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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예고 없이 열린 욕실 문. 그 앞에 원유희가 앉아있다가 온몸을 덜덜 떨며 천천히 일어났다. 김신걸의 차가운 눈빛에 원유희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내 집에서 왜 마음대로 문을 잠가? 누가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어?” 원유희는 반박할 힘도 없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 남월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김신걸의 소유물이며 아무렇게나 쓰고 버려도 괜찮은 노리개이다. “그…… 좀 무서워서.” 원유희가 고개를 숙였다. 김신걸은 원유희의 손에 쥐어진 핸드폰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의 시선을 보고 그녀는 핸드폰을 꼭 쥐며 뒤로 숨겼다. 그녀는 김신걸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들이닥칠 줄 꿈에도 몰랐고,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내가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랬지!” 김신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욕실에 울려 펴졌고, 그가 원유희의 핸드폰을 빠르게 낚아챘다. 핸드폰이 김신걸의 손에 들어가자 그녀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대로 들켜버리면 끝이야…….’ 김신걸이 핸드폰을 들여다보자 원유희가 다급하게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 내가 악몽을 꿔서 고모한테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네가 알면 화날까 봐 안 했어.” 그녀는 조금 전,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통화기록을 삭제한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김신걸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붙이며 “그럼 한번 전화해 봐.”라고 말했다. 원유희는 그가 주는 핸드폰을 빤히 보며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널 도망치도록 도와줬는데 내가 그 여자를 가만히 둘 것 같아?” “아니, 아니야! 내가 여권만 가져다 달라고 했어. 고모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고모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네가 싫다면 앞으로 절대 연락하지 않을게.” 고모를 위해서라도 절대로 연락하면 안 되는데……. 그러자 김신걸이 그녀의 얼굴을 움켜쥐고 억지로 핸드폰을 갖다 댔다. “내 인내심은 한계가 있어. 기억해.” “아…… 알겠어.” 원유희는 눈물을 꾹 참았다. 그 순간 ‘띠리링-’ 느닷없는 벨소리가 욕실에 메아리쳤다. 원유희는 혹시 아이들에게 온 연락일까 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도대체 누가 하필 지금 전화를 하는 거야? 제발 영희 이모나 아이들이 아니길…….’ 원유희의 불안한 눈빛을 보고 김신걸이 웃었다. “너 왜 떨어?” 그의 눈빛은 마치 사냥감을 가지고 노는 맹수 같았다. “아니, 그런 거 아냐.” 원유희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김신걸은 그녀의 어깨를 잡아 욕실 거울로 힘껏 밀었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땅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으악!” 원유희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다. 역시 힘으로는 그에게 대적할 수 없겠다. “네 분수를 좀 지키고 살아!” 김신걸의 차가운 눈빛이 핸드폰 화면으로 향했다. [발신자표시금지] 그는 핸드폰 통화 버튼을 눌러 스피커 폰으로 돌렸다. “유희?” 핸드폰 너머 익숙한 남자 목소리에 원유희는 마음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옛 남자친구의 목소리였다. ‘근데 걔가 나한테 전화를 왜 했지? 영희 이모나 아이들이 아닌 것만으로도 참 다행이야.’ “유희야 오랜만이네, 잘 지내니? 너랑 헤어진 후에 자꾸 네 생각이 나. 너를 잊을 수 없어.”하동우가 말했다. 원유희는 무의식적으로 김신걸의 눈치를 살폈다. “유희야 너 아직 나 잊지 못하고 있는 거지? 맞지? 핸드폰 번호도 안 바꾸고…… 너 2년 전에 휴학을 했다가 이번에 귀국했다던데, 나도 귀국했거든. 우리 만나서 얘기 좀 할까?” 하동우가 물었다. “아니. 괜찮아.” “유희야 너 혹시 나 말고 다른 남자가 생긴 거야? 잘 생각해 봐. 나 말고 더 좋은 남자는 없어.” “나……” 원유희가 거절의 말을 하려는데 김신걸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원유희는 김신걸의 눈치를 보며 “전에 만나던 남자친구, 예전에 헤어졌어. 휴학했다는 건 내가 실연의 상처가 너무 커서…… 지금은 깨끗하게 정리했어!”그녀가 말했다.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해?” 원유희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녀에게 남은 건 핸드폰뿐이다. 그게 그의 손에 들어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원유희에게 큰 고통이었다. “그 남자가 귀국했다며, 한 번 봐.” “왜?” “내가 지금 너랑 상의하는 거로 보여?” 원유희는 김신걸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원유희에게 좋은 패를 내어줄 사람이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그녀는 김신걸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기에……. * 하동우는 클럽에서 원유희를 기다렸다.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하동우뿐 아니라, VIP석에 앉아있던 검은 그림자들도 그녀에게 시선이 꽂혔다. “유희야 여기!” 하동우가 말했다. 하동우를 발견한 원유희는 그가 앉아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김신걸의 동의를 얻어 밖으로 나왔지만, 그녀는 여전히 가시방석에 앉은 듯 마음이 불편했다. 왜냐하면 김신걸이 무슨 꿍꿍이로 그녀를 이곳으로 보낸 건지 알 수 없었고, 김신걸은 무엇을 하든 상상 그 이상으로 일을 벌이는 사람이였기 때문이다. “유희야, 오랜만이야. 이렇게 보니 정말 기쁘다.” 하동우는 상기된 표정으로 원유희를 바라보았다. 원유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동우는 그녀가 해외에 있을 때 같은 대학선배였다. 그는 원유희에게 첫눈에 반해 두 달 가까이 그녀를 쫓아다녔고, 같은 제성 사람이라는 공통점으로 빠르게 친해지고 사귀게 됐다. 하지만 원유희를 향한 그의 사랑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귄 지 반년도 채 안 됐을 때, 그녀는 그가 다른 여자와 침대에서 뒹구는 장면을 두 눈으로 보게 되었다. “너 술 못하지? 여기 주스 있다!” 하동우는 상냥한 남자친구처럼 행동했다. “왜 갑자기 보자고 한 거야?”원유희는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차갑게 말했다. “유희야, 지금 네 옆에 누가 있든 난 상관 안 해. 난 한 번도 너를 잊은 적 없어.” “…….” “정말 후회해. 앞으로 그런 실수 없을 거야. 장담해.” “내 성격 알잖아. 널 받아줄 생각 없어. 한 번 바람피운 놈은 또 그래. 절대 안 바뀌어.” “정말 그렇다면 왜 여기 나온 거야? 나한테 감정이 있으니까 나온 거 아니야?” 하동우가 원유희의 손을 잡으려고 하자 원유희가 재빠르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 ‘역시 남자들은 다 똑같아. 머릿속에 그 생각뿐이지.’ 그녀는 지금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김신걸의 뜻 때문에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원유희를 보며 반갑게 다가왔다. “어? 너 원유희 아니야? 그런 옷을 입고 있으니까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네!”밀가루를 뒤집어쓴 것 같은 하얀 피부의 남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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