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장

“가죠.” “어디를요?” 고아람이 물었다. “상사가 시키면 그냥 하세요. 묻지 마시고.” 박해일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자 고아람이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었다. “박 변호사님, 건의 하나 해도 됩니까?” “말하세요.” 박해일은 쉬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좀만 천천히 걸으실 수 있어요?” 박해일은 우뚝 멈춰서더니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다 시선이 천천히 내려가 그녀의 두 다리로 향하더니 진지하게 평가를 내렸다. “짧아서 그렇군요.” “….” 고아람은 어이가 없었다. 그녀의 키는 이미 여자치고는 큰 편이었고 몸매는 모델급인데 대체 어디가 짧다는 건지. 박해일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속도가 조금은 느려졌다. 고아람은 더 이상 종종거리며 쫓아가지 않아도 됐다. 박해일이 만나려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는 고아람도 몰랐다. 다만 만나는 장소와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으로 추측을 한 것이었다. 이건 비교적 복잡한 글로벌 케이스였다. 아우라가 엄청난 거물 앞에서도 전혀 밀리는 것 없었다. 심지어는 더 여유로워 보였다. 마치 뼛속에서부터 뿜어지는 자신감은 판의 형세를 전부 손아귀에 쥐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고아람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한 시간 뒤, 대화는 끝이 났고 방금 전의 엄숙하던 분위기는 조금 풀어졌다. 이야기를 마친 두 사람은 케이스와는 상관없는 대화를 나누었지만 또 경영과는 연관이 되어 있어 보였다. 남자의 시선이 별안간 고아람에게로 향했다. “이분은?” 박해일은 소파에 몸을 기댔다. “비서입니다.” 남자가 웃음을 흘렸다. “박 변호사가 언제부터 비서를 쓰기 시작했습니까?” 어두운 조명 아래, 박해일의 시선이 고아람에게로 향했다. “부탁을 받아서요.” “허.” 남자는 무슨 엄청난 농담이라도 들은 듯 굴었다. 박해일이 내키지 않는 일을 할 리가 없었다. 박해일이 하기 싫은 일이라면 누가 와도 체면을 봐줄 리가 없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박해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제 일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