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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바닥을 확인해보거라. 나한테 밟혀서 죽은 고충이 있을 것이다. 이 고충은 제때 뽑아내지 않았으면 왕야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 말에 소유는 다소 놀랐다. 그래서 방 안으로 다시 들어서 바닥을 확인해봤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밟힌 벌레가 있었다. 소유는 손수건으로 벌레의 사체를 주워들었고 왕야의 상처를 봉합한 고 신의(顧神醫)에게 물었다. “고 신의, 이것이 고충이 맞습니까?” 고 신의는 눈을 빛내더니 잠시 살펴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쩐지 왕야의 상처에 묻은 독이 이상하다 했습니다.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인제 보니 고충의 독이었군요. 아마도 벌레가 상처 안으로 파고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치고 고 신의는 감탄하는 어조로 말했다. “세상에나, 참으로 다행입니다. 이것을 제때 빼내지 않았더라면 왕야의 목숨이 위험할 뻔했습니다.” 그 말에 소유와 침상 위에 있던 부진환은 모두 놀랐다. 소유는 곤혹스러웠다. 낙청연이 왜 왕야를 도우려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를 오해한 건 사실이었다. 그는 호위에게 얼른 그녀를 풀어주라고 했다. “제가 마음이 급해서 실례를 범했습니다. 송구합니다, 왕비 마마.” 소유는 부드러운 태도로 그녀를 향해 예를 갖췄다. 낙청연은 방 안으로 들어가서 비를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방 안에 있던 낙월영이 돌연 입을 열었다. “언니께서 의술을 익혔었군요. 고충이라는 것도 아시고, 언니가 때마침 도와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소유는 그녀의 말에 의문 어린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손을 뻗어 방 안으로 들어오려는 낙청연을 가로막았다. 그는 냉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방 안이 좁습니다. 왕비 마마께서는 밖에서 기다리시지요.” 소유는 명백히 그녀를 경계하고 있었다. 방 안이 좁다니, 방은 넓었고 사람도 얼마 없었다. 대체 어딜 봐서 좁다는 건지. 비가 거세게 내리니 그저 방 안으로 들어가서 비를 피하고 조금 쉬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낙청연은 머리가 어지러웠고 온몸이 젖어있었다. 처마 밑에 서 있는 것으로는 비를 완벽히 피할 수 없었고 정원 안의 등불도 거센 빗줄기와 강한 바람에 몇 개나 꺼졌다. 우렛소리는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컸다. 방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낙청연은 어쩔 수 없이 덜덜 떨리는 몸을 안고서 처마 밑에서 빗줄기가 약해지기만을 기다렸다. 계집종들은 비를 맞으면서 방 안으로 약재와 음식을 가져왔고 통 안에 깨끗하고 따듯한 물도 받아서 가져왔다. 우산을 쓰고 있던 계집종은 우산이 날아갔고 바닥에 철퍽 쓰러져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있었다. 방 안으로 물건들이 옮겨졌고 낙월영은 걱정스레 물었다. “제가 사람을 시켜서 준비한 것들인데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유는 감격한 어조로 말했다. “둘째 아씨께서는 참으로 섬세하고 자애로우신 분이시네요.” 고 신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쓸 곳은 없긴 하지만 둘째 아씨께서 왕야를 챙기시는 마음만큼은 절실히 느꼈습니다.” 부진환은 낙월영의 손을 잡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수고했다.” 낙월영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온화하게 얘기했다. “전 그저 왕야께서 건강하시면 됩니다.” 밖에서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낙청연은 순간 속이 메슥거렸다. 낙월영은 입만 움직였지, 일들은 계집종들이 다 했는데 뭘 수고했다는 건지. 게다가 쓸모없는 것들만 챙겨놨는데 저렇게 칭찬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만약 기회가 있다면 낙월영의 가면을 벗겨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방 안에서 낙월영은 부진환과 시시덕거리고 있었고 낙월영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싶지 않아 아예 회랑 아래로 가서 비를 피했다. 회랑의 의자 위에 꽂혀있는 긴 창을 보는 순간 낙청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의 소매 안에 있던 나침반이 진동하기 시작했고 또다시 눈가가 떨렸다. 나침반을 꺼내 보니 나침반은 쉴 새 없이 회전하고 있었고 진동이 점점 더 격렬해졌으며 나침판의 위쪽에서는 뇌전이 번쩍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천둥이 치는 밤하늘을 바라보니 겹겹이 쌓인 구름 사이로 번갯불이 마치 예리한 장검처럼 부진환의 방 위쪽에서 번뜩였다. 낙청연의 눈빛이 매섭게 돌변했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은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녀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섭정왕부 내부에는 인뇌진(引雷阵:번개를 불러오는 포진)이 쳐져 있을 것이고 번개가 내리칠 곳은 다름 아닌 부진환의 방이었다. 아마도 방 안에 날카로운 철기들이 진안(陣眼)으로 있을 것이었다. 그녀는 재빠르게 방 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이런 말을 한다면 그들이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에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소유가 그녀를 방 안에 들어오게 할 리가 없었다. 