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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구원사랑의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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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강지훈에게 잡힌 손이 아팠다. 지금 화가 난 게 분명했다. 질투한 건가? 이런 추측이 스쳐 지날 때, 강지훈이 내 손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차가운 시선으로 날 쳐다보며 물었다. “한나은, 내 그 한마디 때문에, 날 이렇게 복수하는 거야?” 난 살짝 당황했다. 그가 이렇게 생각할 줄 예상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야, 난…….” 내가 설명하기도 전에 강지훈이 내 말을 잘랐다. “어디 만졌어? 정말 거기 만진 거야?” 강지훈의 표정은 굳어졌고 사나운 눈빛은 날 잡아먹을 기세였다. 이런 모습은 참 보기 드물었다. 질투한 게 분명하네. 순간 음울했던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보아하니 내가 마음에 없는 건 아니었다. 날 그냥 동생이나 친구로 생각한다면, 내가 다른 남자를 만진 걸 이렇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아니.” 난 또 한 번 부정했다. 말이 떨어지자, 주민기가 안에서 걸어 나오더니, 나한테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변태야, 이제 내 매형을 꼬시는 거야?” 더러운 입에 고운 말이 나올 리가 없지. 주민기의 얼굴을 보며 전생에 이 녀석이랑 원수라도 졌나 싶었다. 날 향해 걸어오는 남매, 특히 첫사랑 분위기인 주수연을 보며 방금 그녀가 강지훈에게 손을 댄 장면이 생각났다. 그래서 손을 들고 강지훈과 팔짱을 꼈다. 그러자 강지훈의 몸이 순간 굳어진 게 느껴졌다. “허튼소리 그만해.” 주수연은 주민기를 꼬집으며 걸어왔다. 그리고 나랑 강지훈 앞에 멈춰서더니,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지훈아, 나은 씨, 죄송해요.” “너랑 상관없어.” 강지훈은 주민기를 쳐다보았다. “또 이런 일 있으면 다음엔 널 도와주는 사람 없을 거야.” “흥.” 주민기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강지훈을 흘겨보았다. “누구신데요? 무슨 자격으로 이 말을 하는 거죠? 제 매형이면 그 말 들을게요.” “주민기!” 주수연은 호통을 치며 또 주민기를 때렸다. 그러자 주민기가 피하면서 말했다. “누나, 이 사람 누나 좋아한다니까. 그렇지 않으면 왜 밤, 낮 안 가리고 누나를 돌보겠어?” 강지훈과 팔짱을 끼던 내 손이 움찔했다. 그동안 집에 있지 않고 자주 외출을 한 이유가 눈앞의 이 여자 때문이었구나. 친구가 차 사고로 죽었으니, 친구 와이프를 돌봐주는 것도 정상이었다. 하지만 매일 돌봐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얼마나 보살폈길래 동생이 이런 오해까지 하는 거야? “무슨 헛소리하는 거야?” 주수연의 얼굴이 빨개지더니, 주민기를 더욱 힘껏 때렸다. 17살, 원래부터 화가 많은 나이라서, 누나가 계속 때리자, 주민기는 본능적으로 손을 들었다. 그러자 주수연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순간 옆에 있던 사람의 힘에 밀려, 내 몸이 휘청거리면서 넘어질 뻔했다. 내가 다시 중심을 잡았을 때, 강지훈은 이미 주수연 앞에 달려가 무릎을 반쯤 꿇고 그녀를 안고 있었다. “수연아, 괜찮아? 어디 아파?” “배, 배 아파, 지훈아.” 주수연은 허약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강지훈의 팔을 꼭 잡았다. “괜찮아. 병원에 가자. 괜찮아.” 강지훈은 너무 당황해서 목소리까지 떨렸다. 그리고 난 그 자리에 그만 얼어버리고 말았다. 강지훈의 수많은 모습을 봐왔지만, 그가 이렇게 조급해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다른 여자 때문에. 강지훈은 주수연을 안고 차에 오르며 나에게 소리쳤다. “나은아, 네가 운전해.” 몸이 굳어져서 순간 움직여지지 않았다. “빨리! 만약 누나한테 무슨 문제 생긴다면, 너 가만두지 않을 거야!” 주민기가 사나운 표정으로 날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의 손이 내 몸에 닿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의 뺨을 때렸다. “내 몸에 손대지 마.” 