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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내로남불

성영준은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더더욱 용기가 생긴 나는 얇은 팔을 들어 목을 감싼 뒤에 더 가까이 붙었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은 순간 나는 이 세상 남녀들이 왜 그렇게 스킨쉽에 환장하는지를 드디어 깨달았다. 이성과 가까이 닿게 되면 심장이 빠르게 뛰고 호흡이 가빠지며 머리부터 온몸에 전기가 흐르듯 찌릿하고 몸이 떨렸다. 그저 키스 한 번에 이렇다면, 더 한 것은…. 내가 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성지태는 빠르게 다가와 서슬 퍼런 얼굴로 호통을 쳤다. “소지안, 체면 같은 건 없는 거야? 나한테 보복하겠다고 사람들 보는 앞에서 삼촌한테 이런 실례를 하다니. 삼촌이 어디 네가 건드릴 수 있는 분이야? 너 언제부터 이렇게 뻔뻔한 애가 된 거야? 너 어디 제대로….” 혼나 보겠느냐고 하려던 듯싶었다. 하지만 그 뒤의 말이 갑자기 개미만 하게 작아지기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가 때마침 성영준이 성지태를 쳐다보며 경고 어린 눈으로 보는 것을 발견했다. ‘히히, 쌤통이다.’ 성지태가 아무리 거만하고 오만하게 군다고 해도 성영준의 앞에서는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온 서경시에서 성씨 가문 어르신에게는 밉보여도 염라라 불리는 성영준에게 밉보이면 안 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 염라가 뒷배로 있는데 두려울 것 하나 없었던 나는 눈부터 흘겨대며 성지태를 향해 썩소를 날렸다. “그래그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키스하면 수치심도 없이 뻔뻔하게 구는 거고 네가 좋아하는 여자랑 키스하는 건 정의 구현이고 정정당당한 일이구나? 내로남불이 따로 없네.” “이 미친….” 성지태는 주먹이 다 달달 떨렸다. 하지만 나를 어떻게 하지는 못하고 그저 이만 꽉 깨물었다. “삼촌 때문에 내가 오늘은 너 봐주는 줄 알아. 민아야, 가자. 잘하던 데이트만 망쳤네….” 성지태는 임유민을 끌고 투덜대며 떠나갔다. 나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난 생에, 성지태가 나는 건드리지도 않으면서 밖에서는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닌 탓에 나는 완전히 정신이 무너졌었다. 우울증을 앓는 동시에 심각한 거식증도 함께 앓는 바람에 165에 35킬로가 겨우 나가는 몸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나를 보는 사람마다 동정했지만 성지태는 미동도 없었다. 그는 우리 집 재산을 뺏지도 않았고 내 가족들을 모함하지도 않았지만 반복적인 정신적 피해는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괴로웠다. 그와 결혼한 15년 동안 나는 노력도 해보고 쟁취도 해보고 성지태를 잊어도 보고 나를 놓아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매번 조금이라도 효과를 볼까 싶을 때면 성지태는 다시금 나타났었다. 사람들 앞에서 성지태는 좋은 남편 행세를 했지만 뒤로는 나에게 죽기보다 괴로운 삶을 살게 해줄 거라고 했었다. 내가 정신병동에 입원했을 때에도 그는 가장 좋은 의사를 찾아 나를 치료하는 동시에, 나에게 다시금 상처를 주었었다. 그리하여 나는 치료와 상처 사이의 무한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다시 회귀한 지금 나는 성지태를 무시하고, 즐거운 일만 하면서 나의 인생을 즐길 생각이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마구 먹기 시작했다. 성영중이 내내 젓가락을 들지 않은 것을 본 나는 눈을 깜빡였다. “영준 오빠, 왜 안 먹어요?”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성영준은 훠궈를 좋아했다. 조용히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데, 나를 보는 성영준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눈빛보다도 더 차가운 목소리로 나를 경고했다. “방금 전 같은 일은 딱 한 번 뿐이야. 다음은 없어. 또 그러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화가 난 모양이었다. 내가 성영준을 이용해 성지태를 혼낸 것을 말이다. “알았어요, 알았어.” 젓가락을 내려놓은 나는 빠르게 성영준이 좋아하는 소스를 만들어 성영준의 앞으로 밀었다. 그리고 소고기는… 미디움 웰던을 좋아했다. “자, 오빠. 화내지 말고 입맛에 맞는지 봐요.” 지금의 나는 조금 우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성영준을 좋아한다는 말은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영준이 출장을 간 사흘 동안 나는 내 인맥을 통해 그의 취향들을 알아냈다. 예를 들면 붉은색을 좀 더 좋아한다든가 하는 것들을 말이다. 나는 성영준을 위해 ‘붉은색’이 들어간 모든 옷을 입을 수 있고 긴 머리를 좋아한대서 이미 머리를 기르려고 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마음을 나는 숨김없이 전부 드러내고 있었다. 나를 흘깃 쳐다본 성영준은 나름 나의 체면을 살려주었다. 우아하고 시크하게 그릇 안에 담긴 소고기를 집은 그는 한 입 먹었다. 히히, 이건 나를 용서하겠다는 뜻이었다. 역시 강하게 나가는 것보다는 숙이고 들어가는 게 더 잘 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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