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교실 안에는 하동민의 처절한 비명만 울려 퍼졌다. 그 외에는 적막이 흘렀다.
평소 묵묵히 지내던 방우혁이 이렇게 잔혹하고 무자비한 모습이 있을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동민의 손뼈는 방우혁이 발로 직접 으깨버린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본 나머지 일당들은 방우혁을 기습할 생각조차 못 하고 속으로 오한을 느끼며 꼼짝도 하지 못했다.
“선생님, 서둘러 주세요! 조금만 늦어도 방우혁이 중상을 입을지도 몰라요!”
이때 교실 밖에서 발소리와 함께 유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황해수와 유지석이 교실 뒷문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방우혁이 하동민의 손을 밟고 있는 충격적인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유지석이 예상했던 상황과 정반대여서 그는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황해수는 정신을 차리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일이야? 다들 반란을 일으킬 셈이냐?”
방우혁이 반응이 없자 황해수는 다급하게 그 앞으로 가서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방우혁! 감히 같은 반 학생을 폭행해? 당장 발 떼!”
방우혁은 황해수를 한 번 흘겨보며 말했다.
“얘네가 먼저 손댔어요. 제 책상과 책도 걔들이 던져버렸고요.”
“그들이 먼저 손댔다 해도 네가 주먹을 휘두른 건 잘못이야! 당장 발을 떼라고!”
황해수는 몸까지 떨리며 분노했다.
방우혁 발아래 있는 건 하동민이었다.
하동민의 아버지 하문성은 지역 건설 회사 사장으로 성질이 급한 데다 수하에 일당들도 많았다.
이 일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방우혁뿐만 아니라 황해수 본인까지 화를 입을 판이었다.
“알겠어요.”
방우혁은 발을 떼었다.
황해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한숨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우혁은 발로 하동민의 복부를 걷어찼다. 하동민은 교실 뒤쪽 벽에 부딪히며 피를 토하고 기절했다.
“이걸로 걔랑은 끝이에요.”
방우혁은 담담하게 말했다.
하동민의 처참한 모습에 황해수는 발끝부터 오한이 올라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보물처럼 아끼는 아들이 이런 꼴을 당하는 걸 본 하문성의 반응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너...!”
황해수는 태연한 방우혁을 가리키며 말을 잇지 못했다.
‘2년 넘게 조용히 지내던 방우혁이 졸업을 앞두고 이런 대형 사고를 치다니!’
“하동민과 우도운을 당장 보건실로 옮겨!”
황해수는 멍해진 학생들을 향해 소리쳤다.
하동민의 일당들은 정신을 차리고 쓰러진 두 사람을 교실 밖으로 메고 나갔다.
황해수는 방우혁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 교무실로 따라와!”
유지석은 방우혁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눈빛과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방우혁이 오늘 저지른 일은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좋은 결과는 방우혁이 퇴학당하고 치료비를 물어주는 정도였다.
최악의 경우엔 하문성의 분노를 사 강해시에서 영영 사라지는 것이다.
방우혁이 황해수를 따라 교실을 나가자 반은 마치 끓는 솥처럼 떠들썩해졌다.
“방우혁 진짜 멋지다. 하동민을 그 꼴로 만들다니...”
“난 원래 방우혁이 말도 잘 안 하는 내성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잔인할 줄이야...”
반 학생들은 모두 방우혁에 관해 토론했다. 많은 이들이 충격과 동시에 속이 후련하다는 반응이었다.
하동민은 집안 배경을 믿고 교실에서 거만하게 굴었기에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오늘 방우혁이 하동민을 혼쭐내준 건 그들이 하고 싶었지만 감히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흥, 너희들 정말 방우혁이 대단하다고 생각해? 사실 걔는 그냥 바보야! 졸업을 코앞에 두고 같은 반 학생을 폭행하다니, 최소한 퇴학은 각오해야지! 심하면 기록까지 남아서 대학 입시도 못 볼 거야! 게다가 하동민 부모님은 절대 방우혁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나는 하동민 아버지를 몇 번 봤는데 이 지역에서 꽤 영향력 있는 분이시라더라. 방우혁은 오늘 학교 문을 나서면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들걸?”
강아림은 비웃으며 말했다.
“요약하자면 오늘 이후로 방우혁 인생은 끝장이야. 수능도 못 보고 하동민 가족들에게 복수를 당해 죽지는 않더라도 반신불수가 되겠지...”
강아림의 짝꿍인 허민아가 덧붙였다.
그들의 말을 듣고 반 학생들도 수긍했다.
