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만약 누군가 트럭 앞 상황을 봤다면 틀림없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놀랐을 것이다.
교복을 입은 한 남학생이 단 한 손으로 트럭의 전면을 받치고 서 있었다.
찌그러진 트럭의 범퍼만 봐도 방금 충돌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방우혁은 담담한 얼굴로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봤다.
도로를 따라 몇십 미터나 밀린 탓에 신던 캔버스화의 밑창은 완전히 닳아 없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만약 그가 맨발이었다면 방금 일어난 건 단순한 충돌이 아니라 폭발이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방우혁은 무려 천오백 년 동안 육체 수련을 이어왔고 그의 몸은 이미 금강불괴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달려오던 트럭이 그를 친다는 건 결국 산을 들이받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실 방우혁은 이미 트럭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고 운전석에 앉아 있는 인물이 어제 교무처에서 마주쳤던 박대한이라는 것도 확인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그렇게 해야 정당방위라는 명분이 생기니까.
“쿵!”
방우혁이 오른손을 앞으로 밀자 무려 10톤짜리 화물트럭이 수 미터 뒤로 밀려났다.
그는 천천히 트럭의 운전석 쪽으로 걸어가 문손잡이를 잡았다.
“크르륵.”
운전석 문이 방우혁의 손에 억지로 벌어졌다.
그 안에 있던 박대한은 여전히 미친 듯이 핸들을 돌리고 엑셀을 밟고 있었지만 트럭의 동력 시스템은 이미 망가져 있었다.
“말도 안 돼!”
트럭 앞에 멀쩡하게 서 있는 방우혁을 본 박대한은 정신이 완전히 멍해졌다.
불과 1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 그의 상식으로는 전혀 설명되지 않았다.
전속력으로 돌진한 화물트럭에 사람이 치였는데 멀쩡한 것도 모자라 손힘만으로 트럭을 멈추다니?
이건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었다.
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광경이었다.
“차는 고장 났어.”
방우혁의 차분한 목소리가 박대한의 멍한 정신을 현실로 끌어냈다.
“너, 너 지금 뭐하... 으아아악!”
박대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우혁은 그의 머리를 손으로 잡아 방향판 쪽으로 거칠게 내리찍었다.
“쾅! 쾅! 쾅!”
무거운 둔탁음과 함께 박대한의 비명이 이어졌다.
그 모습을 본 방우혁은 조수석에 있던 무전기를 집어 들고 호출 버튼을 눌렀다.
3초 후, 무전기에서 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한아, 끝냈냐? 내가 이미 애들 보내놨어. 바로 픽업할 거야.”
하문성이었다.
방우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다만 박대한의 머리를 계속 운전대에 내리찍었다.
박대한의 비명은 고스란히 무전기를 통해 반대편 하문성에게 전달됐다.
“야, 뭐야!? 무슨 일이야. 대한아, 대답해!”
하문성이 다급하게 외쳤지만 이미 박대한은 얼굴이 피범벅이 된 채 점점 신음조차 하지 못하고 결국 의식을 잃었다.
방우혁은 무전기를 들고 조용히 말했다.
“20분 안에 와. 지금 오면 네 부하 살릴 수 있어. 안 오면 시체나 챙겨.”
그 말만 남기고 무전기를 꺼버렸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박대한을 바라봤지만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처리를 마친 방우혁은 트럭에서 뛰어내려 도로 건너편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멍하니 서 있는 여교사 한 명이 있었다.
그녀를 방우혁은 알고 있었다.
장해 중학교 옆 반의 영어 교사인 정다은이었다.
또렷한 이목구비와 단정한 외모로 학교 내에서도 유명한 인물이었고 많은 남학생이 그녀를 이상형으로 꼽을 정도였다.
방우혁도 복도에서 그녀를 여러 번 마주친 적 있었고 같은 반 남학생들이 그녀에 대해 떠드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저 여자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방금 일어난 걸 다 본 건가?’
방우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가갔다.
“저, 학생... 너... 괜찮니?”
정다은은 벙찐 얼굴로 물었다. 입술은 살짝 벌어졌고 커다란 눈동자엔 아직도 믿기지 않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방우혁은 손가락 하나를 뻗어 정다은의 이마를 톡 건드렸다.
정다은의 몸이 순간 떨리더니 이내 눈빛이 멍해졌다.
“집에 가서 푹 주무세요. 괜찮아질 겁니다.”
“집에?”
정다은은 방우혁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터벅터벅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방우혁은 그녀에게 간단한 소형 마법을 걸었다.
