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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망신살

안소영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배기가스를 마셨고 타이어로 인해 날리는 먼지를 뒤집어쓰게 됐다. 600만 원짜리 하이힐과 1,000만 원짜리 원피스가 먼지 때문에 볼품없어졌다. 비싼 화장품을 바른 얼굴도 먼지투성이가 되었다. ‘송아영이 하강우의 약혼녀이고, 유승철이 하강우를 선비님이라고 부르며 모시러 왔다고? 뻔뻔한 촌놈 따위가 무슨 선비란 말이야? 남 등쳐 먹으려는 사기꾼이겠지!’ 송아영은 절대 하강우와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안소영은 송아영이 자신처럼 하강우와 파혼하려고 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비참해진 이유가 전부 하강우 탓이라고 생각해 그에게 복수할 생각이었다. 30분 뒤, 롤스로이스는 웅장해 보이는 건축물들 사이를 지나쳐갔다. 그곳은 송씨 별장으로 부지면적이 아주 컸다. 정자가 있고 강이 있었으며 녹음이 우거지고 경치가 좋았다. 걸음걸음마다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곳은 중해 중심에 있는, 송씨 가문 소유의 무릉도원이었다. 하강우는 접객실로 들어갔고, 유승철은 그에게 좋은 차를 내어준 뒤 물러났다. 또각또각. 하이힐과 바닥이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는 악기 소리보다 더 아름다웠다. 곧 엄청난 미인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녀가 바로 송씨 가문의 딸이자 한스 그룹의 대표이며 중해시의 최고 미인 송아영이었다. 하강우는 단숨에 그녀에게 시선을 사로잡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쪽이 바로 내 약혼자 하강우 씨인가?” “아... 네.” 하강우는 정신을 차렸다. 이미 한 번 파혼당한 적이 있는 그는 또 한번 파혼당하고 싶지 않아 서둘러 계약서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파혼하고 싶어서 절 찾으신 거죠? 계약서는 돌려줄게요. 이제부터 우리는 아무 사이 아닌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앞으로 절대 송아영 씨 앞에 나타나는 일 없을 거예요. 다른 사람에게 송아영 씨가 제 약혼녀였다고 떠벌릴 일도 없을 거고요.” “내가 언제 파혼하겠다고 했지?” “파혼할 생각이 없는 거예요?” “이건 할아버지께서 정하신 일이야. 그리고 난 할아버지의 결정을 존중하기 때문에 그쪽과 결혼할 거야. 내일 바로 혼인 신고하러 가자고. 하지만 그 전에 규칙을 정해야겠어.” “규칙이요?” “우리가 결혼하는 건 이 계약서 때문이지 내가 그쪽을 사랑해서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식은 올리지 않을 거고, 다른 사람에게 결혼 사실을 알릴 생각도 없어. 대외적으로 당신은 내 비서고 날 송 대표님이라고 불러야 해. 그리고 난 그쪽에게 1년이라는 시간을 줄 거야. 만약 1년 내로 내가 그쪽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때 식을 치러서 진짜 부부가 되는 거야. 하지만 1년이 지나서도 내가 그쪽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 또는 우리가 맞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이혼할 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얘기할게. 예물은 필요 없어. 그리고 내 혼수는 한 가지뿐이야. 쭈글쭈글하고 시들해서 못생긴 약초지. 일단초라고 불린다고 하더라고.” ‘일단초가 혼수라니.’ 하강우는 그 말을 듣자 눈을 반짝이면서 흥분했다. “그, 혹시 1년이 지나서도 제가 마음에 안 든다면 그 일단초를 기념품으로 줄 수 있나요? 쭈글쭈글하고 시들해서 못생긴 약초인 데다가 비싼 것도 아닌데 그냥 기념하라는 의미로 선물로 주시죠.” “안 돼. 그건 내 혼수야. 난 나랑 결혼할 자격이 있는 남자에게 그걸 줄 생각이야.” 하강우는 할 말이 없었다. 이때 송아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뭐라고? 지금 당장 갈게.” 전화를 끊은 뒤 송아영은 하강우에게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지금 위독하시다고 하네. 지금 당장 나랑 같이 병원으로 가줘야겠어.” “좋아요.” 하강우는 지저분한 자신의 쇼핑백을 보물인 것처럼 들었다. “그걸 왜 챙겨? 훔칠 사람도 없는데.”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거든요.” 송아영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더 신경 쓰기가 귀찮았다. 중해 병원 응급실 문 앞. 정장을 입은 미녀 한 명이 초조한 얼굴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송아영의 비서 이소희였다. 송아영과 하강우가 도착하자마자 응급실 문이 열리며 의료진들이 나왔다. “장 원장님, 저희 할아버지 어떤가요?” “최선을 다했지만 효과가 없네요. 하지만 아직 살아계시니 만약 윤 선생님을 모셔 온다면 살 수 있을지 모릅니다.” “윤 선생님이요?” “윤 선생님은 대단하신 분이에요. 염라대왕 손에서도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하죠. 윤재욱 씨는 우리 중해시의 최고 신의예요. 하지만 폐관한 지 3년이 돼서 윤 선생님을 모시는 건 몹시 어려울 거예요.” 장 원장이 말을 마치자마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 선생님께서 오셨어요.” 김수호가 한 노인을 데리고 왔는데 그 노인이 바로 윤재욱이었다. 긴 겉옷을 입은 그는 신선 같아 보이기도 했다. 병상 앞에 선 윤재욱은 우선 송강태의 눈꺼풀을 들어보더니 그의 맥을 짚었다. “윤 선생님, 저희 할아버지 어떤가요?” “상태가 아주 좋지 않으시군요. 저희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인터스 침술이 아니라면 아무도 구할 수 없을 거예요.” “그러면 빨리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세요.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신다면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아가씨, 전 수호 도련님이 데리고 온 사람입니다. 아가씨의 할아버지를 구할지 말지는 수호 도련님의 뜻을 봐야 합니다.” 김수호는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의기양양한 태도로 협박했다. “송아영, 내 마음 알지? 나랑 결혼하겠다고 약속하면 지금 당장 윤 선생님에게 너희 할아버지를 살려달라고 할게. 하지만 만약 네가 거절한다면 윤 선생님은 절대 나서지 않을 거야. 그러면 너희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겠지. 너희 할아버지는 송씨 가문의 핵심 인물이야. 그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송씨 가문도 끝장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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