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차라리 소정운이 유미나보다 훨씬 나았다.
눈이 어떻게 된 건가?
아님 무슨 약이라도 잘못 먹은 건가?
“강수지, 당장 사과해!”
유미나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개처럼 짖어 봐!”
강수지의 말투는 단호했다.
“절대로 싫어.”
사과를 하라는 건 참을 수 있었지만 개처럼 짖으라는 건 절대로 해줄 수 없었다.
유미나는 곧바로 이변섭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봐봐요, 싫다잖아요….”
“강수지, 마지막 기회를 주지.”
고개를 든 강수지는 강압적인 이변섭과 시선이 마주쳤다.
“싫, 어, 요!”
이변섭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자신의 말을 어기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괜히 매를 벌지 마.”
이변섭은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턱을 잡았다.
“개처럼 짖는 게 쉬울까, 아니면 세 대 맞는 게 나을까?”
“차라리 맞도록 하죠.”
이변섭은 코웃음을 쳤다.
“그래! 채찍 가져 와!”
집사는 양손으로 내어주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강수지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뭐가 됐든, 전 그래도 당신의 법적인 아니에요. 이변섭 씨, 유미나가 대체 뭐길래, 유미나를 위해 이렇게 저를 모욕하는 거죠?”
“이 사람은 내가 갖은 심혈을 기울여 찾은 사람이자, 내 남은 생의 아내지. 알겠어?”
그의 말투는 냉랭했다.
“네가 이 사람과 비교가 될 자격이나 있는 것 같아?”
알고 보니 그가 사랑했던 사람은 유미나였다.
조금 놀라웠지만 그 사실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강수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채찍질을 기ㅏ리고 있었다.
세 번이라면 아무리 아파도 버틸 수는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고집이 가득한 얼굴을 본 이변섭은 들고 있는 채찍을 꽉 움켜쥔 채 높이 들었다. 손등에는 핏줄이 돋아났다.
예상했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강수지가 눈을 뜨자 떠나가는 이변섭의 뒷모습만 보였다.
“너를 때려봤자, 내 손만 더러워지겠지.”
그는 채찍을 내던졌다.
“집사님, 집사님이 대신 집행하도록 하세요.”
“네, 대표님.”
유미나는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변섭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는 더 소란을 피우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름의 눈치와 선은 있었다.
“대표님, 저랑 결혼하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녀는 일부러 서운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왜 강수지가 당신의 아내인 거예요….”
“저건 꼭두각시일 뿐입니다.”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이변섭은 짜증이 일었지만, 유미나가 그날 밤의 여자라는 것이 떠올라 화를 내지는 않았다.
“강수지와 결혼을 한 건 임시적인 겁니다. 당시에 당신을 찾지 못했고, 또 누군가는 제 아내 자리를 차지를 해야 했으니 저 여자를 선택한 거죠.”
유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던 거구나.
깜짝 놀랐다. 거짓말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들통난 줄 알았다.
유미나가 다시 물었다.
“그럼 여전히 저와 했던 약속을 지키겠다는 거죠? 맞죠”
“네, 모든 일 처리가 다 끝나면 당신과 결혼할 겁니다.”
“그날이 너무 기대되네요!”
유미나는 또다시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강수지는 그 굵은 채찍을 쳐다봤다.
“집사님, 시작하시죠.”
“사모님….”
“집사님도 난감하실 거 알아요.”
집사는 계단 입구 쪽을 쳐다봤다. 이변섭이 멀리 떠나고 난 것을 확인한 다음, 이를 악물고 채찍을 들어 세게 내리쳤다.
“짝!”
커다란 소리가 제경채에 메아리쳤다.
이변섭은 우아하게 아침 식사를 이어가며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유미나는 그 소리를 듣자 속이 다 시원했다.
강수지, 내가 있는 한 영원히 다시 일어날 생각 하지 마.
“짝!”
또 한 번 소리가 울렸다.
일을 하던 다른 고용인들은 몸을 흠칫 떨며 조용히 자신의 일만 했다.
그리고 당사자인 강수지는 의아한 눈으로 집사를 쳐다봤다.
“집사님….”
집사는 두 번이나 그녀는 스치지도 않은 채 바닥만 내리쳤다.
“쉿, 사모님. 조용히 하세요, 들킬지도 몰라요.”
