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정은지의 가벼운 신음에 여준수의 호흡도 덩달아 빨라졌다. 그런데 그 순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똑똑똑...”
끊임없이 울리는 노크 소리에 여준수와 정은지는 정신을 차리고 민망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더니,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한발 물러섰다.
두 사람은 각자 진정하려 애썼다.
여준수는 비교적 침착했지만, 정은지는 그의 거친 손길로 인해 셔츠 단추가 몇 개 풀어져 있었고,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여준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옷 정리하고 책이나 봐.”
그러고 나서 여준수는 한 번 숨을 크게 내쉬며 옷매무시를 다듬고 평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정은지는 얼굴에 불만을 드러내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대체 누가 이렇게 눈치가 없어!’
여준수와 겨우 감정을 키울 기회를 얻었는데, 누군가의 방해로 이렇게 허무하게 날리게 되자, 정말 아까웠다.
두 사람 모두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야 여준수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고, 정은지도 조용히 책을 들여다보았다.
여준수는 느긋하게 문밖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들어와.”
서달수가 문을 열고 들어와, 공손하게 자료를 들고 여준수에게 다가갔다.
“대표님.”
그 말이 끝나자마자 서달수는 어디선가 자신을 스캔하는 듯한 강렬한 시선을 느끼고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 시선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 같았고, 서달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그 시선의 주인은 다름 아닌 여준수의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정은지였다.
서달수는 순간적으로 긴장했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건가? 왜 나를 이렇게 쏘아보지? 사모님, 또 무슨 일을 꾸미려는 거죠?’
그 생각이 들자, 서달수는 등골이 오싹해지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때 여준수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지?”
서달수는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 손에 들고 있던 자료를 내밀며 말했다.
“대표님, 기획팀에서 방금 내린 프로젝트 기획서입니다. 결재 부탁드립니다.”
여준수는 아무 말 없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서달수는 인사를 하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서달수가 사라지자, 정은지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여준수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아까 중단된 일을 이어가고 싶다는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여준수는 여전히 냉정한 표정으로 서류를 보고 있었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그는 단 한 번도 정은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 모습에 정은지는 그가 이어갈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여준수가 원하지 않는다면, 정은지도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불만을 담아 일부러 작은 소리로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여준수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결국 정은지는 다시 얌전히 공부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
점심시간이 되자, 서달수가 다급하게 와서 중요한 회의가 있다고 알렸다.
여준수는 정은지를 보며 조금 아쉬운 듯 말했다.
“회의가 있어서 같이 밥을 먹을 수가 없게 됐어. 알아서 챙겨 먹어. 배고프지 않게.”
그 말을 남기고, 여준수는 서달수를 따라 회의실로 향했다.
정은지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게 뭐야! 그래도 근무시간이니까 일이 중요하지...’
그러나 정은지는 곧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준수 씨가 나랑 같이 밥을 먹을 수 없다면, 내가 나가서 사 오면 회의 끝나고 같이 먹을 수 있잖아? 정말 좋은 생각이야!’
정은지는 자신을 칭찬하며 혼자 회사 근처로 나갔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근처 식당에서 고하준과 마주쳤다.
그는 캐주얼한 회색 재킷을 입고, 누구를 기다리듯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정은지는 몰래 속으로 푸념했다.
‘정말 재수가 없네! 왜 하필 여기서 고하준을 만나냐고!’
그녀는 급히 손으로 얼굴 반쪽을 가리고, 조용히 카운터에서 음식을 주문한 후 소리 없이 한쪽 구석에 앉아 음식이 포장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고하준이 자신을 보지 못했기를 바라며, 그냥 지나가 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고하준은 마치 그녀가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단번에 알아보고 다가왔다.
“은지 씨, 여기서 보네요. 식사는 하셨어요? 이렇게 만난 김에 제가 한턱내죠.”
고하준은 자연스럽게 정은지 앞에 앉으며 가식적인 신사의 미소를 지었다.
고하준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끔해 보였다. 과거 정은지가 한아진의 말에 휘둘리며 그를 좋아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정은지는 고하준의 겉모습이 아무리 단정해 보여도, 그가 속으로 어떤 꿍꿍이를 꾸미고 있을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정은지는 고하준과 한아진과 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착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늘 어떻게든 꾀를 부리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이 들자, 정은지는 속이 메스꺼워져서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요.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정은지 씨, 그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잖아요. 우리가 얼마나 오래된 사이인데, 밥 한 끼 사는 건데 뭐가 문제겠어요?”
고하준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부르려 했지만, 정은지가 그의 팔을 가로막으며 다시 단호하게 거절했다.
“고하준 씨, 고마워요. 하지만 정말 괜찮아요. 지금은 별로 식욕이 없어서 그냥 간단히 포장해서 갈 거예요.”
정은지는 고하준과 더 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냉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고하준은 정은지가 그에게 밀당을 하고 있다고 오해했다.
‘아마도 예전에는 내가 별로 관심을 안 보였던 것 때문에, 이제 와서 예뻐진 얼굴을 믿고 밀당하려는 거겠지? 요물이네? 하지만 난 이런 속셈쯤은 다 꿰뚫어 볼 수 있다고!’
고하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만에 가득 차 정은지의 부드러운 손을 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은지 씨, 솔직히 말해서 예전엔 제가 은지 씨를 소홀히 대했던 것 같아요. 더 늦기 전에 사과할게요. 그런데 오늘은 그냥 같이 밥 한 끼 하자는 거잖아요. 게다가 날씨도 이렇게 좋은데, 밥 먹고 나서 같이 바람도 쐬면 좋지 않아요?”
‘좋긴 뭐가 좋아! 웃기고 있네!’
정은지는 고하준이 자기 손을 잡자,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