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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장 외할아버지의 혼약

“다른 볼일 있어요?” 하강우가 물었다. “오후 제 아버지한테도 문제가 생길 거라고 했잖아요.” “아, 그거요? 저는 별로 개입하고 싶은 마음이 없네요. 행운을 빌어요.” “안 돼요! 도와주세요!”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계산은 따로 해야 하는 거 알죠? 은지 씨를 구하는 건 10억이었지만, 은지 씨 아버지는 최소 20억은 있어야 할 거예요.” 하강우가 말을 마치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 20억 원의 현금이 진짜 통장에 들어왔던 것이다. ‘역시 재벌은 다르네. 아주 원하는 모든 걸 다 얻어낼 기세야. 이게 바로 특권층이라는 건가?’ “이만 출발하죠.” 양은지가 말했다. “출발이요? 어디로 가는데요?” 하강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돈을 받았으니 당연히 제 아버지한테 가야죠! 저희를 도와주기로 한 거 아니에요?” “둘이 같이 사는 거 아니었어요?” “왜 같이 살아야 하죠?” “이 큰 별장에 은지 씨 혼자 사는 거였어요?” “그게 문제 되나요?” “아니... 그럼 남편은요?” “남편? 하, 저는 미혼이에요. 남자친구도 없거든요.” “이런 집안은 보통 다 혼약이 있지 않아요?” “혼약? 그런 구시대적인 계약은 진작 사라졌어요.” 이때 양은지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말을 보탰다. “아, 그러고 보니 외할아버지가 정한 혼약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하네요. 근데 워낙 어릴 적 일이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냥 없는 셈 치고 있어요. 저도 상대가 누군지 모르고요.” “그래요? 그 사람이 찾아오면 어떡하려고요?” “당연히 인정하지 못하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언젠데, 그런 약속이 있었다고 해도 효력은 지났어요. 애초에 얼굴도 모르는 남자랑 결혼한다는 게 말이 돼요? 이제는 자유의 시대예요. 제 미래는 제가 정해요. 부모님 말씀이라고 해도 따르지 않을 거예요. 하늘에 계신 외할아버지도 이해해 주실 거라고 믿어요.” “외할아버지가 왜 혼약을 맺었는지는 알아요?” “몰라요. 아마 술에 취해서 그런 거겠죠. 신경 쓸 것 없어요.” “그렇게 큰일을 추측으로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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