극히 단순한 주문이지만 일반인에게는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잠시 후 정다은은 집에 돌아가 푹 자고 나면, 지금 이 기억을 완전히 잊게 될 것이다.
혹시 기억이 조금 남더라도 그냥 꿈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정다은이 멀어지자 방우혁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거리엔 감시 카메라 두 대가 있었고 방금 일어난 장면이 전부 녹화되었을 터였다.
조금 생각한 뒤, 그는 휴대폰을 꺼내 어떤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지훈아, 나야. 부탁 좀 하자...”
이어서 집에 도착한 방우혁은 막 2층으로 올라가려던 참이었다. 그때 유슬기가 집에서 뛰쳐나오며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우혁 오빠, 우리 엄마가 오늘 아침에 돌아오셨어. 내가 그날 일 얘기했더니 오빠한테 꼭 고맙다고 하래. 오늘은 우리 집에서 저녁 먹자!”
“좋지. 아줌마가 해준 요리는 정말 오랜만이네.”
방우혁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이라면 그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유슬기의 엄마는 황희숙,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우아한 중년 여성이다.
슬기가 열 살이었을 때 도박에 미친 남편 유성태와 이혼하고 홀로 슬기를 키워왔다.
“소파에 앉아 좀 쉬어. 금방 저녁 준비할게.”
앞치마를 맨 황희숙이 부엌에서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제가 또 얻어먹으러 와서 죄송해요. 아줌마.”
방우혁이 웃으며 말했다.
“얻어먹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슬기한테 얘기 다 들었어. 그날 네가 없었다면...”
말을 잇던 황희숙의 표정이 굳어졌고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일단 밥부터 할게. 여기 차 한 잔 마시고 있어.”
그때 유슬기가 방우혁의 발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오빠, 왜 맨발이야?”
“아까 돌부리에 밟혀서 신발 밑창이 나가버렸어. 그래서 그냥 버렸지.”
“양쪽 다 밟은 거야?”
유슬기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렇지 뭐. 요즘 운이 안 좋더라. 이상하게 자꾸 일이 꼬여.”
방우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자 유슬기가 작고 보드라운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운 나눠줄게. 복 받으라고.”
몇 분 후, 황희숙이 네 가지 반찬과 국 한 그릇을 내왔다.
호텔 주방장 못지않은 손맛에 방우혁은 늘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 내내 황희숙은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방우혁은 그녀의 눈동자 어딘가에 걱정과 근심이 숨어 있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직접 묻지는 않았지만 도움을 청한다면 기꺼이 손을 내밀 준비는 되어 있었다.
식사를 마친 방우혁은 2층으로 올라갔다.
그의 집엔 작은 거실 하나와 두 개의 방이 있었는데 하나는 침실 다른 하나는 잡동사니를 놓는 방이었다.
지나가던 중 그 방에서 약초 냄새가 풍겨왔다.
그리고 그제야 한소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잡동사니 방엔 예전에 서북지방에서 들고 온 하수지가 키우던 희귀 약초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시중에서는 이미 자취를 감춘 것들이고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약초들이지만 방우혁은 그냥 쓰레기처럼 방치해놓고 있었다.
하수지가 이 모습을 봤다면 분명히 피 토하고 쓰러졌을 것이다.
‘그 처방에 없다던 약초들... 이 안에 있을지도 모르겠군.’
방우혁은 약초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뭐 도와주는 김에 끝까지 해주자. 어차피 돈은 받았으니까.’
“내일 한소유를 불러서 가져가라고 해야겠어.”
그날 밤, 방우혁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 경지까지 올라오면 더 이상 수련으로는 진전을 얻기 힘들었다.
비록 아직도 연기 기간이지만 그는 무려 연기기 9,832층이었다.
사실 2,000년 전부터 그는 더 이상 수련이나 자연의 기운 흡수만으론 진전을 얻지 못했다.
대신 다른 방식인 요괴의 내단을 생으로 삼키는 방법으로만 층수를 높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5,000층에서 9,000층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지구에 남은 요괴는 거의 멸종 직전이었고 최근 100년 동안 만난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의 수련은 완전히 멈췄고 9,832층에서 발이 묶인 것이었다.
방우혁은 자신이 좀 더 노력해서 9,999층만 넘기면 마침내 기초를 다지는 단계, 즉 축기기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수천 년을 기다려온 그의 꿈이 이루어질 터였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요괴를 찾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다름없다.
‘뭐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하자.’
방우혁은 눈을 감고 잠들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때 아래층에서 눌러 참는 듯한 흐느낌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