하지만 방우혁은 원래 그들과 친분도 없는 사이였기에 퇴학을 당하든, 죽든 다치든 그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저 하동민이 당하는 걸 보니 속이 후련할 뿐이었다.
교무실에서 황해수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컵을 쥔 손까지 떨리고 있었다.
“방우혁, 이 일은 내가 처리할 수 없어. 교감 선생님께 직접 보고할 거야. 네 운이 좋길 바라야지.”
황해수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방우혁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학교에 그냥 시간을 보내려 온 것이었고 언제든 떠날 수 있었다. 처분 같은 건 아무 의미도 없었다.
하동민의 도발은 오랜 시간 지루함을 느끼던 그에게 오랜만의 재미를 선사했다.
방우혁은 비록 수천 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기초조차 닦지 못한 연기 기간의 수련자였다.
본질적으로 그는 평범한 인간이었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화가 날 때가 있다.
하동민과 방우혁의 실력과 경험 차이가 아무리 크더라도 때로는 직접 손을 쓰는 게 답이다.
게다가 약자를 혼내주는 느낌은 상당히 짜릿했다.
한편, 한소유는 교실에 들어서자 뒤쪽의 핏자국과 넘어진 책상, 흩어진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한소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학생들은 한소유가 들어오자 입을 다물고 이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소유가 자리에 앉아 보니 옆자리의 방우혁 자리에는 의자만 남아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한소유는 눈썹을 찌푸리며 궁금해했다.
뒤쪽의 유지석은 한소유를 보자 눈이 번쩍 뜨였다.
‘방우혁에게 아직 희망이 있어!’
유지석은 한소유를 복도로 불러내어 일어난 일을 모두 설명했다.
“방우혁이 직접 남의 손뼈를 으깨버렸다고?”
한소유는 입을 가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응, 우리 모두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어.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쳐... 방우혁은 허약해 보이는데 발에는 그런 힘이...”
유지석은 아직도 공포에 떨었다.
한소유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에게 이건 기회였다.
방우혁을 협박해 한광식을 치료하게 할 절호의 찬스!
“알겠어. 내가 방우혁이 퇴학당하지 않도록 도와볼게.”
한소유는 유지석에게 말했다.
“정말? 고마워!”
유지석은 크게 기뻐했다.
한소유는 한씨 가문의 아가씨니 그녀가 나선다면 방우혁은 분명히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교감실에서 방우혁은 교감 변강민 앞에 서 있었다. 담임 황해수는 옆에 서 있었다.
“방우혁, 우리는 이미 하동민의 아버지에게 연락했고 그분이 급히 오고 계셔. 그 전에 묻겠는데 왜 하동민 학생을 폭행했지?”
변강민은 딱딱한 표정으로 추궁했다.
“말했잖아요. 걔가 먼저 손댔어요. 내 책상을 뒤로 던져놓고 원래대로 돌려놓으라니까 안 하더라고요. 오히려 저한테 먼저 덤벼들었고요.”
방우혁은 사실대로 말했다.
“그 애가 먼저 덤벼들었다고? 그런데 왜 지금 다친 건 하동민이고 너는 멀쩡해!”
변강민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유야 간단하죠. 제가 더 잘 싸우니까요.”
방우혁이 대답했다.
변강민은 책상을 내리치며 일어나 소리쳤다.
“헛소리하지 마! 사람을 때려놓고 왜 이렇게 당당해? 이게 학생으로서, 청소년으로서 할 짓이야? 네 보호자를 불러 대체 어떻게 너를 가르쳤는지 한 번 봐야겠어!”
“보호자 없어요. 전화하지 마세요.”
방우혁이 말했다.
“보호자가 없다고?”
변강민은 황해수를 바라보았다.
황해수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교감 선생님, 방우혁은 정말 보호자가 없습니다. 기록에는 고아인 방우혁을 한 노인이 키우다가 중학교 시절 그분이 돌아가셨다고 적혀있어요.”
“고아라면 더더욱 이런 행동을 해서는 안 돼! 너를 키워준 분께 죄송하지도 않아? 너를 키워준 어르신께서 이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변강민은 여전히 분노에 차 질책했다.
방우혁의 기록은 모두 가짜였다. 양육해 준 노인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방우혁은 자기보다 수천 년 어린 사람의 훈계를 들을 생각이 없어 말을 끊었다.
“교감 선생님, 그냥 제가 받을 처분을 말해 주세요. 제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너, 너 이...”
변강민은 화가 나서 말을 잇지 못하며 얼굴이 빨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