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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여준수는 순간적으로 멍해졌고, 정신을 차린 후 미간을 찌푸렸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느낌에 당장이라도 두어 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며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반면 정은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미 고개를 숙이고 다시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준수는 그런 정은지를 힐끗 보다가, 그녀가 드물게 집중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모든 글자를 하나하나를 해독하려는 듯한 진지한 정은지의 모습은 여준수에게 매우 낯설었다. 예전의 정은지는 어리광 부리며 여기저기서 말썽을 피우는 모두의 골칫거리였고, 그야말로 소문난 철부지였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그녀의 과거와는 너무도 달랐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단순한 변덕일까? 아니면 또 다른 속셈이 있는 걸까?’ 여준수는 잠시 멍때리다가 급히 복잡한 생각을 떨쳐냈다. 정은지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든 결과는 변함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네가 무슨 꿍꿍이가 있든 상관없어! 어떤 일이 있어도 너를 내 곁에서 떠나게 하지 않을 거니까...’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단절됐고 집무실에는 조용한 분위기가 유지되었다. 서로 방해하지 않으려는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정은지가 볼펜을 물고 있다가 한 문제를 가리키며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준수 씨, 여기 좀 이해가 안 되는데 설명해 줄 수 있어?” 여준수는 거절하지 않고 책을 가져가 문제를 살펴본 뒤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평소 덤벙대던 정은지가 의외로 설명을 빠르게 이해하자, 여준수는 그녀가 상당히 영리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은지는 이해한 부분은 곧바로 노트에 정성스럽게 적어 내려갔다. 깨알같은 글씨는 깔끔하고 단정하게 정리되었으며, 귀여운 글씨체도 그녀의 이미지와 잘 어울렸다. 여준수는 잠시 일을 멈추고 그녀를 관찰했다. 정은지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새로운 내용을 습득하고 있었다. ‘이렇게나 똑똑하면서 왜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까...’ 둘은 다시 조용해졌지만, 이는 폭풍전야의 고요함처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정은지의 질문이 연달아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거의 몇 분마다 한 번씩 여준수의 집중을 깨뜨렸다. “준수 씨, 여기 금융 문제에서 적분이 뭐가 뭔지 모르겠어...” “준수 씨, 주식 그래프는 어떻게 읽어야 하지?” “준수 씨, 이건 복수 정답 아니야? 왜 여러 개의 답이 맞는 것 같지?” “준수 씨...” 여준수가 처리하던 업무는 완전히 중단되었다. 한두 번은 참을 수 있었지만, 정은지의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지자,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그녀의 많은 질문이 경제금융학과 기초 수준이었고, 이 정도 문제는 누구나 쉽게 맞힐 수 있는 것들이었다. 결국 여준수는 화를 참지 못하고 돌직구를 날렸다. “은지야, 수업 시간에 도대체 뭐 하고 있었던 거야?” ‘바보’라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여준수는 화가 나 있었다. 정은지는 자신이 질문을 너무 많이 하여 여준수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것을 자각하고, 민망한 듯 머리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수업 시간엔 그냥 자거나... 셀카 찍거나... 쇼츠나 릴스도 보고, SNS...” 정은지는 말할수록 점점 더 초라해지는 것 같아 고개를 숙였지만, 여전히 여준수를 힐끔힐끔 엿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지자, 정은지는 급히 얼굴을 들고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준수 씨, 화내지 마.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을게. 진짜 반성했어.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공부만 할 거야. 진짜로!” 그녀는 확신에 찬 말투로 다짐했지만, 여준수는 한참 동안 그녀를 응시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를 어쩌면 좋을까...’ 정은지는 점점 더 빠져들었다. “이 문제는 이렇게 풀면 돼. 이해했어?” 여준수가 설명을 마치고 고개를 돌리자, 정은지가 곧 침이라도 흘릴 것처럼 넋을 잃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준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공부할 생각이 전혀 없구나!” 여준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정은지는 급히 그의 목을 감싸안고 그를 돌려세우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정말로 공부하고 싶어! 하지만 그 전에...” 정은지는 작게 웃으며 몸을 앞으로 기울여 그에게 입을 맞췄다. 여준수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마치 벼락을 맞은 듯 온몸이 굳어버렸다. 정은지도 얼굴이 붉어졌지만, 용기를 내어 다시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여준수의 차가운 얼굴과 달리 그의 입술은 부드러웠고, 정은지는 그곳에서 입을 떼기 싫었다. 결국 여준수는 수중에 일을 잠시 내려놓고, 의자를 가져와 정은지의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의 아주 가까이 붙어 앉았다. 여준수는 아무 생각 없이 교재를 집어 들고 그녀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중저음 보이스를 가까이서 들으니, 정은지의 심장이 콩닥거렸다. 정은지는 처음에는 진지하게 강의를 들었지만, 이내 그의 목소리에 끌려 시선이 그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정말 잘생겼어! 요즘 인기 있는 배우들보다 훨씬 잘생겼어!’ 찰나의 시간이 흐른 뒤, 여준수는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인식하더니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뻗어 정은지를 밀어내려 했지만, 정은지는 더욱 강하게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마침내, 여준수는 그녀를 힘으로 떼어내고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정은지,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정은지는 당당하게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한 건데?” 그녀의 너무나도 당연한 말투에 여준수의 속에서 참고 있던 욕망의 불길이 타올랐다. “네가 먼저 도발한 거야!” 여준수는 강렬한 남자의 기운을 뿜어내며 정은지를 사정없이 사무실 책상에 밀어붙였다. 정은지는 당황했지만, 저항하지 않았다. 결국 정은지도 이 상황에 몰입했고, 그녀의 코끝에서 얕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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