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18장

“지헌아, 내가 누굴 봤게?” “누구?” 전혀 궁금해하는 것 같지 않은 정지헌의 말투에 고서준은 불만인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어째 반응이 영 별로다?” “심심하냐? 끊어.” “잠깐, 잠깐! 나 네 와이프 봤다? 우번시에 있는 한식당에서 남자들이랑 같이 술 마시고 있었어.” 고서준은 정지헌이 행여 전화를 끊을까 봐 서둘러 말을 마쳤다. 그런데 말을 마치고 한참이 지났는데 전화기 너머가 이상하게 조용했다. 이건 정지헌 답지 않은 반응이었다. 그래서 고서준은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정지헌?” “듣고 있어.” “내가 알아봤는데 네 와이프가 남자들이랑 술 마신 거 다 공사장에 들어가고 싶어서래. 쯧, 남자들 중에 아는 얼굴이 몇몇 있었는데 더럽게 놀기로 소문난 것들이야. 네 와이프 잘 못 걸려도 단단히 잘 못 걸렸어. 지헌아, 차라리 그냥 내가 대신 얘기해 줄까? 네가 바로 그 새로 부임한 대표라고? 그럼 그 인간들이 아닌 너한테 잘 보이려고 들지 않겠냐?”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정지헌은 이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저녁 10시 반. 김소정과 강다은이 식당에서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김소정의 윗옷은 잔뜩 젖어 있었는데 그건 아까 분노한 남자가 술을 그녀에게 퍼부었기 때문이다. 강다은은 씩씩대며 화를 냈다. “뭐 저런 인간들이 다 있어?! 하나같이 인간 탈을 쓴 쓰레기들이잖아! 아빠도 진짜, 이번에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또 저런 것들을!” “됐어. 너희 아빠도 설마 저런 사람들일 줄 모르셨겠지. 평소에는 멀쩡한 인간들처럼 행동했을 테니까.” 말은 이렇게 했지만 김소정의 얼굴은 상당히 어두웠다. 공사장 한번 들어가는 게 이렇게 어려운 줄은 몰랐다. 김소정은 자신의 복부를 쓰다듬으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3개월밖에 시간이 없는데 이제 어떡하지...?’ “소정아, 너 괜찮아?” 강다은이 걱정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응, 괜찮아.” 김소정이 웃으며 말했다. “늦었으니까 이만 들어가 봐. 부모님 걱정하시겠다.” “미안해... 또 일이 이렇게 될 줄은...” 강다은은 이 상황이 몹시도 미안했다. “네가 왜 미안해. 나 도와주려고 그랬던 건데.” 김소정은 곧 울 것 같은 친구의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으며 말했다. “난 정말 괜찮아. 다른 방법 생각해보면 되니까 넌 이만 집으로 가.” 강다은은 김소정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너도 조심해서 들어가.” “응.” 김소정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은 무척이나 어두웠고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바로 불부터 켰다. 그리고 불을 켠 순간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정지헌은 검은색 윗옷과 검은색 바지를 입고 얼굴마저 잔뜩 어두워진 채로 마치 저승사자처럼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김소정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뭔 어둠의 자식도 아니고 왜 저렇게 무섭게 앉아 있는 거야?’ 그녀는 가슴을 진정시킨 후 정지헌을 무시하고 위층으로 향했다. “이리 와.” 정지헌이 그녀를 불렀다. 김소정은 마음 같아서는 못 들은 척하고 올라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녀에게는 그럴 배짱이 없었다. 도대체 누구 때문에 정지헌의 심기가 뒤틀린 건지는 몰라도 지금은 괜히 건드려봤자 좋을 거 하나 없기에 순순히 말을 들어야만 했다. 김소정은 발걸음을 돌려 쭈뼛쭈뼛 정지헌의 쪽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독한 알코올 향이 코를 찔렀다. 김소정은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주시하며 금방이라도 폭발할듯한 그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왜 불렀어요?” 정지헌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너, 남자들이랑 술 마시다 왔어?” “아니요.” 김소정은 별다른 생각 없이 일단 부인했다. 이에 정지헌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갑게 웃었다. 그 모습에 움찔한 김소정이 말을 덧붙이려는데 정지헌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이 정지헌의 아내가 돼서 그딴 인간들 술 상대를 해주고 있어? 네 눈에는 내가 아주 우습게 보이지?” 추궁하거나 화를 내는 말투는 아니었지만 내용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김소정은 두려움에 목소리를 덜덜 떨었다. “수, 술 상대 같은 거 안 했어요. 저는 그저...” “감히 또 거짓말을 해?” 정지헌은 김소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를 소파에 밀어버리고 움직이지 못하게 팔을 꽉 잡았다. 김소정은 소파에 밀쳐진 순간 머리가 핑하고 돌며 금방이라도 토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정지헌은 윗옷이 다 젖어 속옷이 그대로 드러난 그녀를 경멸의 눈길로 바라보며 혀를 찼다. 김소정은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가 그의 시선이 자신의 가슴 쪽으로 향한 것을 보고는 서둘러 두 손으로 가슴에 가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지금 어딜 보는 거예요?!” 정지헌은 그녀의 행동에 가소로운 듯 피식 웃었다. “다른 남자들이랑은 실컷 놀았으면서 정작 남편 앞에서는 내숭을 떨어?” “내숭은 무슨...! 내가 다른 남자들이랑 노는 걸 봤어요? 대체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빨리 비켜요!” 김소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고자 버둥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정지헌을 더 자극하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정지헌은 눈가가 빨개진 채로 그녀를 향해 무섭게 웃었다. “그렇게 남자랑 노는 게 좋으면 내가 상대해줄게.” 김소정은 자신의 위로 그의 몸이 겹쳐오자 두려움에 큰소리로 외쳤다. “저리 안 비켜요?! 이거 놓으라고! 정지헌!” 그때 발버둥 치던 그녀의 몸에서 뭔가가 떨어지고 그걸 발견한 정지헌이 움직임을 멈췄다. “저건 뭐야?” 김소정은 바닥에 떨어진 임신 진단서를 보더니 얼굴이 확 굳어졌다. 그녀는 정지헌이 그걸 주우려고 하자 저도 모르게 탁자 위에 있던 컵을 그에게 던져버렸다. 정지헌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깜짝 놀란 듯 빠르게 피하고는 김소정이 긴장한 얼굴로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손에 넣자 금세 다시 무서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내가 보면 안 되는 물건인가 보지?” 정지헌은 말을 하며 억지로 그녀의 손에서 진단서를 빼앗으려고 했다. “안 돼!”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