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주수연의 아이는 다행히 무사했다. 병실로 옮겨진 주수연의 안색은 창백했고 눈시울이 빨갰다. 거기에 첫사랑 같은 얼굴까지 더해지니, 너무나도 가여워 보였다. “걱정 마. 아이는 괜찮아.” 강지훈이 위로해 주었다. “지훈아, 나 무서워.” 주수연이 울기 시작했다. 강지훈이 티슈를 건네자, 주수연은 그 티슈를 받으면서 강지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눈물 글썽한 얼굴로 강지훈 팔에 기대었다. 비록 불쌍하지만, 불쌍하단 이유로 남의 약혼자를 자기 남자로 쓰는 건 말이 안 되었다. “형수님,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너무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대요. 어렵게 지켜낸 아인데, 이렇게 울다가 문제 생기면 큰일일 거예요.” 나는 이렇게 말하며 주수연을 부축했다. 그리고 조용히 그녀와 강지훈을 떼어놓았다. 하지만 강지훈 팔등에 남겨진 눈물 자국을 보자, 내 기분은 확실히 별로였다. 남이 내 물건을 더럽힌 느낌이랄까? 나한테 결벽이 있긴 했다. 그게 생활에서든, 혹은 감정에서든. 주수연은 내가 형수님이라고 부를 줄 생각 못했는지,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하지만 곧 정서를 가다듬었다. ‘지훈아, 미안해. 내가…….”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티슈로 강지훈의 팔을 닦아주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그걸 막았다. “형수님, 최대한 움직이지 마세요.” 주수연의 얼굴이 한순간 굳어졌다. 그리고 눈물이 글썽한 두 눈으로 강지훈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두 눈에는 애정으로 가득 찼다. “주수연, 혹시 너 좋아해?” 병실에서 나온 후, 단도직입적으로 강지훈에게 물었다. “아니!” 강지훈이 부정했다. “그럼 너는? 주수연 좋아해?” 난 확실한 대답을 듣고 싶었다. 혼자서 계속 허튼 생각 하고 싶지 않으니까. 강지훈의 표정이 아주 눈에 띄게 경직되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린 그냥 친구야.” 친구? “경준이가 없잖아. 더구나 마지막에 내 손을 잡고 수연이를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어.” 강지훈의 목소리가 떨렸다. 심지어 양쪽에 내려놓은 손마저 떨고 있었다. 임경준의 죽음을 얘기할 때마다, 강지훈은 흥분했다. 처음이 아니었다. 그런 강지훈의 모습에 내 심장이 움찔했다. “난 다른 뜻이 아니라, 주수연이 널 너무 의지하는 거 같아서.” “아마 임신해서 그럴 거야. 혼자서 불안하겠지.” 강지훈이 주수연 대신 설명했다. 그리고 검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은아, 앞으로 주의할게.” 이렇게까지 말하니, 나도 더 이상 할 말 없었다. 하지만 경고할 건 여전히 해야 했다. “아무리 임경준이 부탁했다고 해도, 넌 남자고 주수연은 여자야.” 방금 그 장면 두 번 보고 싶지 않았다. 나만 괜히 언짢으니까. “응, 알았어.” 그의 말이 떨어지자, 멀지 않은 곳에서 조급한 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살짝 돌리니, 한 무리 사람들이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를 밀면서 이쪽으로 다급하게 오고 있었다. 내가 피하려는 순간, 강지훈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해.” 그리고 내 몸을 끌어당기자,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가 내 뒤에서 빠르게 스쳐 지났다. 난 강재훈 가슴에 기대었고 귓가에는 요란한 심장박동 소리였다. 그 소리에 내가 금방 강씨 가문에 왔을 때의 일이 생각 났다. 그때 학교 활동에 참가했는데, 부주의로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강지훈이 달려와서 나를 품에 안고 의무실에 데려다주었다. 그때 처음 강지훈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었다. 너무 당황한 건지, 심장 방독이 엄청 빨랐다. 내가 강지훈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 순간부터였다. 그의 심장 박동은 여전히 급하고 빨랐다. 그리고 그 원인은 여전히 나였다. 나는 눈을 감고 복잡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냈다. 그리고 얼굴을 강지훈 가슴에 비비며 말했다. “우리 집에 가자. 나 힘들어.” “그래. 수연이한테 간다고 해야지.” 강지훈은 날 놓아주면서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난 병실에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서 기다렸다. 강지훈이 주수연이랑 무슨 얘기 했는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나왔을 때, 주수연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나랑 강지훈이 집에 도착했을 때, 미연 이모랑 석진 삼촌은 아직 쉬지 않았다.