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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강기준이 손을 뻗어 정라엘의 몸을 받아냈다. 그는 매력적인 눈매를 아래로 깔아 그녀를 살짝 훑어보더니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불만이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정라엘, 너 왜 돌아온 거야?” 정라엘 역시 그가 집에 있을 줄은 몰랐다. 오늘 그는 몸에 딱 맞는 검은색 수트를 입고 방금 바깥에서 돌아온 참이었다. 비싼 원단에는 차가운 밤공기가 살짝 배어 있었다. 정라엘의 몸은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있었고 본능적으로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에게서 풍기는 성숙하면서도 차가운 기운이 그녀 안에 불처럼 타오르는 욕망을 조금이라도 잠재워 줄 것 같았다. 정라엘은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기준 씨...”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기준은 그녀를 밀어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이 그녀를 스쳐 갔다. “너 왜 이래?” 밀쳐진 정라엘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조금 전 자신이 그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씁쓸한 웃음을 삼켰다. 그가 그녀 편이 되어줄 리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누가 나한테 약을 탔어.” “약을 탔다고?” 강기준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늘 그를 골치 아프게 하는 이 여자가 또 문제를 일으켰나 싶은 표정이었다. “거기 있어.” 그는 긴 다리를 성큼성큼 움직여 거실의 통유리창 쪽으로 걸어가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목에 맨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원래도 차갑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남자였는데, 이렇게 약간 풀어진 모습에서는 방탕한 느낌마저 풍겨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정라엘은 그를 더는 쳐다볼 수가 없었다. 곧 전화를 받은 사람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고승호였다. “여보세요, 형.” 강기준이 짧게 물었다. “여자가 약에 취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해?”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오, 형. 아름 씨가 약에 취했어? 그럼 고민할 필요가 있나. 형이 직접 해결하면 되지.” 강기준이 짜증 섞인 어조로 말했다. “농담 집어치워.” “아름 씨가 아니야? 그럼 그냥 찬물에 담가. 다만 그 과정이 되게 괴로울 거야. 버텨내면 사는 거고 못 버티면 혈관이 터져서 죽을 수도 있어.” 강기준은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정라엘을 바라봤다. “찬물로 씻을 수 있겠어?” 정라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녀는 곧장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강기준은 겉에 걸친 검은색 재킷을 벗어 의자 위에 두었다. 바로 그때 욕실 안에서 갑자기 비명이 울렸다. “대체 뭔데?” 강기준은 귀찮은 기색을 감추지 않고 다가가며 문을 열고 들어섰다. 샤워기 밑에 서 있던 정라엘은 이미 겉옷을 벗었고 얇은 슬립 하나만 걸친 상태였다. 가느다란 어깨끈이 그녀의 여린 어깨 위에 살짝 걸쳐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몹시 아슬아슬했다. 샤워기는 아직 물을 틀지 않은 상태였고, 정라엘은 이마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그녀는 울음이 배어 있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를 부딪혔어.” 순간적으로 마주한 그녀의 모습에 강기준은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그는 살짝 그녀의 손을 치우더니 하얗게 도드라진 이마를 확인했다. 정말로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왜 이렇게 어설프게 굴어?” “내가 어설픈 게 아니라... 머리가 어지럽단 말이야.” “... 거기 가만히 서.” “뭐?” 강기준은 대답 대신 샤워기를 확 틀어 버렸다. 차갑고 강한 물줄기가 쏟아지자 정라엘의 몸은 한순간에 흠뻑 젖었다. 타오르는 열기와 얼음물의 극적인 온도 차에 그녀는 못 참고 비명을 지르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너무 차가워! 싫어, 찬물 샤워 안 할래!” 그는 하는 수 없이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지만 둘 다 이미 흠뻑 젖은 상태였다. 정라엘의 작은 손이 그의 탄탄한 허리 근처를 마구 더듬기 시작했다. 강기준은 본능적으로 몸을 굳히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정라엘, 지금 어디 만지는 거야?” 정라엘은 이미 눈이 풀려 있었다. 촉촉한 눈동자가 천진한 듯 요염하게 빛났다. “복근이 여섯 개네.” “...” 정라엘은 그를 올려다봤다. 물에 젖은 눈썹 아래서 그의 얼굴이 한 치의 흠도 없이 완벽해 보였다. “얼굴도 멋져.” 강기준은 한 손으로 그녀를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이더니 쉰 듯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정신 차려.” “와, 힘세네. 더 좋아.” 그는 다시 샤워기를 들어 그녀의 붉어진 얼굴 쪽으로 찬물을 뿌려 정신을 깨우려 했다. “으악!” 정라엘은 괴로운 듯 그의 손을 쳐냈다. “기준 씨, 만약 약에 당한 사람이 정아름이었다면 도와줬겠지?” 강기준은 동작을 멈췄다. “뭐?” 정라엘은 길게 뻗은 속눈썹마다 맺힌 물방울을 떨면서 외롭고도 강하게 맞서고 있었다. “나니까 찬물로 때우라는 거잖아. 다들 날 싫어하니까!” 그녀의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오늘 이미 무슨 일로 울었는지 금방이라도 다시 눈물을 떨굴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정라엘은 확 달려들어 그의 목울대를 물었다. “으윽!” 강기준은 그녀의 허리를 꽉 움켜쥐었다. 가는 허리는 살랑이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부서질 것 같았다. 손에 잡히는 감촉이 너무 가녀려서 힘을 주면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했다. 그는 숨소리가 거칠어지며 한 손으로 그녀의 작은 얼굴을 밀어냈다. 잡힌 얼굴 한가득 붉은 열기가 감돌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렇게 뭘 물고 싶어서 안달이야?” 정라엘은 거의 정신이 없는 듯했다. 눈은 벌써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이제 울려나 싶던 순간, 강기준은 순간적으로 당황해 손을 놓았다. 그러자 정라엘은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싸안고 살짝 울먹이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미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많이 아파?” 그가 대답할 틈도 없이 정라엘이 목울대에 입술을 대고 살며시 키스했다. 방금 이빨을 드러내던 맹수가 갑자기 순한 고양이처럼 그에게 애틋하게 매달렸다. “당신... 정아름이랑은 해봤어?” 강기준은 눈빛이 매섭게 가라앉았다. 정라엘은 까치발을 들어 물에 젖은 눈동자로 그의 얇은 입술을 가만히 응시했다. “강기준, 나... 약에 취했어. 그래도 나 당신 아내잖아. 도와주면 안 돼?” 그러면서 서서히 그의 입술을 향해 다가갔다. 강기준은 피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졌고 이내 거의 닿을 듯한 순간... 웅웅웅, 웅웅웅...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강기준은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정아름이라는 이름이 깜박이고 있었다. 정아름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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