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경도준은 피가 묻은 낯익은 옷을 입고 있는 이혜인을 보며 어찌 된 일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보아하니 그 여자를 과소평가한 모양이네!
단계적으로 벌어지는 이 일들이 아마도 그녀가 미리 계획한 행각들일 것이다.
점점 더 재미있어지는데!
제발 내 손에 잡히지 않기를 기도하는 게 좋을 거야!
어차피 모든 입구를 봉쇄했으니 도망갈 기회는 없어!
지하 주차장에서 고하진하고 진우남이 달려가고 있던 도중 2번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저기야. 잡아.”
몇몇 사람들은 고하진과 진우남한테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바로 그때 1번 엘리베이터도 지하 1층에 멈춰 섰고 경도준은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같은 시각 고하진은 벌써 차 옆으로 다가갔고 엘리베이터를 나온 경도준과 그녀의 직선거리에는 기둥 하나가 막혀 있었다.
진우남은 자신보다 더 속도가 빠른 그녀를 보며 입가가 씰룩거렸다.
위험에서 비롯된 잠재력인가?
진우남이 원격으로 차 문을 열자 고하진은 휙 들어가 버렸다.
경도준은 기둥 옆으로 고개를 돌려 차 안으로 채 들어가지 못한 그녀의 발만 보게 되었다.
뒤따라 차에 오른 진우남은 한 손으로 차를 후진시키며 멋진 드리프트를 선보였다.
레이싱을 좋아하는 그의 운전 솜씨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고 경도준을 포함해 쫓아오던 사람들은 멀리 뒤떨어져 있었다.
“성공.”
짜릿한 기운을 느낀 진우남은 눈꼬리를 치켜 올리더니 웃는 얼굴에 흥분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건 여길 벗어나고 나서 말해요.”
그 남자의 능력을 몸소 겪어본 고하진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입구에도 저자들이 지키고 있다는 거예요?”
진우남은 즉시 그녀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죠.”
엘리베이터가 2층에 멈춰 서 있을 당시 그녀는 계단 입구에서 그들의 말들을 엿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들이 봉쇄하려는 입구가 지하 주차장까지 포함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설마 이 시간에 호텔로 그 많은 인원들을 안배했을 수 있으려나?
“그럼 어느 출구로 나가죠?”
조금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진우남은 건방지던 평소와는 다르게 그녀의 의견을 물어보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출구로 나가요.”
아무것도 확실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녀는 가장 빠른 통로로 헤쳐나가는 게 좋은 수단이라 여기고 있었다.
경도준은 멀리 떠나는 차를 보며 급히 쫓아가지 않고 어디로 전화를 걸었다.
“형, 어디야? 나 지금 호텔에 다 왔어. 지금 무슨 상황이야?”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서지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하 주차장 입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야?”
경도준은 아무런 감정이 깃들어 있지 않는 무겁고도 차분한 어조로 묻고 있었다.
“꽤 될 거야. 입구마다 여섯 명 정도 배치해 놨어.”
서지민은 그의 저기압을 느낀 건지 조심스러워졌다.
“형, 아직도 못 잡았어?”
“벤틀리, 차 끝 번호는 666이야. 어떤 수를 써서라도 꼭 잡아.”
경도준은 직접적으로 답하진 않았으나 뜻은 분명했다.
“형, 걱정 마. 꼭 잡을게.”
경찰서장인 서지민은 상당히 자신이 있었다.
대체 누구길래 우리 형을 이토록 화나게 한 거야?
궁금하네!
“어떻게 된 거예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요?”
가장 가까운 출구로 향해 가던 진우남은 가지런히 서서 입구를 막고 있는 일곱 명의 사람들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대로 돌진해 나가면 전혀 되돌릴 수 없는 후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러니 진우남은 어쩔 수 없이 차의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고하진은 입술을 오므렸다.
앞에는 장애물이 놓여있고 뒤쪽에서는 강한 추격병들이 쫓아오고 있는데 그 남자의 행동력을 고려해 봤을 때 곧 그녀를 따라잡을 것이다.
그런데 이대로 여길 빠져나가지 못하면 그녀는 절대 여기를 살아 나갈 수가 없다.
“우리 다른 출구로 나갈까요? 이 한밤중에 설마 모든 입구를 막을 정도의 인원들을 안배한 건 아니겠죠.”
진우남은 약간의 요행을 기대하고 있었다.
“소용없어요. 청원경찰복을 입고 있는 걸로 봐서는 호텔 쪽 사람들이 아니에요. 게다가 저 사람들은 24시간 순찰을 돌고 있는 경찰들이고요.”
다시 말해 모든 입구를 막을 정도의 인력은 충분히 갖췄을 것이라는 점이다.
“제기랄! 어떤 원한이 있길래 이렇게 그쪽을 죽이지 못해서 안달인 거예요?”
진우남은 그제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몸소 도망을 치지 않았더라면 호텔을 빠져나가기란 이토록 힘들 거라는 걸 전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 차 돌릴까요?”
입구는 경찰들로 꽉 막혀 있으니 돌진할 수도 없고 차를 돌리지 않으면 이대로 잡힐 게 뻔한 상황이다.
진우남은 대책을 궁리하고 있었다.
“안 돼요.”
고하진은 이대로 차를 돌리면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꼴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진우남은 기대 반, 의심 반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 좋은 방법 있어요?”
“속도 줄이지 말고 돌진해요.”
고하진은 앞에 있는 경찰들을 주시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인명피해 나는 거 아니겠죠?”
정말로 사람을 치게 되면 장난이 아닌지라 진우남은 걱정이 안 들 수가 없었다.
“안 나요.”
고하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식의 태도를 내보였다.
“좋아요.”
진우남은 가속 페달을 눌러 밟으며 속도를 올렸다.
그의 무의식적인 반응으로 보아 고하진을 엄청 신뢰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자동차는 출구로 향해 빠르게 돌진하고 있었고 입구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안색이 어두웠으나 누구 하나 비키는 자가 없었다.
진우남은 눈을 가늘게 뜨며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그녀가 괜찮다고 했으니 무조건적으로 믿고 있는 상태였다.
자동차는 입구와 겨우 십여 미터 거리를 두고 있었다.
고하진은 갑자기 천창을 열고 일어나더니 들고 있던 물건을 나란히 서 있는 경찰들 쪽으로 내던졌다.
“독일 M-DN31 수류탄이야. 위력이 어떤지 한 번 느껴봐.”
수류탄은 나란히 서 있는 경찰들 앞에 떨어져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무도 파티장의 소품들은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
진우남은 그녀의 행동에 충격을 받았다.
이래도 돼?
이럴 수가 있다고?
“폭탄이야! 폭탄! 도망가!”
눈앞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일렬로 늘어져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흩어졌다.
차를 운전하고 있는 건 사람이라 다들 감히 돌진하지 못할 거라는 도박을 걸 수는 있지만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폭탄이 그들 앞에 던져진 이상 설마 자신의 육신으로 그 폭탄이 터지지 못하게 덮칠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