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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촤악. 차가운 물이 얼굴을 향해 날아왔고 낙청연은 힘겹게 눈꺼풀을 들었다. ‘난 죽었는데? 왜 아픔이 느껴지는 것이지?’ 어멈처럼 보이는 하인이 대야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화가 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울고불고 소란 피울 생각은 마시옵소서. 왕야께서는 그런 수작에 넘어가시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제 주제를 알아야지, 감히 동생을 대신해서 혼인을 치르러 하다니요? 섭정왕부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닙니다!” 등 어멈(邓嬤嬤)은 얼굴에는 노여움이 가득했다. 그녀는 원래 집으로 돌아가 늙은 어미를 모시려 했으나 염치를 모르는 왕비가 자결 시도를 하는 바람에 다시 돌아와 그녀의 시중을 들게 되었다. “승상부의 아씨로서 살 것이지 이런 추접한 일이나 벌리다니, 차라리 죽어버리지.” 머리 위로 욕설과 불평이 끊임없이 쏟아졌고 낙청연은 이 모든 게 낯설었다. 그녀의 것이 아닌 기억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어젯밤은 섭정왕과 낙월영의 혼인날이었다. 그러나 낙청원은 사랑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신부로 위장하고는 방 안에 미정향(迷情香)을 피워놓고 섭정왕의 아이를 가질 생각이었다. 그런데 부진환이 결정적인 시각에 정신을 되찾았고 화가 나서 사람들을 대여섯 명 불러들였으며 낙청연은 깨어난 뒤 굴욕을 참지 못하고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벽에 머리를 찧어 죽으려 했다. 몸의 원래 주인은 그를 미치도록 사랑했었고 그녀의 몸에서 그녀의 괴로움과 마지못한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여국(黎國)의 대제사장(大祭司)으로서 그녀는 죽을 운명이었지만 영혼이 흩어지지 않았고 천궐국(天闕國) 승상의 딸의 몸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는데 난폭한 하인이 그녀를 바닥으로 밀어서 넘어뜨렸고 그 바람에 그녀는 침대 가장자리에 머리를 찧게 되었다. 뒤이어 극심한 고통이 느껴지자 낙청연은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키면서 손을 뻗어 머리를 만져봤고 피가 흥건했다. “돼지처럼 무거운데 누가 아씨를 옮기겠습니까? 눈치 좀 챙기세요. 섭정왕부로 시집왔다고 해서 정말 안주인이라도 된 줄 아십니까?” 욕설을 퍼붓는 등 어멈의 언성이 점점 더 커졌다. 낙청연은 아픈 머리를 부여잡았고 통증과 함께 머리가 어지러웠다. 몸의 원래 주인은 정말 죽으려 작정하고 벽에 머리를 찧은 것인지 정말 너무 아팠다. 등 어멈은 그녀가 꼼짝하지 않고 있자 다시 한번 손을 들더니 그녀의 팔뚝을 세게 꼬집으며 말했다. “제 말이 들리시지 않는 것입니까?” 낙청연은 고통으로 인해 미간을 잔뜩 구기더니 고개를 들어 어멈을 혼냈다. “설령 내가 안주인이 아니더라도 너 같은 몸종이 내 몸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게다가 왕야께서 나를 내치시지 않았으니 난 명목상으로는 아직 왕비이다. 왕부의 노비 따위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이냐!” 등 어멈은 그녀의 매서운 눈빛에 순간 소름이 돋았고 두려움이 생겼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보통 집안의 딸이 이토록 유별난 짓을 벌였으면 생매장을 당했을지도 몰랐다. 그녀가 아직 살아있는 건 그녀가 승상부의 아씨이기 때문이었는데 스스로를 왕비라 칭하다니? “퉤!” 등 어멈은 두 팔을 걷어붙이며 말했다. “제가 사람이 좋아서 시중을 드는 것인데 감히 저한테 소리를 지르시다니요? 오늘 섭정왕부의 규칙을 제대로 깨닫게 해주겠습니다!” 등 어멈은 그 말을 하면서 낙청연의 어깨를 붙잡더니 그녀의 뺨을 때리려 했다. 그러나 손바닥이 얼굴에 닿기도 전에 낙청연이 그녀의 팔목을 붙잡고 사나운 눈초리로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늙어빠진 노비 따위가 나를 가르치려 들다니. 눈동자에 핏발이 서 있고 눈가가 검은빛을 띠는 걸 보니 죽을 운명이 보이는구나. 집에 크게 앓는 사람이 있을 텐데 돌아가서 그 사람을 돌보지 않고 여기서 나에게 규칙을 가르치려 들다니. 이제 3일 내로 검은 기운이 미간으로 모이게 될 것이다. 장례 치를 준비나 하거나.” 등 어멈은 그녀의 말에 안색이 급변했다. 낙청연이 어떻게 그녀의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다는 걸 안 걸까? 그녀의 밤처럼 새까맣고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자 등 어멈은 등허리가 오싹했고 낙청연에게 신기라도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음험하고 교활한 낙청연이 일부러 자신을 겁먹게 하려고 수작을 부리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저택을 나가지 못한 것도 낙청연 때문이었기에 등 어멈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퉤! 왕비야말로 곧 뒈질상이십니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팔을 휘둘러 낙청연의 뺨을 때렸다. 낙청연은 그녀의 팔목을 잡았고 어지러움을 참으면서 몸을 일으키더니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 짝! 