좋게 보려던 일말의 마음이 이내 다시 사라졌다.
‘또 잘난 척하는 것 좀 봐.’
“이다빈, 이 꼬마 악당이 겨우 여덟 살이지만 이 방면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내가 허풍 치는 게 아니라니까? 다섯 살 때부터 자신이 개발한 로봇으로 어린이 과학 대회에서 우승했어. 로봇들은 하나같이 매우 고급스러워서 네가 쉽게 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이다빈은 담담한 얼굴로 성도섭을 바라보더니 다시 시선을 돌려 박서명을 쳐다봤다.
“너 이 로봇은 작동하자마자 소음이 심하지 않아?”
“어떻게 알았어요?”
“비행할 때 항상 경로를 살짝 비껴가고?”
“이것까지 안다고요?”
“운행 시간이 길어지면 기계 전체가 뜨거워져. 그러다가 너무 뜨거워지면 통제 불능이 되지. 아까처럼.”
“그걸 어떻게…”
박서명은 깜짝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이다빈은 계속 분석했다.
“내 추측이 맞다면 이 로봇은 펄스 출력에 문제가 있어. 인코더 케이블과 회로에도 문제가... 서버 설정도 다소 어긋나고... 방금 내가 한 번만 본 거라 여기까지밖에 판단이 안 서네. 아마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추가 테스트도 필요해.”
순간 정적이 흘렀다...
거실은 바늘이 떨어져도 들릴 정도로 조용했고 모두가 이다빈을 쳐다봤다.
특히 이다빈을 바라보는 박현우의 눈빛에는 의미심장한 빛이 반짝였다. 머릿속에서 복잡한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박서명은 놀란 나머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번만 보고도 이렇게 많이 알다니?!
“내가 한 번 테스트 해 볼게.”
이다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적막한 분위기를 깨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