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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1장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어야지

내 여권은 아직 유효 기간이 남아 있었고 해외로 여행 가는 것도 문제없었다. 다른 절차들은 스턴국에 도착해서 처리할 생각이었다. 밤새 소유진은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학창 시절 얘기부터 배진욱과 내가 데이트하는 걸 우연히 목격했던 일까지 모두 꺼냈다. “사실 그때 난 이미 그 자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냥 자존심 때문이었어. 너도 알잖아?” “난 네가 참 용감하다고 생각했어. 나였으면 우리 부모님 절대 허락 안 하셨을 거야. 그리고 결국 결혼까지 못 갔겠지.” 소유진은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행이야, 그 인간이랑 안 이어진 게. 정말 최악이잖아!”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배진욱이 정말 나쁜 남자였을까? 어쩌면 그럴 때도 있었고 아닐 때도 있었다. 처음 결혼할 때 그가 나에게 복수하려고 한 거라면 그가 나쁜 사람이 된 이유도 나 때문이 아니었을까? 끝없는 악순환 같았다. 누구도 그 원인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 그렇다면 이 악순환을 깨고 떠나는 게 최선일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빨간 원피스에 흰색 재킷을 걸쳤다. 소유진은 나에게 큼직한 웨이브가 있는 가발을 씌워주고 화장까지 도와줬다. 그녀는 이혼하러 가는 길에도 최지연보다 더 돋보여야 한다며 잔뜩 신경을 썼다. 하지만 나는 최지연을 이기고 말고 할 게 없었다. 최지연은 아이가 있지만 나는 뭐가 있지? 병든 몸뚱이뿐이었다. 오전 8시 반 나와 소유진은 구청 앞에 도착했다. 한 시간 반이나 지나서야 배진욱이 나타났다. 소유진이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 재촉한 후에야 그는 늑장을 부리고 나타났다. 배진욱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쯤 되면 늦게 오면 이혼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배진욱은 수염도 깎지 않았고 어제 입었던 옷 그대로에 머리는 엉망이었다. 소유진은 못마땅한 듯 코웃음을 쳤다. 나는 차에서 내리며 그를 불렀다. “배진욱, 여기야.” 배진욱은 나를 보자마자 눈빛에 놀란 기색이 스쳐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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