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축하해줄 거야
이른 아침, 나는 아래층에서 들려온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성지태에 아래층에서 소리를 지르는 소리였다.
“소지안, 몰래 엿듣고 있는 거 다 알아. 대체 내가 왜 좋다는 거야, 말해. 말만 하면 내가 바로 고칠게!”
이 대화는 수능 시험 전의 대화였었다.
하지만 이미 정신병동에서 이미 죽었을 텐데, 왜 다시 이날로 돌아온 거지?
나는 얼른 침대에서 내려왔다.
거울 속의 젊고 활기 가득한 나를 본 순간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회귀라니!
나는 수능 전, 성지태가 파혼을 하러 온 날로 회귀했다!
너무 잘 됐다!
나는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이 녀석, 저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야? 꼭 이렇게 수능 전날에 우리 지안이 자극해야겠어? 무슨 할 말 있으면 수능 끝난 다음에 할 수는 없어?”
“아주머니, 아주머니네 애만 수능 봐요? 우리 민아도 수능이에요. 사람이 그렇게 이기적일 수는 없어요. 왜 소지안이 수능 준비하는데 우리 민아를 희생해야 해요?”
성지태가 눈을 흘기며 말을 끝내자마자 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오는 건 성지태의 부모님이었다.
“너 이 불효막심한 새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성지태의 아버지, 성태한은 손에 골프채를 쥐고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성지태를 쫓아다니며 두들겨 팼다.
성지태는 자신의 아버지를 노려보고 으르렁댔다.
“절 때려죽인다고 해도 전 소지안 안 좋아해요. 저랑 쟨 어렸을 때 약혼한 거라 서로 아무런 감정도 없잖아요. 왜 파혼하면 안 되는 건데요?”
성지태의 어머니도 나서려고 하자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아저씨, 아주머니, 얼른 멈추세요!”
저 매질이 바로 성지태가 나를 미워하게 된 시작이었다. 이왕 하느님이 나에게 회귀의 기회를 주었으니 당연히 새로운 선택을 할 생각이었다.
나는 먼저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 생일 축하해요. 사랑해요.”
그랬다, 오늘은 엄마의 생일이었다.
다시 회귀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엄마를 보니 가슴이 시큰해져 쪽하고 엄마에게 입을 맞췄다.
“딸 믿죠?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네?”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환하게 웃으며 등을 돌려 성지태의 부모님을 쳐다봤다.
“두 분, 저랑 따로 얘기할래요?”
말을 마친 나는 대문 밖으로 나갔다.
그러는 동안 성지태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이러한 변화에 성지태의 부모님은 크게 놀랐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온 그들에게서 나는 익숙한 죄책감을 발견했다.
나와 성지태가 어렸을 때 한 약혼은 다 아버지가 물에 빠진 성태한을 구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성태한은 은혜를 갚기 위해 이따금씩 우리 집으로 찾아왔고, 그러다 나와 송지태는 점차 친해졌고 양가 부모는 우리의 사이가 나쁘지 않아 보였기에 약혼을 시키자는 약속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번의 빚으로 인해, 지난 생에서 내가 성지태와 결혼을 한 뒤 그들은 각종 방식으로 성지태와 내가 잠자리를 하게 강요했었다.
가끔은 한약들도 잔뜩 준비를 했었지만 송지태는 단 한 번도 마신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억지로 마시게 한 뒤 차가운 눈으로 내가 괴로워하는 걸 지켜봤다. 제발 잠자리를 하자고 애원을 해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었다.
전생의 운명을 바꾸려면 우선 성지태의 부모님부터 위로해야 했다.
“아저씨, 아주머니. 저 내일 수능이에요. 성지태 성격 잘 아시잖아요. 강요하면 할수록 반항만 할 거예요. 아니면 마음 놓고 시험 준비할 수 있게 일단은 파혼 동의하시는 게 어때요?”
나의 말에 두 분은 화들짝 놀랐다.
소씨 가문의 공주님은 성지태에 단단히 빠졌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파혼이 아니라, 성지태가 다른 여자랑 조금만 가까이 가기만 해도 울고불고하면서 난리를 부렸었는데 지금은 이런 말을 하다니.
“지안아….”
“아주머니, 일단 들어줘요.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그래.”
아주머니는 내가 마음먹을 것을 보자 이내 몸을 돌려 자신의 남편을 쳐다봤다.
한숨을 쉰 성태한은 이내 성지태를 노려봤다.
“뭘 멍하니 있는 것이냐? 파혼하겠다며? 가서 준비하지 않고 뭐 하는 거야?”
성지태는 눈에 띄게 얼어붙었다.
내 옆을 지나갈 때 그는 나를 노려보며 경고했다.
