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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장

정지헌은 눈을 잔뜩 찌푸리고 그녀가 들고 있는 종이를 바라봤다. “이게 뭐야?” “자료실에서 가장 오래된 캐비닛에서 찾은 건데요. 위에 한 줄 글씨가 쓰여 있더라고요. 무슨 뜻인지 한번 봐주세요.” 김소정은 종이를 그의 옆 협탁 위에 내려놓더니 공손하게 말했다. “그럼 저는 야식 준비하러 가볼게요.” 그녀가 방을 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던 정지헌은 시선을 다시 종이로 돌렸다. 짧은 한 줄 글귀. 불필요한 정보는 없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남긴 것처럼 보였다. 김소정은 주방으로 내려왔다. 독립된 작은 다락방에 사는 게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한밤중에 뭘 하든 남을 방해할 걱정이 없으니 말이다. 그녀는 냉장고에 지난번처럼 별다른 식재료가 없을 거라 생각하며 하나 남은 라면을 끓일 준비를 했다. 하지만 냉장고를 열어 달걀을 꺼내려는 순간 꽉 채워진 신선한 식재료를 보고 깜짝 놀랐다. 채소부터 고기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이걸 언제 이렇게 채운 거지? 지헌 씨가 누굴 시킨 건가?’ 김소정은 라면을 다시 제자리에 넣고 다른 식재료들을 골라 꺼냈다. 정지헌은 샤워를 마쳤지만 김소정은 아직 올라오지 않았다. 그는 담배 한 대를 꺼내 물고 욕실 문가에 기대어 조용히 연기를 내뿜었다. 잠시 후, 천천히 다가와 탁자 위의 종이를 집어 들었다. 짧은 글귀를 차가운 눈빛으로 응시하며 이미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김소정은 두 개의 냄비를 동시에 사용해 네 가지 요리를 준비했다.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았고 그녀는 완성된 요리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방에 들어섰을 때 정지헌은 창밖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김소정은 담배 냄새를 좋아하지 않았고 임신 중인 그녀에게는 더더욱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남자에게 담배를 끊으라는 말은 차마 할 수도, 할 용기도 없었다. 정지헌은 담배를 끝까지 태우고 재떨이에 비벼 끌 때까지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제야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실지 몰라서 그냥 이것저것 만들어봤어요. 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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