낙청연의 눈빛에 서늘한 안광이 감돌았다. 낙청연은 방문 앞으로 왔다. 고 신의는 부진환을 치료하고 있었고 낙월영은 홀로 옆에 서 있었다. 낙청연은 낙월영을 불렀고 낙월영은 잠시 당황하더니 곧바로 그녀에게로 오면서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언니, 왜 아직 돌아가지 않으셨어요? 온몸이 다 젖었는데.” 낙청연은 다급한 얼굴로 낙월영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동생아, 날 믿느냐?” 낙월영의 눈동자가 빛났고 그녀는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전 당연히 언니를 믿습니다.” “이 방에 이제 곧 번개가 칠 것이다. 그러니 나 대신에 왕야를 구해주지 않겠느냐? 난 왕야께서 죽지 않았으면 한다.” 낙청연은 속이 타들어 가는 듯한 얼굴로 방 안을 쳐다보며 말했고 낮은 궤짝에 놓인 철제 장식품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저것이다. 나 대신에 저걸 가져오지 않겠느냐? 부탁이다. 내가 들어가면 소유가 날 내쫓으려 할 것이다.” 낙월영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의뭉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멍청한 언니를 위해서 물건을 가져오는 것쯤이야 별일 아니었다. “그럼요, 언니.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낙월영은 곧장 방 안으로 들어가서 낮은 궤짝 위에 놓인 무거운 철제 장식품을 가져와 낙청연에 건넸다. “받으세요, 언니.” 낙청연은 그것을 건네받았다. 그 장식품은 스님이 자기 몸보다 세 배는 더 큰 항마저(降魔杵)를 들고 있는 형태였는데, 꼭대기 부분은 무척 날카로웠고 장식품 자체에서 악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스님은 분명 요승(妖僧)이었다. “바로 이것이다. 고맙다.” 낙청연은 흥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낙월영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 속에는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었다. 낙청연은 물건을 들고 떠났고 낙월영은 개의치 않고 방 안으로 돌아왔다. 바로 그때 우렛소리와 함께 ‘쿵’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마치 검은 밤을 깨우는 맹수의 울부짖음 같았다. 섭정왕부의 후원에 있는 잡동사니가 놓인 방에 불이 났고 큰 소란이 일었다. 거센 빗줄기로 인해 불은 금방 꺼졌지만 방 자체가 무너졌다. 하인이 황급히 이 소식을 전했다. “왕야! 왕야! 후원의 잡동사니가 놓인 방이 벼락을 맞았사옵니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소유는 미간을 구겼다. “갑자기 벼락을 맞았다니, 다친 사람은 있느냐?” “하인 두 명이 다쳤사옵니다.” “얼른 의원에게 보여라!” 소유가 즉각 명령을 내렸고 낙월영은 놀란 듯 입을 가리며 말했다. “그게 진짜였다니…” 부진환은 미간을 좁히며 그녀를 바라봤다. “뭐가 진짜라는 것이냐?” 낙월영은 그의 시선을 피하면서 그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것은 낙청연이 그녀에게 알려준 일이었기에 왕야에게 말하면 낙청연이 왕야의 목숨을 구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낙월영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소유가 의뭉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둘째 아씨께서 방안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나가는 것을 봤습니다.” 그 말에 낙월영이 대꾸했다. “네. 아마도 그 물건이 번개를 불러오는 것 같았습니다. 어쩐지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서 그것을 치웠지요. 그런데 진짜 벼락을 맞을 줄은 몰랐습니다. 제때 치워서 다행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왕야께서 위험하실 뻔했습니다.” 낙월영은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방 안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부진환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너는 그것이 번개를 불러올 것이라는 걸 어떻게 안 것이냐?” 낙월영은 주저하며 말했다. “고서에서 본 적이 있는데 사악한 물건이라 하였습니다.” 부진환은 전혀 의심 하지 않았고 낙월영의 손을 맞잡으며 마음 아픈 듯이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네가 내 목숨을 살렸구나. 내가 너한테 어떻게 보상을 해줘야 할까…” 낙월영은 부진환의 품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왕야께서 평안하게 일생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소유는 옆에서 감개하며 말했다. “둘째 아씨께서는 왕야의 목숨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저와 고 신의의 목숨도 구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든 분부하십시오.” 고 신의는 연신 감탄을 내뱉으며 말했다. “승상부의 둘째 아씨는 마음씨가 고우시고 지혜로우시며 고금을 통달했다고 들었는데 역시나 소문대로 십니다. 번개를 불러오는 물건도 알아보시다니, 사내였으면 정말 큰 일을 하셨을 것입니다.” 쏟아지는 칭찬에 낙월영은 쑥스러운 듯이 웃어 보였다. “칭찬이 과하십니다.” 바로 그때 문밖에서 경멸하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내 동생이 풍수지리까지 알 줄은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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