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한 차례 안부인사를 마친 뒤 안해천은 여지안을 데리고 방을 보여주었다. 방안은 넓고 밝았으며 인테리어는 정교하고 화려했고 안에는 없는 게 없었다. “지안아, 방 인테리어 마음에 드니? 마음에 안 들면 다시 하라고 할게.” “아저씨, 마음에 들어요. 고마워요.” 눈앞의 남자를 본 여지안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렸을 때에도 안해천을 여러 번 봤었는데 그는 늘 자신에게 아주 잘해주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여지안은 저도 모르게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라 안색이 어두워졌다. “오느라 고생했을 텐데 얼른 푹 쉬어. 저녁 식사 시간 되면 부를게.” 여지안은 고개를 끄덕인 뒤 방으로 들어가 짐을 정리했다. 식사를 마친 뒤 안해천은 여지안을 붙잡고 소파에서 대화를 나누다 이내 카드를 건넸다. “지안아, 이 카드 받아. 내일 애들보고 강성 구경시켜주라고 할 테니까, 그때 사고 싶은 거 있으면 마음껏 사.” “아저씨, 고마워요. 마음만 받을게요.” 그 말이 끝나자 여지안은 옆에서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서연을 발견했다. 이서연은 비꼬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쯧쯧쯧, 고상한 척은. 너 우리 안씨 가문에 온 건 다 돈 때문이잖아?” “이서연!” 안해천은 화를 내며 이서연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여지안은 자신이 어쩌다 이서연의 미움을 산 건지 알 수가 없어 입꼬리가 떨려왔다. 그렇게 그녀는 안해천의 성의를 몇 번이나 거듭 거절했다. 바로 그때, 옆에 놓아둔 휴대폰이 울렸다. “지안 누나, 회사 이번 분기 영업 이익인 765억 계좌에 이체했어요.” 그녀는 입꼬리를 올렸다. 돈 같은 거, 여지안은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고 이튿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여지안은 집사의 입에서 안해천이 이미 회사로 출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섯 도련님들은 식당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젯밤에 안해천은 이미 그들에게 오늘은 여지안을 데리고 강성을 돌아보라고 당부를 했었다. 여지안이 막 자리에 앉아 첫째인 안서진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 회사에 회의가 있어서 다른 애들 보고 데리고 가라고 하죠.” 말을 마친 남자는 식기를 내려놓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네 사람도 잇따라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여지안 씨. 전 오늘 촬영이 있어서 안 될 것 같네요.” “전 병원에 수술이 두 개나 있어서요.” “전 오늘 출장이에요.” “전 수업이 있어요.” “….” 그렇게 잇따라 식탁을 떠나는 다섯 사람에 여지안은 어이가 없어져 두 눈을 흘기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아침 식사를 이어갔다. 그녀는 방에서 오후 내내 있었다. 그러다 저녁이 되자 테이블에 올려둔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기 너머로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누나, 강성에 온 거야?” “무슨 일이야?” 여지안은 냉담하게 입을 열었다. “강성에 와놓고 얘기도 없고, 의리 없어! 아 몰라, 지금 당장 나와서 나랑 밥 먹어.” “안가.” “안 오면 안씨 가문으로 찾으러 갈 거야.” “….” 30분 뒤, 여지안은 집사에게 이야기를 한 뒤 홀로 별장을 나섰다. 여지안은 허정문과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그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강성의 한 고급 바로 향했다. “누나, 안씨 가문에서 누나 괴롭히는 건 아니지?” “누가 날 괴롭힐 수나 있겠어?” 여지안은 코웃음을 쳤다. 허정문은 머쓱한 얼굴로 웃었다. “하긴….” 여지안의 전적을 떠올려 보면 그녀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거면 몰라도 여지안을 괴롭힐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여지안은 비록 얼굴은 예쁘게 생겼지만 사실은 악마나 다름없었다. “정말로 안씨 가문 사람이랑 약혼할 생각이야?” “몰라.” 여지안은 술을 한 모금 마시며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안씨 가문으로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두고 보는 수밖에 없었다. 바 1층 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은 2층의 테이블에서 자신들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