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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안희연에게 돌아온 대답은 한참 동안 이어지는 침묵이었다. 문밖에 서 있는 고현준의 굳은 얼굴과 꾹 다문 입술이 보였다. 말하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언급조차 하기 싫은 것 같았다. “현준 씨, 왜 날 선택한 거야?” 안희연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안수지는 고현준이 고경주를 질투했기 때문에 자신을 빼앗고 싶어서였다고 말했었다. 자신과 고경주 사이에는 그런 감정이 없었다. 하여 안희연은 그 말을 쉽게 믿을 수 없었기에 직접 묻는 것이다. 고현준은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문을 바라봤고 잠긴 목소리는 단호했다. “안희연, 문 열어.” 그는 그녀가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마치 얼굴을 마주한 채 대치하는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숨 막힐 듯한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강요했기 때문에 나랑 결혼한 거야?” 안희연은 고경주와 얽힌 추측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고경주는 안희연과 고현준에게 좋은 오빠고 형이었다. 이렇게 추잡한 추측을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에게 덮어씌우는 것은, 그가 고경주라서 모독적이었다. “아니.” 단호하고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왜?” 안희연의 머릿속은 여전히 안수지의 말로 가득 찼다. 고현준의 눈빛이 깊어졌다. 할아버지가 결혼 얘기를 꺼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건 그의 의견에 따랐다는 걸 지금 말할 수는 없었다. 그때의 안희연은 고현준과 결혼할 생각조차 없었다. 본인이 아니었다면 안희연은 좋아하는 선배랑 연애하면서 평범한 대학생처럼 지냈을 것이다. 이 사실을 알면, 그의 비열함과 비겁함을 알게 된다면 안희연은 그를 더 미워할 것이다. “됐어.” 기다려도 대답이 없자 안희연은 벽에 기대어 힘 빠진 웃음을 터뜨렸다. 고경주 때문이라는 그 이유는 본인도 입에 담기 힘들 것이다. 이것 말고는 다른 이유를 더 생각해내지 못했다. “현준 씨, 당신 변호사 오늘 시간 돼요?” 안희연이 말을 돌렸고 고현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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