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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한여름, 이씨 가문의 별장. 한 젊은 여자가 풍선껌을 씹으며 비싼 가죽 소파에 나른하게 앉아있었다. 투명할 정도로 하얀 피부 결은 꼭 마치 빛을 내뿜는 듯했다. 반달 같은 눈썹과 우아한 자태는 그림에서 나온 선녀같이 아름다웠다. “푸.” 붉은 입술을 약간 벌리고 볼을 부풀리며 얼굴보다 더 큰 풍선 껌을 불었다. “이다빈 같은 쓸데없는 여자는 나와 어울리지 않아요. 오늘은 파혼하러 온 거예요!” 입구에 서 있는 남자는 여자의 나른한 표정을 보며 극도로 미워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말을 들은 이다빈의 어머니 나효심은 다급해졌다. “강 도련님, 이 일은 도련님 탓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다빈이가 못나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밖에서 빈둥거리고 있어서 제가 다 미안하네요. 그런데 할아버지들끼리 결정한 일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쉽게 파혼할 수 있어요?” 말을 하자마자 나효심은 못이라도 박을 것 같은 매서운 눈빛으로 이다빈을 못마땅하게 노려봤다. “거기서 뭐 해! 빨리 와서 강 도련님에게 사과하지 않고! 앞으로 절대 밖에서 빈둥거리지 않고 창피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지!” 탁! 이다빈은 터진 풍선껌을 다시 입안에 넣은 뒤, 나비 날개 같은 속눈썹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림 같이 정교한 눈매에서 쉽게 굴복하지 않을 거라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사과? 사과는 저 사람이 나에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멋대로 약속을 어기고 내가 본인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모욕하고요.” 나효심은 이다빈 때문에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다빈이 계속 말했다. “그리고 빈둥거리며 논 적이 없는데 창피할 게 뭐가 있어요. 오히려 저 사람이 자주 밖에서 바람을 피우고 다녔어요. 남자다운 구석이 전혀 없죠. 그래요, 파혼하는 게 좋겠네요. 내가 밖에서 망신당하지 않도록!” “이다빈! 너!” 나효심은 이를 악물고 두 단어를 외쳤다. “아무래도 그만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강진성은 나효심의 말을 끊었다. “이다빈은 그저 얼굴만 반반하게 생기고 겉치레만 번지르르할 뿐, 빈 깡통이나 다름없어요. 하지만 나는 그렇게 가벼운 사람이 아닙니다. 무릎 꿇고 싹싹 빌어도 다빈이 같은 여자와 결혼하지 않을 겁니다. 나에게 진짜로 어울리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에요.” 여기까지 말한 강진성은 위층을 바라봤다. 눈에는 사랑스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바로 이은영.” “진성 오빠!” 이은영은 감동한 표정으로 위층에서 달려왔다. “은영아!” 강진성은 계단 입구로 성큼성큼 다가와 두 팔을 벌린 채 그녀가 품에 안기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곧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이은영은 눈물이 글썽한 채 말했다. “나 드디어 오빠에게 시집갈 수 있는 거야?” “미안해. 은영아, 파혼이 늦어졌어. 많이 기다리게 해서 정말 미안해.” “괜찮아. 오빠 힘든 거 다 아니까 괜찮아...” 쓰레기 같은 천한 남녀가 서로 끌어안고 있을 때, 이다빈에게 문자 한 통이 날라왔다. [이 교수님, 연구가 최종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교수님의 안전을 위해서 엘리트 경호원들을 몇 명 보냈습니다. 지금 집 앞에 도착했다고 하는데 언제 나오실 예정입니까?] 이다빈은 이내 답장했다. [곧 나갈게요.] 이다빈은 입안에 있던 풍선껌을 뱉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은영은 이다빈의 움직임을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밖으로 걸어나는 것을 보고 이다빈이 면목이 없어 속상해 떠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다빈에게 아직 모욕을 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대로 떠나게 할 수 있겠는가? “언니! 가지 마. 형부가 될 진성 오빠에게 내가 이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나도 정말 방법이 없었어. 우리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 미워하려면 나만 미워해. 우리 진성 오빠 탓이 아니니까.” 