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그는 강리나의 일에 신경 써본 적이 없고 그녀가 어떤 리더와 일을 하는지는 더더욱 모르지만 킹스 로펌의 유명한 남자 변호사인 천명훈을 잘 알고 있다.
하은지가 말한 ‘천 변호사'가 아마 그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끔찍이 보살핀다고 하는데 이것은 인재를 아끼는 것인지...다른 뜻이 있는 건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은지는 그가 말을 하지 않자 화제를 바꾸었다.
“시후야, 2년 동안 잘 지냈어?”
성시후는 정신을 차리고 되물었다.
“넌 어땠어? 왜 이혼해?”
“나는 잘 지내지 못했어. 처음부터 이 결혼은 홧김에 한 결정이고 그가 그런 사람인지 전혀 몰랐어. 가정폭력에 바람을 피우고 폭음하는 등 모든 나쁜 일을 다 했는데 또 나더러....”
갑자기 뭔가 깨달은 그녀는 황급히 말을 멈추더니 눈빛이 어두워졌다.
“난 지금 매우 후회해. 만약 내가 그때 너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면, 만약 내가 너 다른 여자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걸 개의치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쯤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지 않았을까?”
성시후는 마음이 아팠다.
“은지야, 그건 내가 잘못한 거야.”
하은지는 그의 미안한 기색을 보며 눈치채기 힘든 의기양양함이 얼굴을 스쳤지만 이내 표정을 고치고 말했다.
“너도 속은 거니 네 탓 아니야.”
“걱정하지 마, 이혼은 내가 도와줄게.”
“정말?
성시후의 듬직한 목소리가 든든하게 들려왔다.
“응, 다음에 만나면 내가 같이 있어 줄게. 어떤 증거가 필요해? 같이 찾아보자.”
하은지는 기뻐하며 말했다.
“시후야, 도와줘서 고마워.”
...
카페를 나와 로펌으로 향하던 강리나는 오늘 마침 천명훈이 있는 것을 보고 인사를 건넸다.
“스승님.”
천명훈이 그녀에게 서류 한 부를 건넸다.
“이거 처리해.”
강리나가 손을 내밀어 받을 때 천명훈은 그녀의 손에 묻은 핏자국을 힐끗 보고는 그녀의 팔을 잡았다.
“다쳤어?”
“별거 아니에요. 업무에 지장 주지 않을 거예요.”
천명훈은 말없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겨 사무실로 끌고 가 작은 약상자를 꺼내더니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 안에서 약과 면봉을 꺼내 조심스럽게 처리해 주었다.
강리나는 그의 진지한 모습을 보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스승님이 남편보다 그녀에게 더 신경을 쓰는데 정말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을 바른 후 천명훈은 상처를 거즈로 싸고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
“어쩌다 다쳤어?”
“실수로 개에게 밀려서 넘어졌는데 마침 깨진 도자기 조각을 눌렀어요.”
“개가 목줄을 안 맸어?”
강리나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천명훈은 그녀를 힐끗 보며 말했다.
“다행히 개에게 물린 건 아니네? 그랬다면 광견병 백신을 맞아야 하잖아. 다음번에는 개를 멀리 피해 다녀.”
강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알았어요. 고마워요. 스승님.”
남자는 약상자를 치우며 물었다.
“하은지 씨와 의사소통은 잘 되고 있어?”
“잘 안 돼요.”
그는 잠깐 생각에 잠기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결정을 내렸다.
“다음에 만날 땐 나한테 얘기해. 같이 가자. 네가 경력이 적다고 말을 아끼는 모양이야.”
“그럼 사부님 수고하세요.”
“자신이 받은 제자니 당연히 아껴야지.”
강리나는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2년 전 강씨 가문이 망하고 성시후와 결혼한 후 계속 난처하던 순간, 천명훈이 그녀를 심연에서 끌어내어 학력 제한에도 불구하고 로펌에 들어가게 한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천명훈이 직접 그녀를 데리고 가르치며 희망을 되찾게 했다.
...
강리나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성시후는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그를 본 그녀는 갑자기 손의 상처가 또 아프게 느껴졌다.
남자는 몸을 숙여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끄고 차가운 눈초리로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따지듯 물었다.
“왜 은지가 돌아왔다고 말하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