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방우혁이 떠난 후 한명수는 묘한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자기 딸이야말로 얼굴도 예쁘고 인기도 많은 편인데 방우혁은 왜 소유를 피하고 싶어하는 거지?’
“하아, 분명 너 성격이 너무 제멋대로라서 신의님께서 질려버린 거겠지...”
한명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말도 안 돼요. 방우혁은 원래 귀찮은 일 싫어해서 그런 거예요.”
한소유는 볼이 부풀어 오를 만큼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한명수는 문 쪽을 바라보며 감탄하듯 말했다.
“방우혁은 요즘 참 보기 힘들 정도로 좋은 젊은이야. 겸손하고 침착하고 무공까지 뛰어나... 그런데도 욕심이 없어. 내가 아까 수표를 내밀었을 때 그 태연한 태도는... 저 나이 또래로선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깊이였어.”
그는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한소유를 보며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너도 그렇고, 네 오빠도 그렇고... 그 아이와는 아직 너무 격차가 커. 더 열심히 해야 해.”
그토록 칭찬을 아끼지 않는 아버지를 보며 한소유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상했다.
‘대체 뭐가 그렇게 대단한데? 어휴. 인정 못 하겠네!’
그러자 한명수는 한마디 덧붙였다.
“그 아이가 너한테 특별히 싫은 감정을 가진 것 같진 않더라. 가능하면 좀 더 친해져 봐. 저런 인물은 언젠가 반드시 세상을 움직일 거야.”
...
한편 방우혁은 저녁에 먹을 채소를 좀 따기 위해서 텃밭으로 향하고 있었다.
텃밭이 가까워질 무렵 그는 땅에 찍힌 신발 자국을 발견했다.
건조한 산길 위라 자국이 옅었지만 방우혁의 눈엔 선명히 보였다.
‘최소 여섯 명은 되네?’
대략 한 시간 전쯤 여섯 명이 텃밭 쪽으로 향한 흔적이었다.
이 산은 원래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인데?
‘설마... 채소 훔치러 온 건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어 방우혁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런데 막 텃밭 근처에 다다랐을 때 사방에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여섯 정이 그를 반쯤 둘러쌌고 전부 권총을 들고 방우혁을 겨누었다.
그중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친구, 우리 몇 가지 질문만 할게. 진실하게만 답하면 돼.”
“좋아. 물어봐.”
방우혁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이 텃밭이 네 거야?”
“응. 내 거야.”
“그럼 어제 이맘때쯤도 여기에 있었어?”
“맞아.”
이쯤 되자 방우혁은 이들이 무슨 이유로 나타났는지 확신했다.
“그럼 어제 어떤 여자와 마주친 적 있나?”
“응. 있었어.”
검은 옷을 입은 자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눈빛이 살기로 번뜩였다.
“혹시... 그 여자는 네가 구한 건가?”
남자는 방아쇠에 손을 얹으며 낮게 물었다.
“정확히 말하면 구한 건 아냐. 너희 동료들이 날 죽이려 하길래 정당방위로 처리했을 뿐이지.”
방우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맙군. 솔직해서 말이야. 그럼, 잘 가.”
남자는 눈빛이 차갑게 변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알이 방우혁의 이마를 향해 곧장 날아들었다.
불과 10미터 거리였기에 보통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거리다.
하지만 방우혁은 고개를 살짝 틀었을 뿐 총알은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분명 그랬지? 너희 동료들이 날 죽이려다 당한 거라고. 근데 너흰 또 시작하네?”
방우혁의 목소리가 마치 귀신처럼 들렸다.
검은 옷의 자들은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봤지만 방우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팟!”
비명과 함께 한 명이 날아가며 쓰러졌다.
“이쪽이야!”
누군가 소리치며 총을 쐈다.
“탕! 탕!”
짧은 혼란이 지나자 30초도 안 돼 여섯 명 중 다섯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남은 건 아까 질문을 던졌던 남자 하나뿐이었다.
그는 겁에 질린 얼굴로 떨고 있었다.