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아서 아무 말 없이 TV를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평소에도 말이 적었다. 미연 이모한테 물어본 적 있었는데, 매일 만나다 보니, 할 말이 별로 없다고 했다. 강지훈이 그랬었다. 미연 이모랑 석진 삼촌도 젊었을 땐 뜨겁게 사랑했었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잔잔해진 것뿐이었다. 어쩌면 이게 바로 사랑의 끝일지도 모른다. “어머니, 아버지!” “미연 이모, 석진 삼촌!” 나랑 강지훈은 그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밥 먹었어? 안 먹었으면 남은 반찬 있는데.” 미연 이모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먹었어요.” 강지훈은 이렇게 대답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배고파? 좀 더 먹을래?” 난 저녁을 거의 먹지 않았지만, 전혀 배고픈 느낌이 없었다. “됐어.” “그럼 올라가서 쉬어. 이따가 도우미한테 우유 갖다주라고 할게.” 미연 이모가 웃으며 말했다. 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그 웃음이 약간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난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문이 열린 순간, 난 살짝 당황했다. 고개를 돌리고 강지훈을 보자, 그도 마찬가지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내려가기도 전에 미연 이모가 먼저 올라왔다. “나은아, 방금 깜박했는데, 지훈이 방은 너희 신혼 방으로 준비할 거니까, 둘이 일단 한방에서 자.” “어머니, 저랑 나은이 결혼하면 밖에서 살 거예요. 여기서 신혼 방을 준비할 필요 없어요.” 강지훈이 반박했다. “나가서 살면 안 돌아올 거야? 명절에는 돌아와야지.” 미연 이모는 강지훈을 한 번 노려보더니, 내 방으로 데려왔다. “둘이 곧 결혼할 사이인데, 같이 자는 게 어때서? 나은아, 괜찮지?” 미연 이모가 나에게 물었다. 내 귓가에 갑자기 강지훈과 서현우의 대화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알았어요.” 강지훈이 나 대신 대답했다. 난 고개를 돌리고 강지훈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나의 어깨를 안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히 주무세요!” 이 말을 마친 강지훈은 문을 닫았다. 나와 강지훈은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다. 분위기는 약간 어색하면서도 애매했다. 특히 새빨간 침대를 보며, 마치 오늘이 결혼 첫날밤인 거 같았다. 내 얼굴이 뜨거워졌다. “저기, 내가 가서 바꿀게.” 나를 안고 있던 강지훈의 손을 뿌리치자, 강주훈은 날 한방에 안았다. 그의 그윽한 눈빛에 내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호흡도 가빠졌다. 강지훈의 목젖이 꿀렁거렸다. 그리고 나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순간 내 온몸의 신경이 움찔한 거 같았다. 우리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고, 내 팔을 잡고 있던 그의 손도 점점 올라가더니, 내 어깨에 올려졌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 가까워지고 있는 게 보였다. 난 너무 긴장돼서 그의 팔을 잡았다. “강…….” 남은 말은 그의 입술이 막았다. 그의 키스는 사나우면서도 뜨거웠다. 그가 이러는 건 처음이었다. 나랑 강지훈이 사귄 지 이렇게 오래됐는데, 키스를 안 해봤을 리가 없다. 하지만 매번 짧게 끝났었고, 그의 혀끝이 나의 입술을 닿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근데 오늘 밤의 키스는 아주 강렬했다. 난 너무 긴장되어서 이가 떨렸다. 그래서 강지훈이 깊이 들어오고 싶어도 들어올 수가 없었다. 강지훈은 계속하지 않고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긴장 풀어.” 말이 끝나자, 내 몸이 갑자기 가벼워지더니, 강지훈은 날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내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난 너무 긴장돼서 발가락까지 움츠러들었다. 그의 이마에 튀어나온 힘줄과 꿀렁이는 그의 목젖이 보였다. 비록 남녀 간의 일을 시도해 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알 건 안다. 그도 지금의 나처럼 설레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한테 그럴 마음이 없다는 말도, 시도를 안 해봐서 그럴지도 모른다. 일단 시작하면 계속하고 싶어질 수도 있으니까. 난 눈을 감고 나와 강지훈만의 뜨거운 밤을 기대했다. 셔츠가 벗겨지면서 온몸이 차가워졌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나의 목을 닿았다. 그런데 이때, 강지훈의 핸드폰이 울렸다. 나의 신경이 움찔하면서 본능적으로 그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강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