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장

“….” 고아람은 어쩐지 자신이 도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지안은 그런 그의 기분을 알아챈 듯 말했다. “도구는 나일 거야.” 고아람은 미안함이 느껴졌다. “주지안….” “그렇다고 해도 나는 기꺼워.” 주지안은 먼저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고아람은 한숨을 쉬었다. “넌 언제나 가장 좋은 친구였어.” 그건 에둘러 표현한 고아람의 마음이었다. 주지 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서지훈은 길가에 서서 고아람이 주지 안의 차에 타는 것을 지켜봤다. 길가에 서 있던 신미연이 그를 향해 중지를 들어 보였다. 서지훈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녀와 더 싸우지는 않았다. 그는 박유연에게 차 문을 열어주었다. 박유연은 허리를 숙여 차 안으로 들어갔다. 주지 안의 차가 떠나고 나서야 그는 차에 올라탔다. 서지훈의 표정은 차갑고 어두웠다. 핸들을 쥐고 있는 손에는 핏줄이 돋을 만큼 힘이 들어갔다. 서지훈의 표정이 안 좋아 보이자, 박유연이 물었다. “저기, 진짜 괜찮은 거죠?” “괜찮아요.” 서지훈은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는 운전에 집중하려 했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고아람의 뒷모습뿐이었다. 그는 입술을 꾹 물었다. 고아람이 감히 진짜로 주지안의 차에 타다니. 박씨 가문 본가는 정경시의 서산 장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산허리쯤에 위치한 장원은 앞에는 강이 뒤로는 산이 있어서 돈 줄기가 흐르는 좋은 땅이었다. 듣기로는 이 별장은 박씨 가문 선조가 유명한 스님을 불러 특별히 지은 곳이라고 했다. 산 전체가 박 씨 가문의 것이었고 산에도 오직 그들 가문 사람만 있었다. 이곳에 세워진 지도 벌써 수백 년이나 된 곳이었다. 지금의 박씨 가문은 한 나라만큼의 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풍수지리라는 게 어쩌면 뜬소문이 아니라 진짜로 존재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차는 산을 타기 시작했다. 길은 넓게 내어져 있었고 양옆에는 가드레일이 있었다. 장원은 몹시 거대했고 중간의 메인 건물과 서쪽의 곁동은 뒤쪽의 고전 건물과 이어져 커다란 삼각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 삼각형 안에는 거대한 분수가 있었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