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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장미가 들이닥친 순간 그림자 하나가 그녀를 덮쳐왔고 낙청연은 곧바로 약그릇을 든 채로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손에 든 해독 탕약을 지키려 했다. 장미는 약그릇을 노리고 간 것이라 낙청연이 불쑥 몸을 일으킬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래서 낙청연이 일어서는 순간 낙청연의 머리와 장미의 턱이 거세게 부딪쳤고, 낙청연은 체격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부딪쳐서 날아간 건 당연히도 장미였다. 장미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고는 입을 가렸는데 손이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손바닥을 펴보니 치아 두 개가 빠져나갔다. “이, 이런!” 장미는 화난 얼굴로 낙청연을 손가락질했다. 혀를 씹는 바람에 피가 멈추지 않았고 말을 제대로 할 수조차 없었다. 낙청연은 무덤덤한 얼굴로 장미를 훑어보더니 몸을 숙이고 계속해 지초에게 약을 먹였다. 눈물을 뚝뚝 떨구는 지초를 보니 가슴이 아팠다. “지초야, 얼른. 아파도 다 먹어야 한다.” 장미가 왔으니 이제 곧 그 인간도 오겠지. 낙청연은 그들과 싸우는 건 두렵지 않았지만 미처 먹지 못한 해독 탕약이 그들에 의해 쏟아질까 무서웠다. 지초를 위해 해독하는 건 한시가 급한 일이었다. 지초 역시 왕비가 자신을 위해 약을 달이는 게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알았고 이로 인해 어쩌면 수많은 질타와 징벌을 받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약은 이미 다 달여진 상태였으니 먹지 않는다면 왕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지초는 통증을 참아가면서 고개를 들어 마지막 남은 탕약을 전부 마셨다. 피와 탕약이 함께 섞여서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바로 그때 불청객이 나타났다. “장미야, 왜 그러느냐?” 낙월영은 들어오자마자 입 근처가 피범벅이 된 장미를 보았고 장미는 헐레벌떡 낙월영의 발치에 매달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둘째 아씨… 제 치아가…” 그러면서 낙청연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왕비 마마께서 다짜고짜 제 뺨을 때리셨사옵니다! 둘째 아씨, 둘째 아씨께서 말씀 좀 해주세요.” 낙월영이 막 입을 열려던 참에 낙청연이 몸을 일으키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장미를 쏘아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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