집사가 말했다.
“사모님은 좋은 분이세요. 저희 고용인들에게도 친절하신 분이시잖아요. 도무지 손을 들 수가 없었어요.”
“만약 이변섭 씨가 알아챈다면 큰일이에요!”
“압니다. 그러니 이 마지막 한 대는,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강수지는 그의 말뜻을 알아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몸에 아무런 흔적도 없다면 가짜인 티가 너무 많이 났다.
제대로 한 대 맞자 등이 화끈거렸고 피와 살이 터져나갔다.
강수지는 감격하며 집사를 쳐다봤다. 이 세상이 그녀에게 얼마나 나쁘게 대해도 여전히 한 줄기의 감동은 그녀를 따스하게 비추고 있었다
“대표님, 세 대 모두 집행했습니다.”
집사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고했다.
이변섭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강수는 등을 살짝 굽힌 채 옆에 섰다.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있으면 상처가 더욱더 아팠다.
강수지는 속으로, 한 대만 맞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폐품 줍는 데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 같았다
“대표님, 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유미나가 갑자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열었다.
“부탁드려도 될까요?”
“말해요.”
“이 씨 그룹에서 연예기획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이변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씨 그룹은 연예계에 발을 들일 생각입니다.”
“그럼, 저 좀 키우주시면 안 될까요?”
유미나가 말했다.
“여기저기 이력서 넣고 면접을 보는데 이것저것 따지고 트집만 잡더라고요. 이변섭 씨가 도와주면 훨씬 쉬울 거예요!”
“연예계에 진입해서 연기하게요?”
유미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 꿈이거든요! 게다가 앞으로는 이변섭 씨가 있으니까 아무도 절 괴롭히지 못하고, 저한테 뭐라고 하지도 못하겠죠!”
이변섭이 대답했다.
“그래요.”
이건 그녀를 향한 자신의 보상이었다.
어쩌면 진지하게 일을 하는 유미나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다시금 그날 밤에 느꼈던 기분을 느끼게 할지도 몰랐다.
이변섭은 강수지를 흘깃 쳐다봤다.
“너, 계속 회사로 가서 잡일 해.”
“알겠어요.”
사람과 사람의 차이는 정말 너무나도 컸다.
강수지가 힘겹게 폐품을 주워봤자 몇천 원 버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유미나는 손쉽게 연예계의 인맥들을 손에 넣었다. 연예인이 얼마나 돈 벌기 쉬운가! 게다가 이변섭이 그녀의 뒷배가 되어 키워준다면 더 쉬웠다!
이변섭이 떠나자 유미나는 달콤한 미소를 지우고 본모습을 드러냈다.
“개처럼 짖기 싫어? 괜찮아.”
그녀가 말했다.
“언젠간 내 앞에서 개처럼 짖게 될 거야.”
강수지는 이씨 그룹으로 출근해야 해 유미나에게는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늦었다간 이변섭이 또 화를 낼지도 몰랐다.
“감히 날 무시해? 하하, 강수지, 거기 서!”
유미나는 강수지의 앞을 가로막았다.
“충고하는데, 눈치껏 굴면서 이 대표님이랑 하루빨리 이혼하는 게 좋을 거야!”
“이혼할지 말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쳇, 넌 그냥 이 대표님 사모님 자리를 떠나기 싫어서 버티고 있는 거겠지.”
강수지는 코웃음을 쳤다.
“어디 재주 있으면 이변섭이 당장 나랑 이혼할 수 있게 만들어. 나한테 뭐라고 해 봤자 뭐가 달라져?”
“너…. 그래, 좋아.”
유미나는 이를 악물었다.
“금방 나한테 와서 빌게 될 거야!”
유미나의 두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강수지는 유미나가 무슨 짓을 할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유미나에게 밉보이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변섭에게 밉보이는 것이야말로 제일 큰 문제였다.
게다가, 강수지는 유미나는 무슨 짓을 저지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강수지는 이씨 그룹까지 걸어가며 폐품을 주웠다.
오늘의 수확은 비교적 적었지만 그래도 5천 원은 벌 수 있었다.
돈을 주머니에 넣고 등을 돌리자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그건 이변섭보다 더 그녀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강수지는 곧바로 도망치려 했다.
“수지야, 계속 널 따라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