‘이건... 사람이 아니야. 괴물이야. 도망쳐야 해!’
그는 등 돌려 달아나려 했지만 그 앞에 방우혁이 서 있었다.
“으악!”
남자는 총을 들이밀며 무턱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스윽.”
그의 오른손이 방우혁에게 잘려 나갔고 그는 비명을 지르며 땅에 주저앉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구식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방우혁은 말없이 지켜보았다.
3초 후, 전화가 연결되었다.
그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방우혁이 휴대폰을 빼앗았다.
“여보세요.”
상대방은 침묵했다.
“보낸 사람들 다 끝장났어. 나 귀찮은 거 싫어하거든.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해.”
방우혁은 담담히 말했다.
“양... 양 아가씨... 백... 형님을... 보내야 해...”
남자가 비명을 지르듯 말하려 했지만 방우혁의 발길질에 그는 그대로 숨이 끊겼다.
“이름이라도 알려주지 그랬어.”
방우혁은 통화를 끊고 땅에 널린 시체들을 바라보며 자기 태양혈을 눌렀다.
‘도대체 왜 이렇게 일이 꼬이는 거야... 요즘 겪은 시끄러운 일이 전에 10년 동안보다도 더 많은 것 같아.’
…
한편, 양씨 가문의 대저택.
양하연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손끝을 떨고 있었다.
“이 자식은... 대체 뭐야?”
그녀의 붉은 입술 사이로 뱉은 말에서 냉기가 흘러나왔다.
정예 부하 여섯 명마저 전멸되었으니 이틀 사이 무려 여덟 명을 잃은 것이다.
그녀는 바로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백대진을 오라고 해.”
...
강해 중심병원, VIP 병실.
지유미가 서서히 눈을 떴다.
병상 옆엔 그녀의 부모가 앉아 있었다.
“유미야, 드디어 정신이 들었구나. 어디 아픈 데는 없어?”
지동휘가 급히 다가가며 물었고 어머니 안미령도 안절부절못했다.
“아빠, 엄마... 전 괜찮아요.”
지유미가 힘겹게 미소 지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지유미의 몸 상태가 괜찮다는 걸 확인한 지동휘는 얼굴을 굳혔다.
“유미야, 이번 일은... 정말 양씨 가문 짓이 맞는 거지?”
그러자 지유미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 그 두 암살자는 제가 죽은 줄 알고 양하연의 이름을 말했어요.”
“이 망할 것들... 싸움은 정치로 해야지 이젠 내 딸까지 노린다고? 이 원수를 갚지 못하면 난 유미의 아버지가 될 자격도 없어.”
지동휘는 이를 갈며 분노를 터뜨렸다.
그는 한참 뒤에야 진정하고 다시 물었다.
“그런데... 널 구한 사람이 누군지 기억나?”
지유미는 순간 방우혁의 모습이 떠올라 몸을 살짝 떨었다.
“이름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젊었고 무척 강했어요. 그자들이 총을 꺼내기도 전에 싸움이 끝났거든요.”
“그렇게 강해? 그럼 네 무석 삼촌보다도 더 강하다는 거야?”
지동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석은 그의 결의형제이자 선천 9단 무사였다.
그러자 지유미는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정말 대단했어요.”
“어쨌든 그분은 우리 집안의 은인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야 해. 반드시.”
...
다음 날 학교.
방우혁은 자리에 앉아 한소유를 바라보았다.
“이제 약속 지켜야지?”
그러자 그가 입을 열었다.
“곧 수업 끝나면 갈 거야. 왜 이렇게 성급해.”
한소유는 발끈하며 대답했다.
솔직히 방우혁이 자기를 피하는 것도 기분이 상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한소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불쾌한 표정으로 교무실로 향했다.
‘드디어 눈치 안 봐도 되겠네.’
방우혁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그로부터 5분 후 한소유가 돌아왔다.
그녀는 기분이 한껏 나빠 보이는 얼굴로 그의 옆에 털썩 앉았다.
“교무부장이 안 된대. 오히려 한 소리 듣고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