이다빈은 아주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표정 변화 없이 한마디 했다. “내연녀라는 타이틀이 적성에 맞나 봐? 꺼져.” “언니, 나를 용서 못 하는 거지? 그러면… 나를 그냥 때려! 언니가 화 풀릴 때까지 때려! 아무렇게 때려도 돼. 시키고 싶은 것 마음대로 시켜!” 이은영은 이다빈의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이다빈, 너 뭐 하는 거야? 감히 은영이를 때리다니!” 나효심이 달려들어 이다빈의 손을 때렸다. ‘찰싹!’ 하는 맑은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이다빈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백옥같이 하얀 피부에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2초간의 침묵 후, 고개를 들어 나효심을 바라봤다. 이 여자는 그녀의 친엄마이다. 그런데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이 단지 키우기만 한 딸 이은영에게만 잘해준다. 마음이 한쪽으로 너무 많이 기울어져 있다. 이은영은 눈시울을 붉히며 울먹였다. “엄마, 언니 탓 아니야. 다 내 탓이야. 내가 언니 약혼자를 뺏는 게 아니었어. 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다빈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내가 왜 네 탓을 하겠어. 너는 태생이 내연녀 체질인데 다른 여자의 남자를 뺏지 않고는 못 견디잖아. 타고난 것을 어떡하겠어.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어쩔 수 없지.” 이은영은 목이 메어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얼굴은 신호등처럼 붉으락푸르락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이은영은 답답하고 화가 났지만 고수해 오던 선한 캐릭터를 유지하기 위해 꾹 참았다. “이다빈, 은영이는 너의 여동생이야.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너무 못 된 것 아니야?!” 이다빈을 바라보는 나효심의 시선은 실망감으로 가득했다. 이다빈은 계속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어떤 희로애락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얘는 내 동생 아니에요. 혈연관계도 없는데 무슨 동생은 동생이에요.” 사실 이 일을 설명하자면 정말 일반 드라마보다 스토리가 더 막장이다. 20년 전, 이다빈과 이은영은 태어나자마자 간호사의 잘못으로 인생이 바뀌었다. 5년 전에 진실을 알았고 집안에서는 이다빈을 시골에서 이씨 가문으로 데려왔다. 나효심은 오랜 세월 키운 딸 이은영이 시골로 내려가 고생하는 게 아까워 계속 곁에 두기로 했다. 나효심은 친엄마로서 그동안 이다빈에게 못 해준 것들을 보상해 주기는커녕 시골에서 자란 것을 아니꼬워하고 싫어했다. 이은영만 편애했다. “상처 주는 말을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어? 은영이도 내 딸이야. 혈연관계는 없지만 나에게는 친딸이나 마찬가지야. 나중에 또 이런 말로 은영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나효심은 차라리 이은영이 친딸이기를 바랐다. 이다빈은 그동안 이런 말을 귀에 못이 박일 정도로 많이 들었다. “바빠서 이만 가봐야겠어요. 저녁에 안 들어올 거예요.” 말을 마친 이다빈은 다시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 돌아온다고? 또 어디 가서 빈둥거리려고?” 나효심은 화가 잔뜩 난 듯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빈둥거리는 거 아니에요.” 이다빈은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빈둥거리는 거 아니면 뭔데? 응? 얘기해 봐!” 나효심은 으르렁거리며 언성을 높였다. 이다빈은 눈살을 찌푸린 채 2초간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국가기밀이라 말할 수 없어.” “후...” 나효심은 목구멍이 꽉 막혀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을 때, 이다빈은 이미 별장을 떠나고 없었다. “못된 년! 내가 어쩌다 저런 딸을 다 낳았는지!” 별장 밖, 이다빈이 대문 앞에 도착했다. 이때 저 멀리서 녹색 SUV가 웅장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기세등등한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두두두두’ 하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울렸다. 고개를 들자 중무장한 헬기 10여 대가 공중을 선회하며 대기하고 있다. 뒤이어 똑같은 밀리터리 룩을 입은 병사들이 차에서 재빨리 내리더니 질서 정연하게 줄을 지어 이다빈을 겹겹이 에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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