“소지안,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는데 똑똑히 들어.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난 민아가 아니면 절대로 결혼 안 할 거야.”
냉랭하게 떠나는 성지태의 뒷모습을 보던 나는 지난 생의 나는 대체 머리에 뭐가 든 건지 한 번 열어보고 싶어졌다.
그의 온 마음에는 온통 임유민뿐인데 나는 성지태에게 임유민의 실체를 보여주려고 했다.
하, 임유민이 바람둥이든, 당시에 성지태를 구해준 게 다 계략이었든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나는 심지어 성지태가 반항을 위해 빈 시험지를 내며 멍청하게 수능을 포기한 뒤에도 마치 짜증 나는 껌딱지처럼 재수하는 그의 곁에서 그를 위해 바삐 돌아쳤었다.
드디어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기에 결혼에 동의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사실은 성지태의 어머니가 자신의 목숨을 빌미로 협박을 하는 바람에 성지태는 하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결혼한 뒤 성지태는 겉으로는 좋은 사람인 척했지만, 뒤에서는 나의 앞에서 다른 여자와 붙어먹었었다.
나는 그때마다 늘 멍청하게 한번 감동시켰으니 두 번, 세 번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었다. 그것이 나를 심연으로 밀어 넣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끝내 나는 중증 우울증으로 인해 병원에서 자살했다….
떠오르는 과거의 일들에 나는 다시 되돌아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엄마가 케이크를 사기 위해 잠깐 나간 틈을 타 밖에 나가 한참을 쇼핑한 뒤에야 나는 내가 회귀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튿날, 수능에 참여해야 하므로 엄마의 생일은 가족들끼리 단란하게 보내기로 했다.
첫날 수능이 끝나고, 임유민이 시험장 밖에서 나를 붙잡았다.
그녀는 손가락에서 반짝이는 다이아 반지를 자랑하며 말했다.
“아니, 나는 안 받으려고 했는데 지태가 굳이 사주겠다고 하는 거야. 정말 못 말려. 소지안,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
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 축하해줄게.”
나는 그녀를 스쳐 지나가려 했다.
“소지안, 너 진짜 뻔뻔하다. 우리 두 가문에서는 파혼을 준비 중인데 왜 자꾸 우리 민아를 괴롭히는 거야?”
성지태는 그대로 달려들어 나를 밀쳤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에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성지태의 눈은 장식인 건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여긴 분명 나의 시험장인데 내가 임유민을 괴롭힌다고 하다니.
하지만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성지태는 이미 임유민을 데리고 떠났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성지태에게 방금 전에는 오해였다고 설명할 겸 그와 진지하게 선을 그을 생각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무려 차단을 당한 상태였다!
되었다, 어차피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든 성지태는 믿지 않을 테니 실제 행동으로 증명해야겠다.
눈 깜짝할 사이 수능 시험이 끝났다.
나는 아주 큰 일을 할 예정이었다. 사전에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시골로 내려가 외할머니랑 며칠 있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골로 가기도 전에 성한 그룹의 입구에 먼저 오게 됐다.
성태한을 만나러 온 것도 아니었고 성지태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성영준이었다.
지난 생, 정신병원에서 자살했을 때 나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이 바로 성영준이었고 성지태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나를 성씨 가문의 선상에 나를 묻었다.
이미 출가한 딸은 친정 가문에 묻힐 수는 없었고, 시댁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혼령은 떠돌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 지역의 미신이었다.
성지태는 곧 죽어도 나를 아내로 인정하지 않았고 끝내 나는 성영준의 아내로 매장이 되었었다. 그 때문에 성영준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지금에야 알았지만 성영준이 계속 정신병원에 나타났던 건 성지태의 당부때문이 아니라 나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좋은 남자를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었음에도 나는 모든 시간을 성지태에게 낭비했다.
다시 돌아온 이번 생에서 나는 용감히 성영준에게 고백할 생각이었다.
6월은 날씨는 어린아이 변죽마냥 방금전까지만 해도 햇살이 쨍쨍하던 하늘에 순식간에 먹구름이 끼었다.
소나기가 예고도 없이 내렸다.
그 속에는 우박도 있었다.
조금 슬픈 사실은 나에게 우산이 없다는 것이다. 성영준을 만나기 위해 특별히 입었던 붉은색 긴 원피스는 빠르게 젖어버렸다.
비바람 속에서 굴곡진 몸매가 은근하게 드러났다.
성영준을 만나지 못할 거란 생각에 슬퍼하고 있을 때 머리 위로 커다란 검은 우산이 드리워지며 비를 피할 구석을 만들어주었다.
“성지태는 여기 없어.”
이 목소리는, 성영준이었다! 늘 그렇듯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에 나는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