주민기의 하얀 얼굴에 순간 선명한 손자국이 생겼다. 그러자 차에 있는 두 사람도, 주민기도 모두 굳어졌다. 내가 뺨을 때릴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주민기는 미친 것처럼 날 때리려고 했다. “이 여자가!” “주민기!” 강지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만약 나은이를 건드린다면, 다시 경찰서에 들어갈 줄 알아.” 이 경고가 먹혔는지, 주민기는 들어 올린 손을 다시 내리며 울분으로 가득 찬 눈으로 나랑 강지훈을 한번 쳐다보더니, 성큼성큼 가버렸다. “주민기!” 주수연이 소리쳤지만, 고통 때문에 다시 배를 움켜쥐었다. “아파. 지훈아, 빨리 병원에 가자.” “한나은!” 강지훈이 또 나를 불렀다. 고통스러워하는 주수연을 보며 나는 더 이상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냉큼 차에 오른 후, 곧장 병원으로 갔다. 의사를 보자, 강지훈은 주수연을 안고 다급하게 말했다. “선생님, 수연이 임신했는데, 방금 넘어졌어요. 지금 배가 많이 아프대요.” 임신? 순간 무거워진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심장이 벼랑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주수연의 남편은 죽었잖아. 그럼 어떻게 임신한 거야? 내 시선은 강지훈의 당황한 얼굴에 놓였다. 왜 이렇게 긴장하는 거지? 설마……. 주수연은 응급실에 들어갔고 나랑 강지훈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랑 주수연은 오늘이 초면이기에 난 별로 긴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지훈은 아주 조급해했다. 난 그런 강지훈을 계속 주시했고, 강지훈은 응급실의 입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옆에 자기 약혼자가 있다는 걸 전혀 잊은 것처럼. 씁쓸한 감정이 계속 치밀어 올랐다. 몇 번을 억누르다가, 결국 입을 열고 말았다. “네 아이야?” 허튼 생각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물어보기로 했다. 그러자 강지훈은 고개를 돌리고 경악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무슨 소리야. 당연히 아니지. 임경준의 아이야.” 순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임경준은 주수연의 남편이자, 강지훈의 오래된 친구였다. 한 달 전, 임경준은 차 사고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경준이가 날 부탁해서 수연이를 돌봐주는 거야.” 강지훈이 나에게 설명했다. 임경준의 사고를 처리하고 집에 돌아온 강지훈의 모습이 떠 올랐다. 엉망인 머리에 수염이 더부룩한 얼굴, 마치 산속에서 도망쳐 나온 야인 같았다. 두 사람의 사이가 워낙 좋다 보니, 강지훈이 임경준의 아내를 돌봐주는 것도 당연하단 생각이 들었다. 방금 스쳐 지나간 내 추측에 순간 미안해졌다. 그래서 손을 들어 올리고 강지훈의 팔을 살포시 잡았다. 그리고 오늘 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나 그 녀석 안 만졌어. 그 녀석이 날 모함한 거야.” 강지훈은 날 쳐다보더니, 입술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손을 내밀고 내 얼굴을 꼬집었다. “앞으로 술 마시지 마.” 조금밖에 안 마셨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이때 응급실의 문이 열렸다. 의사가 걸어 나오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강지훈 앞에 멈춰 섰다. “임산부 가족, 사인하세요.” 강지훈은 나를 힐끗 한 번 쳐다보고 의사가 건넨 펜을 받았다. 그리고 사인하기 전에 의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지금 상황 어떤가요?” “부인께서 유산할 가능성이 있는데, 일단 아이부터 지켜야죠. 하지만 실패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먼저 사인하세요.” 의사가 설명했다. “선생님, 아이 꼭 지켜주세요.” 강지훈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야 당연하죠. 얼른 사인하세요.” 의사의 재촉에 강지훈은 주수연 가족이란 신분으로 사인을 했다. 사인 하나가 별거 아니란 거 알지만, 내 약혼자가 먼저 남의 가족이 될 줄 생각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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