온 힘을 다해 팔을 휘둘러서인지 등 어멈은 순간 앞이 캄캄해졌고 탁자 모서리 부분에 세게 부딪히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극심한 고통에 등 어멈은 얼굴을 사정없이 구겼고 머리는 산발이 된 채 손을 덜덜 떨면서 낙청연을 손가락질했다. “너, 너, 너! 감히 날 때려?” 낙청연은 뜻밖에도 힘이 엄청나게 셌다. “한 번이면 몰라도 계속해서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는구나. 내가 그렇게도 만만해 보이더냐?” 낙청연은 호통을 치면서 말했다. “설사 왕야께서 진짜 날 쫓아낸다고 하더라도 난 여전히 승상부의 아씨다. 너 같은 노비 따위가 나에게 손찌검을 해? 지금 당장 너를 죽이더라도 그건 모두 네가 자초한 일이다.” 낙청연은 곧바로 의자를 들었고 그녀의 행동에 등 어멈은 겁에 질린 채로 허겁지겁 방 안에서 나왔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낙청연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었나? 낙청연은 분명 겁 많은 쥐새끼처럼 설설 기던 인간이었다. 게다가 남을 대신해 혼인을 치르는 어마어마한 일을 저지르고 그날 밤 바로 발각됐다. 제 도끼에 제 발등을 찍은 멍청한 인간이 갑자기 다른 사람을 때리다니. 낙청연의 눈동자에는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등 어멈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잔인해지는 인간이었다. 낙청연이 의자를 들고 방 밖으로 그녀를 쫓아 나갔을 때 돌연 여린 몸을 가진 인영이 나타났다. 등 어멈은 얼른 그녀의 뒤로 숨으며 말했다. “둘째 아씨, 저 좀 구해주시옵소서!” “언니, 왜 이렇게 화를 내십니까?” 낙청연은 상대가 누군지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눈앞이 어질했다. “언니!” 낙월영은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얼른 언니를 방 안으로 모셔라!” 낙월영은 본래 왕야와 혼인을 치러야 했던 진짜 왕비로서 왕야가 무척 아끼는 사람이었기에 그녀의 눈 밖에 나서는 안 됐다. 등 어멈은 얼른 대답했다. “네, 네.” 낙청연은 다시 침상 위에 앉게 됐다. 머리가 무거웠고 온몸이 흠뻑 젖어있었는데 밖에서 불어오는 미풍에 그녀는 크게 재채기를 했다. 몸의 원래 주인은 세게 부딪쳐서 죽은 것이기 때문에 몸이 크게 나빠졌고 몸조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고질병이 생길지도 몰랐다. “언니, 얼른 약 드세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낙월영은 그릇을 들고 그녀에게 약을 먹이려 했다. 약이 입가에 닿자 아직도 머리가 어지러웠던 낙청연은 저도 모르게 약을 받아먹었고 한 모금 삼키자 곧바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검은색 눈동자가 순간 싸늘해졌고 낙청연은 고개를 들어 눈앞의 이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그녀는 낙청연의 서매인 낙월영이었고 어젯밤 섭정왕과 혼인을 치렀어야 할 사람이었다. 낙월영은 갑자기 눈가를 붉히며 눈물을 떨구었다. 그녀는 마음 아픈 듯이 말했다. “언니, 다음번에는 절대 이런 짓 하지 마세요. 이건 섭정왕을 기만하는 일입니다. 제가 왕야께 한참 동안 부탁해서 겨우 허락을 받아냈어요. 앞으로 언니는 섭정왕부의 왕비로 남아있을 수 있어요.” 낙청연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고 곧바로 기억을 떠올렸다. 몸의 원래 주인이 위험을 무릅쓰면서 낙월영을 대신해 시집온 것은 모두 그녀의 동생이 사주한 것이었다. 진짜 부인이 될 뻔했던 낙월영이 허락하지 않았다면 낙청연은 감히 이런 짓을 저지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낙청연은 죽기 전까지 자신의 동생이 정말로 자길 위해서 혼사를 양보해주었다고 생각했다. 낙청연은 낙월영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눈물을 머금은 요염한 눈매는 매혹적이었고 입술이 얇은 걸 보니 박명할 운명이었다. 그리고 수문(守門)에 점이 있는 걸 보니 질투가 많은 사람이었고 눈빛이 바르지 않은 것이 간교함을 숨기고 있었다. 절대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맑고 투명해 보이는 아름다운 눈을 가졌으니 사람을 속이기 쉬웠을 것이다. 낙청연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낙월영은 그 시선이 불편했다. 예전의 낙청연은 감히 고개를 들어 사람을 쳐다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니, 왜 그러십니까? 얼른 약을 드세요.” “안 먹으련다.” 낙청연이 거절했지만 낙월영은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고집부리지 마세요. 여기가 우리 집이었으면 당연히 언니 마음대로 하라 했겠지만 여기는 섭정왕부입니다. 여기서는 조용히 지내면서 왕야께 폐를 끼쳐서는 안 되지요.” 그녀는 다시 한번 숟가락을 들더니 그것을 강제로 낙청연의 입에 넣으려 들었고 낙청연은 미간을 구기면서 손을 들어 그녀를 밀어냈다. 분명 크게 힘을 쓰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낙월영은 아주 세게 밀쳐진 듯이 바닥에 풀썩 쓰러졌고 그 바람에 약이 담긴 그릇도 깨졌다. 바로 그때,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낙월영은 깨진 그릇 조각을 손으로 눌렀고 그녀의 손은 피범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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