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장

손재호는 횡령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사업상에 드는 비용은 반드시 회사 계좌로 나가야 하는 법은 없다며 자기가 회사에 안겨준 수익만 해도 어마어마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강리나는 하은지의 사건 이후로 알게 된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솔직히 털어놓는 의뢰인은 없다는 것이다. 상대방 변호사가 중요한 정보를 포착하거나 더 이상 숨기기 힘들 때야 털어놓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로써 강리나는 정확한 파악을 위해 마지막으로 사실 확인에 나섰다. “손재호 씨, 전 지금 당신의 변호사입니다. 쉽게 말해 당신과 같은 배에 탔다는 뜻이죠. 그러니 저한테 솔직히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아리온을 관리하는 동안 발생한 수익을 단 한 번도 사적으로 쓴 적 없는 게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손재호가 단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 구치소를 나온 강리나는 손재호의 계좌 내역을 다시 훑어봤으나 최근 반년 동안에 의심 갈 만한 입출금 내역은 단 하나도 없이 그야말로 깔끔했다. ‘너무 깔끔한 게 문제라면 문젠데...’ 강리나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던 중에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녀는 성시후의 전화임을 보고 가볍게 무시하려 했으나 또다시 울리는 벨 소리에 어쩔 수 없이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인데요?” “우리 사모님이 왜 이러실까? 뭐 내가 용건 있어야만 전화할 수 있나? 아님, 내 애인 처리해 주는 그런 일을 좋아하는 건가?” “별 일 없으면 끊을게요.” 강리나가 정말로 전화를 끊을 것 같자 그제야 조금은 진지해진 성시후였다. “지금 로펌에 와있는데 천명훈이 너 나갔다길래.” “로펌은 뭐 하러 간 거예요?” “내 대리인으로 너 고용하려고. 왜? 안 돼?” 강리나는 그저 어이가 없었다. “성시후 씨, 평소에 저한테 불만 있는 건 알겠는데 일적으로는 터치하지 말죠? 계속 그러면 할아버지께 말씀드릴 거니까 그때 가서 원망하지나 마요.” 그 말에 성시후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초딩이야? 이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